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없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지난 7일 국회에서 2차 청문회를 열었다.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등 ‘문고리 3인방’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도 참석하지 않았다. 고영태·차은택 등의 증인의 입을 통해 일부 밝혀진 사실이 있긴 하지만, 우병우·김기춘 등의 법을 무기로 한 청문회 ‘농단’은 국민들을 분노하게 했다는 평가다.

‘왕실장’ 김기춘, 시종일관 “몰랐다”, “죄송”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최순실씨 존재 자체를 아예 몰랐다며 국정농단 사실을 잡아떼는 모습으로 일관했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7일 오후 11시까지 “알지 못했다” “잘 모르겠다”는 말을 60번 반복했다. “부끄럽고 죄송하다”는 사과는 24번 했다.

그러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청문회가 시작된지 12시간만인 7일 오후 10시 경 “최순실 이름 들어봤다”고 시인했다. 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검증 청문회 영상을 근거로 제시하며 “당시 법률지원 특보 단장이던 김 전 실장이 최씨를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날 청문회에서는 최순실에 대한 루머가 언급됐다.

이를 본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나이가 들어서”라며 “이름은 못 들었다고 볼 수 없다”고 말을 바꿨다. 그러면서도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최씨를 만난 적은 없다. 직접 최씨에게 물어보라”며 끝까지 만난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 중앙일보 5면 기사 갈무리.
‘비서실장 지시사항’이 담긴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일지 역시도 아는 바가 없다는 입장이다. 김 전 실장은 “실장이 하나하나 지시했다고 볼 수 없다”며 “회의에 참여한 각 수석들의 의견이나, 작성한 분(김영한)의 생각이 혼재돼 있다고 생각한다”고 잡아뗐다. 헌법재판소와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시기와 결론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의혹도 “완전한 루머”라고 답했다.

김 전 실장은 지금까지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에 부실대응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때마다 “대통령이 계시는 곳이 바로 대통령 집무실”이라며 관저에서 정상적 업무 수행을 진행했다고 맞섰지만 이날 국정조사에서는 “대통령의 사사로운 생활”이라며 모른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오후 머리 손질을 하느라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모르쇠 답변은 이어졌다. 최교일 새누리당 의원이 “매일 아침 9시에 머리손질하는 게 사실이냐”고 묻자 김 전 실장은 “관저 내 사사로운 생활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답했다. 황영철 새누리당 의원은 김 전 실장에게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 머리를 손질한 미용사를 아느냐고 물었는데, 김 전 실장은 역시 모른다고 발뺌했다.

황 의원은 미용사를 청와대 계약직으로 고용한 당사자가 김 전 실장이라는 점을 들이댔는데 이에 김 전 실장은 “총무비서관실에서 해서 명의는 제 이름으로 나갔는지 모르겠다”며 부인했다.

국정농단 청문회 농단한 증인들

우병우와 최순실 등 핵심 증인들의 불출석 이유도 가지각색이다. 최순실씨는 공황장애, 최순득씨는 섬유근육통, 이재만 전 비서관은 극심한 스트레스가 이유다.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은 뇌경색 전조증상을 이유로 들었다.

건강 상의 이유 이외에도 증인들의 불출석 이유는 다양하다. 한겨레에 따르면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과 정호성 전 비서관의 경우 ‘재판·수사 진행 중’이라는 이유를 제시했다. 안봉근 전 비서관은 ‘자녀에게 영향을 미쳐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를, 최순실씨 조카인 장승호씨는 운영하고 있는 유치원의 학부모 미팅 일정이 있다는 이유를 대기도 했다.

▲ 경향신문 2면 기사 갈무리.

불출석 이유도 없이 출석 통지서 수령자체를 거부하는 이도 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우병우 전 수석의 장모인 김장자씨, 최순실 딸 정유라씨, 홍기택 전 KDB산업은행 회장 등은 불출석 사유서를 미제출했다.

우병우 전 수석의 경우 김장자씨의 서울 강남 자택에 숨어있다는 첩보가 알려지기도 했다. 국회 입법조사관과 경호관은 충북 제천의 친척집 농장과 경기도 용인시의 기흥골프장까지 찾아갔지만 이들은 동행명령장을 수령하지 않았다.

해외에 있는 정유라·장승호씨, 입원 사실 증명원을 제출한 이성한씨 등 3명을 제외한 나머지 11명에 대해서는 오후 2시까지 출석하라는 동행명령장이 발부됐지만, 주요 증인들은 결국 참석하지 않아 반쪽짜리 청문회를 만들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다.

고영태·차은택 국정농단 진술

이날 청문회에서 비교적 솔직하게 답변을 이어간 것은 고영태 전 더블루케이 이사와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이었다. 이들은 언론에서 언급된 일부 국정농단 의혹에 대해 사실이라고 진술했다.

차은택 전 단장은 이날 청문회에서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과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최순실씨에게 추천했다는 의혹을 인정했다. 또한 다른 장관의 인사에도 최씨가 관여했는지에 대한 질문에서도 “추정해서 말하기는 힘들지만 제 의견으로는 그렇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심지어 차 전 단장은 최순실씨가 진술 관련 입을 맞추자는 제안을 했다는 사실도 밝혔다. 차 전 단장은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후 일본에 있을 당시 최씨와 통화했다면서 “당시 본인과의 관계는 (최순실 소유의) 테스타로사 카페에서 프랜차이즈 사업을 위해 만난 것이고, 문화와 관련해서는 모르는 일이라고 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고영태 전 이사는 최순실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옷값을 대신 내준 사실을 인정하기도 했다. 한겨레에 따르면 이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뇌물 혐의를 직접 적용할 수 있다. 옷을 상납받은 대가로 최씨에게 각종 이권을 챙겨줘 ‘수뢰 후 부정처사’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 한겨레 4면 기사 갈무리.
고영태 전 이사는 이날 청문회에서 황영철 새누리당 의원의 ‘박근혜 대통령에게 가방과 옷 100여벌을 만들어줬다고 했는데, 옷과 가방 비용을 모두 최순실씨로부터 받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또한 고 전 이사는 “최씨가 본인 지갑에서 돈을 줬고, 영수증을 주면 거기에 맞게 계산해줬다. 최씨 개인 돈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고영태 전 이사와 차은택 전 단장의 진술이 엇갈린 것은 최순실씨와 고 전 이사 와의 관계를 두고서다. 고영태 전 더블루케이 이사는 최씨와의 관계에 대해 “블루케이의 직원으로 있었지 가까운 측근이라는 건 전혀 사실무근”이라면서도 “(최씨가) 2년 전부터 모욕적인 말과 직원들 사람 취급을 안 하는 행위를 많이 했다”며 거리가 멀어졌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고 전 이사는 2년 전인 2014년 즈음 정유라의 강아지를 집에 두고 나갔다며 최순실과 다퉜다고 밝히기도 했다.

차은택 전 단장은 고영태 전 이사와 최순실씨가 어떤 사이냐는 질문에 “굉장히 가까운 관계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두 사람의 사이가 ‘남녀 관계’라는 질문이 이어지자 고 전 이사는 “절대 그런 관계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외에도 이번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밝혀진 사실은 적지 않다. 최순실씨의 조카 장시호씨는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는 최순실 이모의 아이디어였다”며 “이모가 운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을 최순실씨가 어떤 사람으로 봤느냐는 질문에 고영태 전 이사는 “수행비서”라고 답하기도 했다.

세월호 골든타임 때 머리손질, 청와대 시인

지난 6일 한겨레와 SBS 등의 보도를 통해 전해진, 박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머리손질 논란에 대해 청와대 역시 20분 가량의 머리 손질 시간이 있었다는 사실이 있었다는 점은 인정했다. 다만 통상 오전에 하는 머리손질을 왜 세월호 참사 당일에는 오후에서야 했는지는 답을 내놓지 못했다.

한겨레에 따르면 청와대 관계자는 “확실히는 모르겠다”면서도 “공식일정이 나오면 그에 맞춰서 미용사가 들어오고 보통의 경우는 본인이 손질할 것”이라고만 답했다. 이는 계약직 미용사들이 ‘거의 매일 청와대를 출입하고 있다’는 전날 해명과도 배치되는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의 머리 손질을 담당한 정 모 원장은 SBS와의 인터뷰에서 “매일 아침 8시에 (청와대로) 갔다가 10시 반에 (미용실) 문을 연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한겨레에 따르면 청와대 관계자는 “항상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답했다.

▲ 경향신문 8면 기사 갈무리.
그러나 분명하게 드러난 사실은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은 정상적인 출근도 하지 않았고 머리 손질에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해양경찰청장과 전화로 “인원구조에 최선을 다하라”고 한 당일 오전 10시30분부터 “구조상황을 재확인하라”며 국가안보실장과 통화한 오후 2시11분까지 박 대통령의 행적은 여전히 공백이다.

또한 박 대통령이 오후 3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방문준비를 지시해놓고 오후 5시15분에 도착한 것도 의문이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청와대 관계자도 “그 부분은 설명이 안된다”고 했다.

비박계, 마지막까지 세월호7시간 걸고 넘어지나

탄핵 표결 절차가 하루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비박계가 마지막 카드를 던져 야권이 고심에 빠졌다. 탄핵소추안 내에 가결 가능성을 높여야 된다며 ‘세월호 7시간’을 탄핵 사유에서 제외해달라고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 서울신문 1면 기사 갈무리.
서울신문에 따르면 비주류 중진인 김재경 의원은 “세월호 참사는 성실성의 문제에 따른 것으로 아직은 사실관계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고, 오히려 다른 중대한 사안이 더 많은데 세월호 문제 때문에 탄핵 심판 과정이 더 오래 걸리는 등의 실익이 적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비주류 의원은 “세월호 문제로 20명 정도의 의원들이 흔들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고 서울신문은 보도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역시 “새누리당 비주류 의원들 중 몇 분이 이것(세월호 7시간)을 탄핵안에서 빼지 않으면 탄핵에 찬성할 수 없다고 해 고민 중이다. 상당히 위험해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반면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어떠한 경우에도 세월호 7시간을 반드시 소추안에 지금 포함된대로 견지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일부 친박계 내에서도 탄핵 찬성 기류가 확산되는 모양새여서 ‘세월호 7시간’안을 넣는 것 이외에도 다른 변수들은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비박계 역시 한겨레에 따르면 세월호 대목을 삭제하는 것이 공식적인 요구가 아니라는 입장이어서 탄핵안 처리에 큰 변수가 아니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겨레에 따르면 친박계 핵심으로 꼽히는 한 중진 의원은 “(친박계 중에) 특히 수도권이 많이 흔들리는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하면서 “탄핵 표결 전까지 초·재선들을 만나서 최대한 (반대하도록) 설득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한편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세월호 7시간’을 탄핵 소추안에 포함시키는 것은 초법적 발상이라며 비박계의 반대에 힘을 싣는 한편, 박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까지 감싸고 나섰다. 

▲ 조선일보 8일자 사설 갈무리.
조선일보는 “세월호 참사는 여객선 불법 증·개축과 화물 과적, 평형수 부족, 부실고박(화물 고정), 운항 미숙 때문이었다. 세월호 사고가 알려졌을 때는 이미 짧은 구조 골든타임이 지나간 뒤였다. 박 대통령이 그 시각 바다 현장에 있었어도 달라질 것이 없다”며 “마치 박 대통령이 잘못해 승객들이 희생된 것처럼 하는 주장은 비난을 위한 공격”이라고 전했다. 

동아일보는 반면 사설을 통해 박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머리 손질에 대해 비판을 내놓았다. 동아일보는 “사고 소식을 듣고도 계속 관저에 머문 데다, 경호 준비에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재난본부 방문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지체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또한 “(세월호 7시간을 탄핵소추안에) 넣고 안 넣고를 떠나 세월호 7시간 문제는 국가 최고지도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부작위(不作爲)를 따지는 중요한 사안”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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