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서초 삼성타운' 내 알박기 집회를 위해 '알바'를 동원해온 사실이 확인됐다. '삼성 직원들이 주최하는 집회'라는 삼성 측 주장이 허위임이 드러난 것과 동시에 다른 시민의 집회·시위 자유권을 침해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삼성생명 등 삼성그룹 계열사는 모 인력파견 전문업체 운영자 한아무개씨와 계약을 맺고 '삼성전자 서초사옥' 빌딩 맞은편에서 열리는 수요 집회 참가자로 일용직을 동원했다. 쉽게 말하면 삼성 측이 '집회 개최'를 도급의 형태로 떼어 내 도급·파견 전문업체에 넘긴 것이다.

확인된 계약 기간은 지난 3월부터 9월 초까지지만 한씨는 지난 해에도 삼성 측과 계약을 맺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미디어오늘은 이 같은 사실을 일용직으로 집회에 참석한 경험이 있는 A씨와 B씨의 증언을 통해 확인했다.

▲ 서초동 서초대로74길에 있는 '서초 삼성타운'에 삼성물산 서초사옥, 삼성생명 서초사옥 및 삼성전자 서초사옥이 밀집해있다. 사진=네이버지도 캡쳐

B씨는 지난 6월 말 경, 실제 계약자인 한씨를 대신해 인력 파견 계약서를 작성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계약은 삼성생명 서초사옥 건물 지하 3층에서 이루어졌고 삼성생명 직원이 삼성 측 계약자로 나왔다. B씨는 해당 계약서를 '용역계약서'라고 불렀다.

계약서에 따르면 일용직 인원은 10명이고 한 명 당 수당 10만원이 책정됐다. 근무 시간은 본관 앞 소집 시각인 오전 6시30분부터 오후 4시30분까지였다. 계약 조건엔 '삼성 직원처럼 보이게끔 복장을 단정히 할 것', '삼성물산 집회에 참가한다고 주변에 말하지 말 것', '휴대폰 사용하지 말 것', '기자나 다른 시위 참가자가 말을 걸어도 무시할 것'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이들의 업무는 구호가 적인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매주 수요일마다 삼성 본관 사옥 정문 바로 맞은 편 자리를 지키는 것이었다. 본관 정문 맞은편이 중요한 이유는 수요일마다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전 계열사 사장단 회의가 열리기 때문에 이들 임원이 기자회견, 집회 등을 볼 수 없게 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수막엔 "국민 기본권인 행복추구권 침해하는 부당한 집시법 개정촉구 결의대회" 문구가 적혀 있었고 피켓엔 "기자회견 빙자한 불법집회 중단하라", "행복추구 가로막는 집회소음 결사반대" 등이 적혀 있었다.

일용직 5명이 매주 자리를 지켰다. 사장단 본관 출근 시각인 오전 10시 이전엔 3명이 자리를 지키면서 2명씩 30여 분 동안 돌아가면서 휴식을 취했다. 사장단 회의 시간인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는 4~5명이 집회 자리를 지키며 1명씩 돌아가면서 15~20분 동안 자리를 비웠다. 오후 2시부터 5시 경까지는 다시 3명이 자리를 지켰다. 집회가 끝나면 삼성물산 서초사옥 빌딩 1층 안내데스크 뒤 창고 공간에 현수막, 피켓 등을 반납했다.

이재용 부회장 등 삼성 측 고위 간부가 오후 5시 이후 건물을 나가는 경우엔 추가 근로를 했고 추가 수당 지급 여부도 공지됐다. 이들 대부분은 근처 편의점 등에서 간단히 끼니를 해결했다. 이들은 일하는 동안 삼성 측 보안경비업체인 삼성에스원 직원의 지시를 받기도 했다.

▲ 지난 7일 오전, 삼성전자 서초사옥 맞은 편 '삼성 입주자 직장인 협의회'의 집회 모습. 사진=손가영 기자

이들은 고용될 때부터 자신들의 일이 '가짜집회' 자리 지키기란 것을 알았다고 했다. 일을 시작할 때 업무 내용을 전달받기 때문이다. 인력을 모집해 본 바 있는 A씨는 알바몬 등 구직사이트에 '피켓 용역 알바', '꿀알바' 등으로 홍보했다고 말했다.

한씨는 10만원에서 1만원을 수수료로 챙긴 뒤 9만원을 일용직에게 지급했다. 계약 인원 10명 중 실제로 고용하지 않은 5명 분의 수당은 업체 관리자 한씨의 이윤으로 돌아갔다. 인력 모집을 다른 담당자에게 재도급할 경우, 담당자는 9만원에서 1만~1만5천원 수준의 수수료를 챙긴 뒤 7만5천~8만원을 일당으로 지급했다.

문제는 이들이 다른 시민들의 집회·시위 자유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지난 2월부터 삼성물산 서초사옥 앞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방승아 과천철거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저 자리는 '성역'과 같다. 저기서 기자회견을 하려고 해도 삼성 경비들이 악착같이 막는다"고 지적했다.

서초 삼성타운엔 지난 8여 년 간 집회·시위가 끊긴 적이 없다. 과천·녹번 지역 철거민대책위는 매일 노숙농성을 하며 1인 시위를 열고 있다. 매주 수요일엔 삼성일반노동조합, 삼성전자 전 협력업체, 삼성SDI 직업병 피해자 등이 모여 공동 기자회견을 연다. 김성환 일반노조 위원장은 지난 8월3일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알박기 집회'가 열리는 공간에서 집회를 준비하다 보안요원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적이 있으며 지난 3년 동안 해당 자리에서 집회를 연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 지난 7일 오전, 삼성전자 서초사옥 맞은 편 '삼성 입주자 직장인 협의회'의 집회 모습. 사진=손가영 기자

집회에 '알바'가 동원된 사실은 해당 집회가 삼성 측 직원들이 여는 것이라 말해 온 삼성 주장이 허위임을 방증한다. 지난 8월3일, 삼성본관 사옥을 경비하던 삼성 에스원 관계자는 "삼성물산 임직원들이 (집회를) 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인근 시위자들 또한 동일한 얘기를 들었다. 방 위원장은 "(집회 개최가 막힐 때마다) 경비들이 '우리(삼성)가 집회 신고한 자리'라고 수차례 말했다"고 지적했다.

서초경찰서에 등록된 집회 신고자는 '삼성 입주자 직장인 협의회'지만 이 또한 의심이 되는 대목이다. 지난 7일, 한 집회 참가자는 집회 취지와 일정에 대해 '잘 모른다'고 말했고 집회 주최자가 이 자리에 없냐는 말에 '없다'고 답했다. 그는 삼성물산 직원도 아니고 '알바'도 아니라고 답했다.

'서초 삼성타운'은 삼성물산 서초사옥(서초대로74길 14), 삼성생명 서초사옥(서초대로74길 4) 및 삼성전자 서초사옥(서초대로74길 11) 세 동이 밀집해 있는 '서초구 서초대로74길'을 이른다. 삼성전자 사옥엔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 및 이건희 회장 집무실이 입주해있다. 현재 삼성물산은 판교와 잠실 등으로, 삼성전자는 경기도 수원 등으로 이전했다. 현재 세 건물의 소유주는 각각 삼성물산주식회사, 삼성생명보험주식회사, 삼성전자주식회사다.

▲ 삼성전자 서초사옥 맞은 편 도로에 있는 과천 철거민 농성장. 매주 수요일 오전9시 집회는 이 농성장 근처에서 열린다. 사진=손가영 기자
이와 관련해 삼성생명보험 측 관계자는 "(B씨가 말한) 계약 당시 삼성생명 본사는 여기에 없었다. 7월까지 태평로에 있다가 8월에 서초사옥으로 옮겨온 것"이라면서 "관련 업무 부서를 다 조사해본 결과 그러한 계약을 한 직원은 확인되지 않았다. 삼성생명 직원이라 단정적으로 쓰기 힘들어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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