우린 지금 혁명의 한가운데 있다.

혁명의 시간엔 곳곳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그 바람들은 쭉정이들을 날리고, 알곡을 남긴다. 그 알곡들도 이리저리 뒤섞이며 다시 모인다. 새로운 질서가 생겨나는 것이다. 혁명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매력적인 진화의 방식이다. 거기엔 관성을 깨뜨리는 폭발적인 에너지가 필요하고, 그 에너지를 폭파시켜줄 기폭제, 그리고 오래 타오를 수 있는 축적된 모순과 분노가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주기 위해선 그것을 축제의 장으로 이끌고 갈 수 있게 해줄 발랄한 기운이 필요하다. 그것이 아마도 우리가 그 혁명의 바람을 타고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를 좌우하는 관건일 것이다. 거리에 나선 시민들이 이룬 첫 승리 ‘탄핵’을 받아든 지금, 흥분된 마음으로 정확히 50년 전 출간된 한 책을 뒤적인다.

1966년에 출간된 소책자 '비참한 대학 생활'은 기 드보르(Guy Debord)를 교주(!)로 삼는 상황주의자 인터내셔널 조직이 스트라스부르 대학 총학생회를 장악하면서 만들어낸 소위 대학가 문건이다. 한국의 1980년대 대학가에서 종종 어둠의 경로를 통해 전해지곤 하던 선동문건 같은. 이 책이 최근 한국에서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우리 집 서가 한구석을 지키고 있던 이 문건의 원본을 다시 펼쳤다. 당시 갓 대학에 들어가 스트라스부르에서 날아온 이 뜨거운 화제의 팸플릿을 학생운동 조직을 통해 입수했던 남편은 그 시절, 이 책이 불러일으킨 폭발적 스캔들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당시로서는 폭탄과도 같았다. 손에서 손으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이 폭탄은 결국 2년 뒤, 68혁명으로 발화하였다.

▲ 상황주의자 인터내셔널·스트라스부르대학교 총학생회 지음 / 민유기 옮김 / 책세상 출판
68혁명의 기폭제로 악명을 떨친 문건답게 이 책은 한없이 시니컬하고, 거침없이 선동적이다. 프랑스 대학가 운동권의 패기가 도도한 어휘들 속에 물씬 풍겨난다. 그리고 여전한 현재성을 간직하고 있다. 그 현재성은 외환위기 이후, 특히 청년들의 삶에 있어서는, 줄곧 곤두박질쳐왔던 한국에서뿐 아니라, 혁명의 기억이 희미해져가고 있는 프랑스에서도 유효하다.

“일상에서 대학생이 겪는 실제적인 비참함은 문화상품이라는 중요한 아편에서 직접적이고 환상적인 보상을 발견한다. 문화적 스펙터클 안에서 대학생들은 공손한 제자라는 자신의 위치를 자연스럽게 재발견한다”, “청춘의 저항은 언론의 진정한 과장의 대상이었고, 여전히 그러하다. 언론의 과장은 청춘의 저항을 저항이라는 스펙터클로 변화시킨다. 이 스펙터클은 사람들로 하여금 저항이 생동감 넘치지 못하도록 단지 지켜보는 것만을 허용하고, 저항이란 비규범적이지만, 사회 시스템의 기능에 필요하기에 이미 사회에 통합된 것이라고 인식하게 만든다”

비참한 대학생들의 삶 속에 주어진 숨통이 문화상품을 소비하는 것이라면, 이는 스펙터클 사회가 마련해놓은 일종의 아편일 뿐이며, 그들의 저항 또한 저항이라는 스펙터클로 변화시키는 언론에 의해 조롱된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새로운 종교 스펙터클 속에 우리가 꼼짝없이 갇혀 있다는 것이다.

빌헬름 라이히, 마르쿠제와 함께 지도자 없는 68혁명의 대표적 이데올로그로 자리매김해온 기 드보르. 그는 저서 '스펙타클의 사회'를 통해 실제의 삶과 역사에서 배제되고 소외당한 채 자본주의 소비사회가 맡겨주는 역할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당시 사람들의 모습을 거울로 비춘다. 이 책이 혁명이 날려버려야 할 사회의 일상적 모순들을 적시해주었다면, '비참한 대학 생활'은 "스펙타클의 사회'보다 1년 앞서 등장하여 대학가에서 그 전초전을 치렀다.

“혁명은 모든 사람에 의해 쓰인 시이며 축제여야 한다. 혁명들이 안내할 삶 자체가 축제의 신호 아래서 창조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이 책은 결론짓고 있다. 마르크스가 창시하고 레닌이 실천했던 붉은 혁명의 엄숙함만이 가능한 혁명의 형태라고 믿던 시절, 이 놀라운 상상력이 가진 충격은 세상을 뒤흔들었고, 2년 뒤 예언은 그대로 현실이 되었으며, 축제이며 놀이여야 한다는 일상에서의 혁명이 68 이후 10년간 지속되었다. “더 많이 소유하는 대신, 더 많이 존재하자”, “상상력에게 권력을” 같은 문구들은 우박처럼 세상에 흩뿌려지고, 사람들의 가슴속에 새겨져 이후 10년간 지속된 일상적 혁명의 슬로건이 되었다.

▲ 2008년 5월24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광우병 쇠고기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 주최로 열린 ‘17차 촛불문화제’에서 참석자들이 한미 쇠고기 수입 재협상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우리에게도 축제 같은 혁명의 기억이 있다. 발랄한 재기의 경연장이며 지도자도 조직도 없이 매일 기발한 저항의 방법들이 탄생하던 2008년 촛불. 그러나 권력자의 어설픈 양보 제스처에 사그라들었고 일상의 혁명으로는 스며들지 못했다. 2016년 겨울의 촛불은 우리에게 다시 온 기회다. 최순실의 태블릿 PC가 부대자루에서 흘러내리는 핏물처럼,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진실을 세상에 드러냈을 때, 그동안 축적되어온 분노에 불이 붙었고, 그 불길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때,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조직된 중고생 단체들의 출현이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혁명정부의 출범을 말하고, 박근혜 퇴진을 말하는 어른들 앞에서 일상의 혁명을 외쳤다.

아이들은 박근혜를 퇴진시키고, 그 일당이 벌인 죄들을 단죄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우리 안의 박근혜, 내 옆의 최순실을 들여다보고, 극복해가자고 호소했다. 이렇게 정의가 헌신짝처럼 버려지고 조롱되는 세상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말하며, 그들의 일상이 달라질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 11월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천 광장에서 '11.17 박근혜 하야 고3집회' 가 열리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세상에서 드라마를 가장 잘 만드는 스펙터클의 천국이자 고객님일 때만 사람 대접 받는 고객님 천국. 소비와 남의 삶 구경하기로 일상의 카타르시스를 조율하며 살아가는 데 최적화 된 곳이 한국 사회다. 그들이 분열을 획책하면 분열하고, 포기를 획책하면 포기하고 자조하면서 우리는 살아왔다. 그러나 기적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바퀴를 굴리는 100만 명 중 하나가 되겠다고 분연히 일어섰다. 다시 무기력한 구경꾼으로 돌아가지 않고, 스펙터클 사회 속의 무력한 포로가 되지 않으려면, 우리의 일상으로 혁명의 외연을 넓혀야 할 때다. 50년 전 프랑스 대학생들이 말했던, “모두가 함께 쓰는 시가 되는 혁명!”을 만들어가야 한다. 아이들이 창원, 진주, 광주, 대구에서 어른들의 뒷통수를 치며 그들의 시를 전파하고 있다. 그들과 함께 모두의 시를 모두의 공간에 새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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