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한 서울고등법원은 지난해 민중총궐기 당시 경찰의 집회 금지, 차벽 설치 및 살수차 운용이 모두 적법했다고 판단했다. 형량은 줄었으나 지난 1심의 요지가 대부분 수용된 결과다. 사법부가 여전히 집회·시위 자유권을 협소하게 인정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서울고등법원 제2형사부(주심 이상주)는 13일 오전 법원 서관 302호에서 민중총궐기 주도 혐의로 구속 기소된 한상균 위원장에게 징역 3년, 벌금 50만 원을 선고했다. 지난 7월 1심 재판부가 5년형을 선고한 데 비해 완화된 형량이다.

곧바로 이어진 배태선 민주노총 조직국장 2심 공판에서, 같은 재판부는 징역 1년6개월,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배 조직국장은 지난 1심에서 3년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 포커스뉴스

재판부는 양형요지로 "집회·시위의 자유는 민주사회에서 최대한 보장돼야 하지만 그 시위는 적법하고 평화적인 것이어야 하고 다른 법익과의 조화도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면서 "피고인은 집회·시위를 평화적으로 보장하려고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경찰과의 충돌을 직간접적으로 선동하고, 사전에 경찰 차벽에 사용할 밧줄, 사다리까지 준비했다. (...) 이와같은 불법·폭력 시위는 어떠한 이유로도 우리 사회에 용납될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한 위원장이 누범기간인 점, 체포영장이 발부된 후에도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도 양형 이유로 들었다.

양형 참작 사유로는 △피고인 가족·사회 각계 인사의 선처 호소 △일부 피해자가 피고인 처벌을 원하지 않은 점 △평화적 집회문화가 정착되고 있는 현 상황 △경찰의 과잉진압 사실 배제할 수 없는 점 등이 지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은 ‘공권력 남용’에 대한 판단이다. 한 위원장 및 변호인들은 “공무집행방해죄는 공무 집행이 적법한 것을 전제로 한다”며 “경찰의 집회금지, 차벽 설치 및 살수차 운용 등은 위법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 12월13일 오전9시 경, 한상균 위원장 2심 선고 공판이 열리기 전 민주노총 조합원 및 소속 활동가들이 한 위원장 석방을 촉구하는 선전전을 진행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재판부는 한 위원장 측의 주장을 모두 기각했다. 2015년 11월14일 민중총궐기 당시 경찰의 직무집행은 불법·폭력 시위 가능성을 통제하기 위한 적법한 수단이었다는 게 재판부의 논리다.

집회 금지 통고가 적법했다는 이유에 대해 재판부는 “민주노총이 신고한 도로는 집시법에 따라 집회 금지가 가능한 ‘주요 도시’의 ‘주요 도로’에 해당한다”면서 “집회 예정시간, 인원, 행진경로 등을 고려하면 시위대가 주변 차로를 점거해 심각한 교통 장애를 초래할 것이 예상된다. 민주노총이 2015년 4월24일, 5월1일, 8월23일, 9월23일 집회에서 모두 신고된 범위를 이탈해 도로를 점거했으므로 (…) 교통장애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할 상황이었다”고 지적했다.

차벽 설치의 적법성에 대해 재판부는 “당시 서울광장에서 열린 집회 참가하려는 민주노총 조합원 중 6천명이 세종대로 전 차로를 점거했고 경찰이 설치한 질서유지선을 넘어 광화문광장으로 이동했다. 그 자체 형사처벌에 해당하는 행위고 서울광장 집회 참가자들은 금지통고에도 불구하고 당초 예정한대로 청와대 방면 행진할 가능성 높았다”면서 “집회 참가자의 신고 범위 일탈, 미신고 집회 및 집회금지장소에서의 집회 등 범죄행위를 긴급히 막을 필요가 있었다. 경찰은 차벽을 이용해 그 행진을 저지했던 것으로 목전에 임박한 위험을 제지할 다른 수단이 없었다”고 밝혔다.

고 백남기 농민을 사망에 이르게 한 살수차 운용에 대해 재판부는 “일부 위법한 행위가 있다해서 경찰의 살수차 운용 전체가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재판부는 “당시 시위대가 가한 행위는 차벽을 뚫고 청와대 방면으로 행진하려는 의도 하에서 이뤄진 것으로 살수는 밧줄을 이용한 경찰차벽 제거 시도를 제지하려는 의도 하에서 이뤄진 것”이라 지적했다.

재판부는 민중총궐기 외의 12차례 집회에 대해 한 위원장 측의 일반교통방해죄 무죄 주장과 경찰의 해산명령 위법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 위원장의 ‘범죄사실’엔 지난해 4월16일 ‘세월호 범국민추모행동’, 4월18일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범국민대회’, 4월24일 ‘민주노총 1차 총파업 집회’, 5월1일 ‘세계노동절대회 집회’ 등 12차례 집회 주도도 포함돼있다.

1심 판결과 달리 2심 재판부는 5월1일 ‘특수공용물손상’ 혐의와 11월14일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혐의는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선고 결과가 내려지자 마자 법정엔 탄식과 야유가 수차례 터져 나왔다. 방청석 곳곳에서 “너무한 거 아닙니까”, “아직 정신 못차렸어”, “박근혜랑 똑같은 사람들이다” 등의 항의가 제기됐다. 법정은 민주노총 조합원 및 한 위원장 석방을 주장하는 시민들 70여 명으로 꽉 들어찼다. 일부는 법정에 들어오지 못해 법정 밖 복도에서 선고 결과를 기다렸다. 선고 직후 눈물을 흘리며 법정을 나가는 조합원도 있었다.

민주노총은 판결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감형은 면피이며, 촛불민심이 아니라 권력의 눈치를 본 터무니없는 유죄판결이고 중형선고”라면서 “오늘 촛불혁명의 밑불을 지펴 올린 민중의 생존과 권리를 위한 민중총궐기는 무죄다. 불법 권력에 맞서 민중과 함께 투쟁한 한상균 위원장과 모든 구속자는 무죄”라고 주장했다.

한 위원장은 선고 후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지금 우리는 촛불을 들었지만, 우리는 시민들과 함께 부패한 권력, 기득권 세력과 전쟁을 하고 있는 중이다. 거듭 말하지만 나의 신변을 걱정할 것도 신경 쓸 것도 없다”면서 “이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도록 동지들 좀 더 해주시기 바란다. 감사하다”고 심경을 전달했다.

▲ 13일 한상균 위원전 2심 선고 공판이 끝난 직후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2심 유죄 선고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변백선 '노동과 세계' 기자

검찰이 제기한 한 위원장의 범죄 사실은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특수공무집행방해, 일반교통방해 및 집시법 위반 등이다.

검찰은 2012년부터 2015년까지 한 위원장이 주도한 12차례의 집회 및 171일간의 점거농성에 대해 공소사실을 제기했다. 2015년엔 11월14일 민중총궐기 집회를 포함해 4월16일 세월호 범국민 추모행동, 4월18일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범국민대회, 4월24일 민주노총 1차 총파업 집회, 5월1일 세계 노동절 집회, 5월6일부터 28일까지 4차례 열린 공무원연금 강화를 위한 공동투쟁본부 집회, 8월28일 민주노총 집중행동, 9월23일 민주노총 3차 총파업 집회 등 11차례 집회가 공소사실에 포함됐다.

2014년 5월24일 세월호 국민대책회의 추모 집회와 관련해서도 한 위원장은 일반교통방해죄와 집시법 위반 혐의를 적용받았다. 한 위원장이 쌍용자동차 해고자 복직 문제 해결을 위해 2012년 11월20일부터 2013년 5월9일까지 171일 간 평택 송전탑 점거농성을 한 데 대해서도 집시법 위반 및 업무방해 혐의가 적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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