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의혹 관련 일본 산케이 신문 보도를 번역해 국내에 알린 외신 전문 번역 매체 ‘뉴스프로’와 외신에 박 대통령 비판 광고 게재를 주도한 미국 교민 커뮤니티 사찰을 지시한 정황도 드러났다. 

6일 한겨레가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 유족의 동의를 얻어 입수 후 보도한 비망록을 보면 2014년 9월22일에 김기춘 전 실장을 뜻하는 ‘長’(장)이라는 표시 옆에 ‘비위 법관의 직무배제 방안 강구 필요(김동진 부장)’라는 메모가 등장한다. 김 부장은 열흘 전인 12일 법원 내부 통신망에 ‘국정원 댓글 사건’ 재판에서 원세훈 전 원장이 선거법 무죄 판결을 받은 데 대해 비판 글을 올린 판사다. 

이 메모 밑에는 ‘米(미국을 뜻하는 것으로 보임) 뉴스프로, 미시유에스에이’라는 글귀가 나오고, 이어 ‘산께이 귀국 후 보고’라고 적혀 있다. 이 메모가 기록될 시점은 2014년 8월4일 ‘산케이, 朴 사라진 7시간, 사생활 상대는 정윤회?’라는 제목으로 산케이 보도를 번역해 전한 뉴스프로 기자가 검찰에 고소당하고, 검찰이 이 기사를 다음 아고라에 올린 한국 거주 뉴스프로 기자의 집도 압수수색했던 때였다.

6일자 한겨레 보도
아울러 김 전 수석의 메모가 적히기 전 재미 한인여성 커뮤니티인 미시USA는 9월21일 박 대통령의 유엔 총회 참석을 앞두고 세월호 참사에 대한 박 대통령의 책임을 촉구하는 뉴욕타임스 전면광고 모금 캠페인 벌이고 있었다. 

미시USA 회원들은 광고비 모금을 통해 2014년 5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뉴욕타임스(NYT)에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전면광고를 실었으며, 이들은 박 대통령의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한 9월24일 NYT A섹션 11면에 ‘대한민국의 진실과 정의는 무너졌는가?(The Collapse of Truth and Justice in South Korea?)’라는 제목의 전면광고를 게재했다.

뉴스프로도 6일 한겨레 보도를 인용하며 “당시 산케이 기사 번역 보도 후 뉴스프로에 대한 갖가지 탄압들이 청와대의 지시로 인해 벌어진 것임이 사실로 드러났다”며 “이후 청와대는 산케이신문 가토 지국장의 입건과 더불어 뉴스프로 기자에 대한 압수수색, 계좌추적, 신상털이 등 꾸준하게 탄압을 가해왔다”고 밝혔다.

뉴스프로는 이어 “박근혜 정권에게 단지 세월호 문제만이 아닌 외신 국내보도를 통제하지 못하게 하고 있는 눈엣가시 뉴스프로에 대한 적대감의 발로로 볼 수 있다”며 “메모에 뉴스프로와 함께 등장한 미시USA는 박근혜 정권 출범 후 윤창중 사건, 세월호 참사 등에서 미주 동포들의 분노를 결집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해 박 정권 차원에서 대책 마련에 들어갔던 것이 아닌가하는 추론이 가능해진다”고 지적했다. 

2014년 9월24일자 조선일보 10면
김 전 실장의 지시사항이 전달된 후 9월24일 조선일보도 “방미 대통령 따라다니며 ‘스토킹 시위’…대놓고 성적 막말 피켓도” 기사를 통해 뉴스프로와 미시USA를 미국의 종북·좌파 단체라고 공격했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박 대통령이 제69차 유엔 총회 기조연설을 하기 위해 미국 뉴욕에 도착한 23일(한국 시각), 재미교포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뉴욕 주재 한국 총영사관과 유엔 본부 주변에서 박 대통령을 비난하는 시위를 벌였다”며 “이 가운데 일부는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내용은 물론 세월호 침몰 당일 박 대통령의 행적과 관련해 저급한 성적(性的) 내용을 담은 피켓을 들고 시위에 나섰다”고 비판했다.

뉴스프로는 “이후 박근혜 정권은 뉴스프로 후원계좌를 추적했던 사실도 드러났다”며 “당시 은행 계좌는 계좌내역을 수사기관이 들여다볼 경우 계좌 당사자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게 돼 있었고, 은행으로부터 이 같은 사실이 한국 내 담당자에게 통보가 오면서 드러나게 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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