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일당 10만원’ 일용직을 고용해 사실상 ‘알박기 대리 집회’를 해 온 사실이 확인된 가운데, 이 같은 대리 집회가 적어도 2012년경부터 있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2015년 가을부터 7개월 간 삼성 측 집회 ‘알바’를 한 C씨는 12일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한 팀장’으로부터 내가 일하기 2년 전부터 과철철거민집회가 있었고 그때부터 알바집회가 있었다고 들었다. (한 팀장이) 이 일을 굉장히 오래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확히는 모른다”면서 “집회 알바는 항상 삼성 측 보안요원의 지시를 받았다”고 밝혔다.

▲ 지난 12월7일 오전, 삼성전자 서초사옥 맞은 편 '삼성 입주자 직장인 협의회'의 집회 모습. 사진=손가영 기자

미디어오늘은 올해 수개월 동안 집회 알바를 했던 A, B씨와의 인터뷰에서 삼성 측이 인력파견 전문업체 운영자 한아무개씨와 인력 조달 용역계약을 맺고 ‘삼성타운 내 알박기 집회’에 일용직을 동원해 온 것을 확인했다. B씨는 지난 6월 말 한씨 대신 ‘삼성생명 서초사옥’ 지하 3층에 있는 한 사무실에 들어가 삼성생명보험 직원과 직접 용역계약서를 작성한 바 있다. (관련기사 : [단독] 삼성본관 앞 '알박기' 집회, 삼성이 알바 고용했다)

한씨는 적어도 2012년 경부터 허위 집회를 위한 인력 조달 일을 맡은 것으로 보인다. 한씨와 교류가 있었던 A씨, C씨의 말을 종합한 결과다. C씨가 말한 과천철거민집회는 2012년부터 시작됐다. A씨도 “한씨가 삼성과 아웃소싱 계약을 오래 전부터 해왔다는 말을 (한씨에게서) 자주 들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건물 경비를 맡는 삼성 에스원 직원들의 관리감독을 받았다. C씨는 “우리가 출근을 하면 현수막을 들고있는 사진을 찍어 삼성 측에 건내줬고 근무에 불성실할 시 (삼성 보안요원이) 한 팀장에게 직접 전화를 했다”고 말했다. C씨는 “근무 중 휴대폰을 보게 되면 한 팀장에게서 전화가 와 ‘삼성에서 나에게 연락이 오니 근무 똑바로 서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A씨와 C씨는 2012년 이후 인력파견 업체가 중간에 한 번 바뀌었으나 삼성 측이 그 업체의 실무능력을 신뢰하지 못해 다시 한씨에게 일을 줬다고 지적했다.

C씨는 자신의 일에 대해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한다지만 일을 하면서도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고 덧붙였다.

▲ 7월27일 삼성전자 본관 정문 바로 맞은편 도로에서 '집시법 개정촉구 결의대회'가 열렸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 5명이 오전 6시30분 경부터 오후 5시까지 자리를 지킨다. 사진=손가영 기자

대기업이 ‘약자 집회’ 막으려 알바 써가며 가짜 집회… 근절 대책 세워야

삼성타운 내 알박기 집회는 2012년부터 매주 수요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정문 맞은 편에서 열리는 집회를 말한다. '삼성타운'은 삼성물산 서초사옥, 삼성생명보험 서초사옥, 삼성전자 서초사옥 등 건물 세 동이 밀집한 곳이다. 매주 수요일엔 이건희 회장, 현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참석하는 전 삼성 계열사 사장단 회의가 열려 왔다. 회의장소는 삼성전자 서초사옥이다. 삼성 측이 알바를 동원하면서까지 알박기 집회를 여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김성환 삼성일반노동조합 위원장의 말은 A, B, C씨의 증언을 뒷받침한다. 김 위원장은 “2012년 집회금지 취소 행정소송에서 승소한 후 지금과 같은 알박기 집회가 계속 열렸다”고 말했다. 그는 십여 년 이상 서초 삼성타운 내에서 집회·시위를 열며 삼성그룹 비판활동을 해왔다.

2012년 전엔 삼성타운 내 집회는 불가능했다. 헌법이 집회의 자유를 보장함에도 이 구역에선 적용되지 않았다. 이유는 ‘유령집회’ 때문이었다. 삼성 측은 해당 자리에 미리 집회 신고를 냈다. 당시 경찰은 중복집회가 발생할 경우 선착순으로 집회 개최 우선권을 줬다. 서초경찰서는 삼성 측에만 집회 개최 우선권을 주면서 다른 집회 개최를 금지했다. 김 위원장에 따르면 그 자리에서 삼성 측 집회가 개최된 적은 드물었다.

▲ 2014년 5월2일 삼성 반도체공장 백혈병 피해 유족 정애정씨가 삼성전자 서초사옥 정문 앞에서 1인시위를 하는 도중 삼성 측 보안요원들에 의해 끌려나오고 있다. 사진=삼성일반노동조합

유령집회 문제는 지난 언론보도를 통해 수차례 확인된다. 2004년 10월12일자 노컷뉴스가 보도한 충남지방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대전·충남지역에서 삼성 계열사는 2004년 1월부터 8월까지 394회 집회 신고를 했으나 단 한차례도 집회를 열지 않았다. 2011년 12월26일 한겨레는 2011년 1월부터 10월까지 22개 삼성 계열 사업장 정문 앞 집회 개최 현황을 살펴 본 결과 실제 개최율이 0%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2012년 7월, 서울행정법원은 이같은 대기업의 ‘유령집회’ 악용에 제동을 걸었다. 김 위원장은 서초경찰서로부터 백혈병으로 투병하다 숨진 고 황민웅씨의 7주기 추모집회 금지 통고를 받고 금지 취소 가처분 신청을 냈다. 재판부는 “삼성일반노조 집회 금지로 인해 이들에게 발생할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해 긴급한 필요가 있다고 인정된다”며 “집회 허용이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때에 해당한다고 인정할 자료도 없다”며 김 위원장의 손을 들어줬다.

삼성전자 등 대기업들로선 실제로 집회를 개최해야 다른 집회를 방어할 수 있다는 뜻이다. 기존 유령집회 관행이 ‘알바들의 대리집회’로 진화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일용직을 동원한 '알박기 대리 집회'는 삼성그룹 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진은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그룹 사옥 정문 앞에서 용역 및 직원들이 알박기 집회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유성기업범국민대책위원회 페이스북

적극적인 문제제기나 제도적 보완책이 없으면 이같은 집회 알바는 계속해서 악용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집시법이 개정되며 유령집회 및 알박기 집회에 대해 대폭 강화된 제재를 담게 됐기 때문이다.

경찰은 집회 신고를 해놓고 집회를 열지 않는 주최 측에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릴 수 있다. 일명 ‘유령집회 방지책’이다. 집회 주최자는 집회가 취소될 경우 관할 경찰서에 ‘철회 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집시법 8조2항은 알박기 집회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경찰의 책임을 강조했다. 집시법 8조 2항은 “관할경찰관서장은 … 중복되는 2개 이상의 신고가 있는 경우 그 목적으로 보아 서로 상반되거나 방해가 된다고 인정되면 각 옥외집회 또는 시위 간에 시간을 나누거나 장소를 분할하여 개최하도록 권유하는 등 각 옥외집회 또는 시위가 서로 방해되지 아니하고 평화적으로 개최·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와 관련해 삼성 측은 책임있는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삼성생명 측 관계자는 지난 8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B씨가 말한) 계약 당시 삼성생명 본사는 여기에 없었다. 7월까지 태평로에 있다가 8월에 서초사옥으로 옮겨온 것"이라면서 "관련 업무 부서를 다 조사해본 결과 그러한 계약을 한 직원은 확인되지 않았다. 삼성생명 직원이라 단정적으로 쓰기 힘들어 보인다"고 밝혔다.

삼성물산 건설부문 홍보팀은 지난 12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삼성물산은 건설, 상사 등 4개 부문이 쪼개져있다. 건설부문은 여기에 관여한 바가 없다”면서 “삼성타운도 삼성전자, 삼성생명, 삼성물산 사옥 등 3개 건물이 별도로 운영되고 있다. 삼성물산이 ‘삼성타운’을 관리하진 않는다. 그룹 차원의 일이면 삼성 전자 측에 문의하는게 적절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측은 지난 12~13일 동안 미디어오늘의 전화 문의에 응답하지 않고 있다.

▲ 서초동 서초대로74길에 있는 '서초 삼성타운'에 삼성물산 서초사옥, 삼성생명 서초사옥 및 삼성전자 서초사옥이 밀집해있다. 사진=네이버지도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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