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을 통해 청와대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을 지속적으로 사찰하며 소속 변호사들을 곤경에 빠트리려고 했던 구체적 정황이 나타났다. 전국언론노조와 언론개혁시민연대, 민변 등은 8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정황을 폭로하며 사법부를 유린한 청와대를 강하게 비판했다.

김영한 비망록 6월28일자에는 “변협 행보 상식에 맞지 않는 경우 / 법무행정 관련 신중한 처사 해달라고 당부 / 첫 직선제 회장→회원들에게 민감 / 내부에 민경한 민변 출신자가 인권위원장 / 내부에서 발언권 강하고 / 대검 감찰본부장 자천 / 1958년생. 법무법인 상록 / 화순. 광주고. 성대. 19기. 법무부감찰위원”이라고 적혀있었다. 청와대가 민변 소속으로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이사였던 민경한 변호사의 이력과 성향을 점검하며 그가 변협에 끼칠 파장을 예측하고 있던 대목이다.

청와대는 민변 11대 집행부의 이력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6월30일자 비망록을 보면 “민변 한택근(61년생. 경신고-서울대 22기) 부회장 이상호(18기) 이석범(22기) 정연순(23기)”라고 적혀있다. 사법연수원 기수까지 빠짐없이 적어놓은 대목에선 이들의 이력을 지속적으로 파악하고 약점을 잡아내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 김영한 비망록 9월1일자.
청와대는 정당해산 및 세월호 유족 측 변호사 명단도 일일이 확인하고 있었다. 대부분 민변 소속 변호사들이었다. 9월1일자 비망록을 보면 “통진당 측 주요변호사 : 김선수, 이재화, 김진, 이재정, 이광철”이 등장하고 “세월호 유가족 측 주요 변호사 : 권영국, 박주민, 김용민, 오영중”이 등장한다. 청와대 입장에서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과정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에 법률적 지원을 하고 있던 민변 변호사들이 달가울리 없었다.

실제로 10월26일자 비망록에는 “민변 변호사 징계 추진 현황 보고 요”란 대목이 나온다. 며칠 뒤인 11월3일 당시 김수남 서울중앙지검장은 쌍용자동차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대한문 집회에 참석해 경찰관을 다치게 하는 등 공무수행을 방해한 혐의로 기소된 권영국, 김유정, 송영섭, 이덕우, 김태욱 변호사와 유우성 간첩 사건 변호인인 장경욱 변호사, 세월호 시위사범 변호를 맡은 김인숙 변호사 등 7명의 징계를 변협에 신청했다.

법조계를 이용해 여론조작에 나서려했던 정황도 나왔다. 7월7일자 비망록에선 “보수법률단체 활용 : 헌변·시변 커넥션 확보토록”이란 대목이 나온다. 이를 두고 민변은 “청와대가 변호사단체를 활용해 여론을 왜곡하려 한 조치”라고 비판했다. 9월6일자에선 “법원 지나치게 강대, 공룡화/길을 들이도록(상고법원) 갑일시에만”, “법원도 국가안보에 책임 있다는 멘트 필요→국가적 행사 때”라는 대목이 등장했다. 민변은 “청와대가 상고법원을 이용해 법원을 길들이고 법원 지도층과 교류를 강화하겠다는 내용으로 헌법상 3권분립 제도를 부정하는 행태”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 사법부 유린의 중심에 있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이치열 기자
청와대가 사법부의 독립성을 부정하는 행위는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9월22일자 비망록에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대선개입 관련 재판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개진한 김동진 판사를 가리켜 “비위 법관의 직무배제 방안 강구 필요”라고 적혀있었다. 이후 12월3일 대법원은 김동진 판사에 대해 법관윤리강령 위반으로 정직 2개월 처분을 내렸다. 그해 12월17일에는 “정당해산 확정, 비례대표 의원직 상실”이란 대목이 나오는데 이는 청와대가 12월19일 헌법재판소 통합진보당 해산결정 내용 및 논의사항을 미리 알고 언급한 것으로 읽히고 있다. 이를 두고 민변은 “헌법재판소의 논의 내용이 유출된 정황으로 헌재의 독립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심각한 사안”이라고 우려했다.

비망록 9월4일자에선 아예 “법원 영장-당직판사 가려 청구토록”이란 대목마저 등장했다. 민변은 “청와대가 당직판사의 명단과 성향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조치인데 이 역시 법원에 대한 부당한 개입”이라고 비판했다. 강문대 민변 언론위원장은 “청와대가 이렇게 민변에 관심이 많았는지 몰랐다. 청와대 수뇌부에서 이렇게 체크했다면 (정부)일선에선 얼마나 세세한 조치가 있었을지 경악을 금치 못한다”고 말했다. 민변은 김영한 비망록에 등장한 내용을 두고 조만간 김기춘 전 실장 등을 대상으로 한 고발조치와 변협차원의 문제제기를 요구할 계획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