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혁명’이라 부르자. 12월9일 국회에서 박근혜 탄핵안이 압도적인 과반수로 가결돼 큰 고비를 넘겼지만, ‘촛불 혁명’은 11월12일 이후 폭발적으로 타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촛불 혁명을 통해 드러난 민심과 요구를 두 가지로 요약한다면, 첫째는 ‘박정희 체제의 청산’이고, 그 다음이 ‘반칙 없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기회가 보장되는 새로운 공화국의 건설’일 것이다.

우리는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 ‘박정희 체제’에서 살았다. 박정희에 앞서 이승만이 독립운동 경력을 앞세워 대통령이 됐지만, 미국을 등에 업은 이승만의 정치적 기반은 독립 운동 인사들을 때려잡은 친일경찰과 수구반동 세력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육체와 영혼마저 완벽하게 친일부역에 바친’ 박정희와 비교하면 이승만 독재는 박정희 친일부역 체제에 흡수, 계승된다.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피살됐을 때 박정희를 가르치고 후견인 역할을 했던 일본의 우익 지도자는 오죽하면 “일본의 마지막 제국 군인이 죽었다”고 안타까워했겠는가.

1979년 부마민주항쟁은 ‘자연인 박정희, 대통령 박정희’를 몰아내는 계기는 제공했지만, ‘박정희 체제’를 청산하지는 못했다. 박정희가 키운 ‘정치적 양아들’이나 다름없는 전두환 국군보안사령관이 주동이 돼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사실상 8년 집권하고, 한 뿌리에서 난 두 가지나 다름없는 노태우가 국민의 직접투표에 의해 대통령에 당선되어 박정희 체제를 계승한 것이다. 박정희와 대척점에서 평생 싸웠던 김영삼이 3당 합당을 통해 대통령이 됐지만, 그 역시 박정희 체제를 청산할 능력은 갖고 있지 않았다. 최초의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과 참여정부의 노무현도 박정희 체제를 청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박정희 체제의 마지막 계승자인 박근혜는 그의 딸이기 이전에 박정희를 신(神)으로 생각하는 신도였다. 동시에 최태민이라는 ‘또 하나의 신’을 모신 꼭두각시였다. 박근혜는 꼭두각시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 원인이 독특한 성장 배경에 있거나, 아니면 트라우마를 치유하지 못해 아직도 공포 속에 갖가지 정신적, 육체적 질환에 시달리고 있느냐와 상관없이 그는 정상이 아님은 분명하다. 많은 국민들이 지난 몇 달 동안 ‘비정상’과 마주하느라 고통 속에 밤을 지새웠다. 어느 정신분석학자는 일찍이 박근혜를 ‘혼군(昏君),’ 즉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임금(대통령)이라 정확하게 규정했다.

박근혜는 ‘과거’가 됐다. 박근혜는 일찍부터 ‘과거’였다. 박근혜는 단 한 순간도 ‘현재’에 산 적이 없어 보인다. 평생을 과거에 사로잡혀 살았다. 어쩌면 과거에서 벗어나기 싫었을 것이라는 게 정확할지 모른다. 박근혜의 국정농단은 ‘과거’가 ‘현재’를 지배하려 한 데서 온 필연적 결과이자 불행이었다. 그런 점에서 박정희 체제의 청산이 ‘박근혜 파라독스’의 완성이고, 박근혜 파라독스의 완성이 곧 박정희 체제의 청산이다.

혁명은 ‘반혁명과 반동’을 부르기 마련이다. 박정희 체제의 계승자이자 꼭두각시 박근혜 국정농단의 부역자들의 집합체인 새누리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움직임이 바로 반동이다. 박근혜를 꼭두각시로 내세워 온갖 더러운 의혹과 과거를 덮고 대통령으로 만들어 자신들의 사익을 추구한 부역자들이 지금 친박이니 비박이니 하며 서로에게 삿대질을 하고 있지만, 그 싸움의 본질은 ‘반혁명’이자 ‘반동’이다. 박정희 체제의 청산은 박정희-박근혜 부역자들의 청산에서 시작해야 한다.

반동 움직임은 또 있다. 박정희 체제의 또 다른 유산인 족벌언론의 반동이 시작됐다. 친일부역과 반공과 국가보안법에 기대 박정희 체제를 유지하는데 앞장서고 부역했던 자들이 바로 족벌언론과 사주들이다. 이제 ‘꼭두각시 박근혜’를 버리고 다시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수구보수 정권을 창출하기 위해 ‘반동 모드’에 돌입해 야권의 잠재적 대선 후보들과 지지자들을 이간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촛불 혁명은 박정희 체제의 온갖 적폐를 청산하고, 노동과 노동자가 제대로 자리매김하고, 누구에게나 기회 균등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공화국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번 촛불 혁명을 통해 직접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도 중요한 성과다. 이를 위한 제도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는 그런 과정이어야 한다. 촛불이 꺼져서 안 되는 이유다. 정신 바짝 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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