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조기에 막을 내리게 되면서 ‘상징’과도 같은 ‘창조경제’ 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과학자 출신 비례대표인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문미옥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8월 일찌감치 정부조직 개편법안을 발의했다. 미래창조과학부를 폐지하고 과학기술부, 정보통신부로 나누는 게 골자다. 과학기술부는 부총리급으로 격상된다. 5일 국회에서 문 의원을 만나 박근혜 정부의 과학, 기술, ICT분야 평가와 대안을 들었다.
- 차기 정부조직 개편법안을 미리 발의하는 건 이례적이다. 보통 차기 정부가 꾸려지고 인수위 때 정부조직 개편 논의를 하지 않나.
“그동안 인수위원회가 꾸려진 다음에야 정부조직을 폐쇄적으로 만들었다. 그 결과 이명박 정부 때 교육부와 과학기술부를 합쳐버렸고, 박근혜 정부 때 다시 찢겨져 아직도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는 미래창조과학부를 만들게 됐다. 어떤 부처든 합치거나 나누면 분명 예측하지 못한 문제들이 발생하기 때문에 당사자들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이번에는 미리 토론하고 논의하자는 측면에서 법안을 만들게 됐다.”
- 이전 정부처럼 과학기술부·정보통신부를 다시 분리하는 게 꼭 정답인지 의문이다.
“참여정부 때 연구개발을 중심으로 하는 과학기술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한 정부조직이 완성됐다고 생각한다. 이때 이미 과기부는 부총리급으로 격상됐는데 정부가 바뀌면서 와해됐다. 과학기술계는 다시 별도의 과기부를 만들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특히 지금은 각 부처에 R&D(연구개발)가 흩어져 있다. 부처이기주의로 인한 칸막이 문제도 있고 중복성 문제도 있다.”
- 보수 정부는 기초과학보다는 산업에 방점을 찍고 정책추진을 해온 건데, 다시 부처 구조가 바뀌면 5년 만에 혼란만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 않을까.“
이런 주장을 하는 이유는 과학기술부를 분리하는 게 진보 정부의 기조였기 때문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 때 교육과학기술부를 만들어놓고 과학기술 연구개발 추진체계가 작동을 하지 않으니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별도로 만들었다. 이번 정부에서도 미래창조과학부를 만들었지만 과학기술전략회의를 별도로 만들었다. 과학기술부의 필요성을 보수 정부가 시인하는 셈이다.”
-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정부조직 개편법안에 대해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다. 혁신을 담당하는 부처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을 낸 바 있다.
“혁신의 관점에서 보자. 혁신을 위해서는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지식이 필요하다. 이것을 창출하는 가장 핵심적인 분야가 바로 과학기술이다. 지속적으로 기술을 축적하지 못하는 나라는 변화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 OECD에서 과학기술혁신지수를 국가별로 발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과기부를 독립시키자는 건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과학과 기술을 경제발전을 위한 하부의 종속된 개념으로 보지 말자는 취지다.”
- 과학기술부를 별도의 부처로 두면 어떤 이점이 생기나.
“관건은 예산을 편성하는 권한이다. 이명박 정부 때 대통령이 기획재정부에 반농담식으로 ‘기재부는 가진 것도 많은데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 R&D 예산 정도는 줘도 되지 않느냐’고 했음에도 기재부가 버틴 적 있다. 지금 과학기술전략회의든 미래부든 과학기술에 관한 예산권을 갖고 있지 않다. 과기부를 부총리급으로 만든다는 건 새로운 기술과 지식 창출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부처를 독립하고 예산권과 조정권을 가지도록 힘을 보탠다는 의미다.”
- 이렇게 정부조직이 개편되면 역으로 ICT 홀대 얘기가 나올 것 같다.
“김대중 정부 때 정보통신부를 만들었다. 당시에는 ICT라는 새로운 산업이 나타났기 때문에 산업을 육성했다. 네이버 같은 포털과 게임산업을 일으킨 바탕이 됐다. 20년 전 일이다. ICT를 별도의 산업으로 육성하는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현장에서도 ‘우리나라 주력산업인 제조업, 중소기업, 스타트업들이 ICT로 무장할 수 있도록 오히려 산업부나 중소기업청에 ICT 분야를 붙이는 게 필요했다’고 말한다.”
- 창조경제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인식 자체가 틀렸던 건 아니다. ICT를 융합해서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해야 한다. 그러나 추진하는 방식이 틀렸다. 힘 없는 과기부를 종속시켜서 추진할 사안이 아니었다. 과학기술을 중심에 두고 기초적인 지식과 기술을 계속 만들게 한 다음 시장이 산업화되거나 경제화 될 때 ICT로 무장하게 되도록 정책을 지원했으면 훨씬 더 좋은 성과를 거뒀을 거다. 국정농단이 없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 창조경제의 전초기지인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어떻게 보나.
“시도별로 센터를 만들겠다는 발상에 문제가 있었다. 이미 연구개발특구, 과학비즈니스벨트, 테크노파크 등이 전국에 있었다. 이미 있는 물리적 인프라들을 기반으로 ICT에 응용해 시너지를 내는 방식을 택했어야 한다. 그러나 시도별로 새로 물리적인 인프라를 또 갖추면서 이중삼중 투자가 됐다. 그 시스템은 현 정부가 끝나가는 현재까지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차기 정부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직 국회차원에서 센터를 없애려는 논의는 없었다. 오히려 정권이 바뀌면 우리가 아니라 각 센터를 담당하는 대기업들이 철수하는 걸 더 걱정하는 분위기다. 당장 국회에서는 센터가 방만하게 운영되는 걸 제어할 필요가 있다고 봤기 때문에 정권 마지막 해에 성과를 내기 위해 ‘무조건식’ 예산투자가 안 되도록 견제했다. 그런 관점에서 삭감된 예산이 좀 있다.”
- ICT가 주력인 미래부가 과학기술분야를 통제하게 되면서 과학기술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보나.
“R&D(연구개발)분야를 국가가 주도하겠다는 정책방향에 문제가 있다. 사실 R&D에서 국가가 투자하는 영역은 4분의 1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민간 영역으로 대부분을 민간 자율에 맡겨왔다. 그런데 현 정부는 대기업에 팔을 비트는 식으로 주도하려고 했다. 박정희 시대 때는 산업기반이 없어서 정부가 이끈 것인데, 이미 민간에서 더 많이 하는 R&D를 정부가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고 성과처럼 포장하는 거다.”
- 국가는 R&D 분야에 나서지 않아도 된다는 것인가?
“산업이 아니라 공적영역에서 담당해야 할 R&D는 따로 있다. 오늘 국회에서 AI(조류인플루엔자) 특별위원회가 열렸다. 관련 기술이 개발돼야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돈이 안 되니까 투자하지 않는다. 세월호도 지금 인양을 해야 하는데 우리 기술이 없어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이처럼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분야에 대한 기술적인 보강은 국가의 역할이다.”
- 과학기술 정책은 장기적으로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보나.
“시대가 바뀌었다. 성장시대에는 물적 투자와 인프라 투자가 필요하고 규제완화도 필요했다. 그러나 지금은 성숙시대로 가야하는 변곡점에 위치해 있다. 아직까지도 연구소를 지을 때마다 면세를 해 준다. 그러나 지금은 연구소들이 땅도 많고 건물도 있으니 ‘일할 사람’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법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축을 옮기는 거다.”
- 정작 정치권에서는 그런 인식을 잘 하지 않고 있다. 국정감사 때마다 “왜 노벨상 못받느냐”는 비판이 여야 막론하고 나온다.
“내 역할 중 하나가 정치권과 과학기술계의 인식 차이를 좁히는 것이다. 19조 원이 넘는 예산을 과학기술계가 받고 있는데 노벨상 못 받는다고 구박한다. 그러나 예산을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인 거다. 정부의 입김이 있는 국가주도의 기획과제나 연구관리에 많은 돈이 쓰인다. 지난해 통계를 보면 연구예산 중 기초연구에 할당된 비율은 38.3%에 불과하고 이 중에서도 순수 연구개발에 투입되는 비율은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 국정감사 때 비정규직 문제도 지적을 했다.
“정부출연 연구기관에 비정규직이 많아서 이 문제를 지적했더니 오히려 비정규직을 자르고 학생연구자를 대거 늘렸다고 한다. 학생들은 을도 아닌 병이다. 근로계약조차 맺지 못하고 박봉을 받고 일한다. 정부출연 연구기관에 있는 학생연구자만 5300명 가량이다. 학생연구자에게 근로계약서를 쓰게 하는 법안을 발의했고, 관련 내용은 이번 국감 부대의견으로 들어갔다.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방송통신분야도 전담하는데, 의정활동을 하면서 어떤 문제가 심각하다고 느꼈나.
“방송통신위원회에 공공성과 산업발전 두 가지 책무를 요구하지만 방통위 설치법을 보면 산업발전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의원들은 방통위원장을 불러놓고 공공성에 대한 질의를 하는데 오히려 방통위를 산업육성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방통위가 이 측면에서조차 일을 제대로 못 했다는 점이다.”
- 무엇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보나?“
UHD 도입과정에서 방통위는 직무유기를 했다. 내년 2월 UHD 본방송이 시작되는데, 절대 허가를 내주면 안 되는 것이었다. TV 제조사와 안테나, 셋톱박스 등 협의가 하나도 되지 않고 기술도 미비해서 당장 UHD를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미래부도 마찬가지다. 이들 부처는 방송계와 제조사를 대변하고, 또 조율하고 협력하면서 결론을 냈어야 하는데 사업자들 분쟁이라며 방치하다보니 피해는 시청자가 짊어지게 됐다.”
- 종합편성채널에 대해서도 산업적 관점에서 보는 문제점이 있나.
“지금 종편 재허가를 앞두고 콘텐츠 투자비용 문제가 결격사유인 것으로 알고 있다. 과거 종편의 출범 목표는 ‘방송산업 발전과 진흥’이었다. 사실 이 채널에 중립성과 공공성을 요구하기 힘든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콘텐츠 투자비용과 이로 인한 성과를 중점적으로 점검하고 제재를 내렸어야 하는데 이 역시 방통위가 제 역할을 못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