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꼴이 이렇게 된 것에 사법부의 책임이 없습니까? 청와대를 상대로 정보공개소송을 제기한 지 벌써 2년 2개월이 지나고 있습니다.”

지난 4일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대표가 서울고등법원에 제출한 ‘변론기일 지정 및 변론종결 요청서’ 서두다. 청와대가 ‘재판 지연 수법’을 쓰는 것을 재판부가 눈감아 주고 있는 데 대한 항의 표시다.

지난 2년 간 ‘세월호 7시간’의 진실이 은폐돼 온 데에 사법부도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재판 과정 중 청와대의 정보 은폐 시도를 통제할 권한을 가졌음에도 이를 방관해 온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대표가 지난 12월4일 서울고등법원에 제출한 변론기일지정 및 변론종결 요청서 중 일부. 사진=하승수 대표 제공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8월30일, 하 대표가 제기한 청와대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소송 항소심 첫 번째 변론기일에서 청와대 측의 ‘사실조회신청’을 받아들였다. 증거 신청 절차 중 하나로, 원고나 피고가 직접 증거를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법원에 필요한 조사나 문서 사본·등본의 송부를 촉탁하게 하는 것이다. 증거신청은 법원 판단에 따라 채택될 수도 있고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청와대의 사실조회신청은 ‘시간 끌기’ 외에 증거 입증으로서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는 미국·독일·일본대사관에 ‘해당 나라의 대통령 기록 관련 법령이 어떻게 돼 있는지를 조회해서 회신을 받아 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하 대표는 “법령은 온라인 검색을 통해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자료일 뿐더러, 청와대는 한 나라 최고 권력기관으로서 직접 대사관에 요청하거나 번역해서 제출하면 될 일”이라며 “왜 굳이 법원을 통해 증거를 신청하나. 법원에 요청하면 절차상 시간이 지연된다”고 지적했다.

법원이 청와대의 사실조회신청을 채택한 첫 번째 변론기일 이래로 3개월 이상이 지난 현재까지 변론기일은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변론기일 당시 재판부는 ‘몇 달은 걸릴 테니 나중에 지정하겠다’는 이유로 두 번째 변론기일을 정하지 않은 채 공판을 종결했다.

청와대를 상대로 한 정보공개거부 취소처분소송은 1심 판결에만 1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걸렸다. 하 대표는 2014년 10월 소를 제기해 지난 3월23일에 돼서야 1심 판결을 받았다. 약 1년 5개월이 소요됐다. 한겨레도 2014년 12월 같은 취지의 소를 제기했고 1년 10개월 가량이 지난 2016년 10월 판결이 선고됐다.

▲ 청와대의 7시간 해명 이후 21일자 신문지면 모음.

재판부의 사법적 판단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까닭은 해당 소송은 쟁점이 단순명확한 사건이라는 데 있다. 하 대표는 변론기일 지정 요청서에 “세월호 참사 당일 청와대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에 관한 정보, 그리고 청와대의 예산집행관련 서류와 정보목록이 공개대상정보인지 아닌지만 판단하면 되는 것”이라면서 “세월호 참사 관련 정보 은폐를 사법부가 묵인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 반문했다.

1심 결과에도 법원이 ‘봐주기 판결’을 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법원의 ‘공개 명령’에 청와대가 거듭 불응했음에도 이에 대한 입증책임을 청와대에 물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법적으로 재판부는 명령에 응하지 않은 원고 혹은 피고에 불이익을 줄 수 있게 돼 있다.

하 대표가 제기한 1심 소송 과정에서 재판부는 정보공개법에 따른 ‘비공개 열람·심사’를 하겠다고 청와대에게 통보했다. 재판부만 해당 정보를 비공개로 본 다음 공개 대상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취지였다. 청와대는 명령에 불응했다.

하 대표는 1심에서 부분 승소하며 일부 자료에 한해 정보공개 처분이 내려졌으나 실질적으로는 ‘패소’했다. 하 대표가 청구한 ‘세월호 관련 서면보고 내용’ 공개청구는 기각됐다. 재판부는 ‘대통령과 피고 대통령비서실장 사이에 생산된 의사소통기록물로서, 공개될 경우 업무의 공정한 수행 등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정보’라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현재 하 대표와 한겨레 모두 원고·피고 쌍방의 항소로 2심을 진행 중이다. 하 대표는 지난 8월 첫 변론기일이 시작됐다. 지난 11월 초 항소장을 제출한 한겨레는 변론기일 지정을 기다리고 있다.

3개월이 경과돼도 두 번째 변론기일이 지정되지 않는 상황에 대해 하 대표는 “재판부는 변론기일을 즉시 지정하고, 변론을 종결해서 판결을 내려주시기 바란다”면서 “그렇지 않을 경우에 대한민국 사법부는 국민의 신뢰를 얻을 방법이 없을 것”이라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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