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나 다를까. 경제신문은 재벌이 아닌 국회에 분노했다. 청문회에서 재벌 총수들을 '죄인'취급한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이 와중에 중앙일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미래전략실 폐지 발언을 "과감한 결단"이라고 치켜세웠다. 

한경, "기업 총수를 하루종일 죄인 취급"

한국경제는 7일 1면 머리기사를 통해 "국회의원들이 대기업 총수를 상대로 본질에서 벗어난 호통과 막말을 쏟아냈다"면서 "원하는 답변을 듣지 못하면 인신공격에 가까운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의 부제는 "국회의원들, 글로벌 기업총수 하루종일 죄인취급"이다.

한국경제는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은 묻지 않은 채 오로지 기업을 정경유착의 주범으로 몰아붙였다"면서 "비선실세 국정농단의 전모를 파헤친다는 본래 목적에서 멀어져갔다"고 썼다. 

매일경제 역시 "'머리 굴리지 마라' '구치소 멀지 않다'...막말 청문회"에서 "질문의 수준이 막말, 인격모독까지 치달았다"면서 "광장의 촛불민심이 청문회에서의 날카롭고 영양가 있는질문으로 이어지기엔 의원들의 구태가 발목을 잡은 것"이라며 국회를 정조준했다.

▲ 7일 한국경제 1면.
조중동은 재벌의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경제신문과 유사한 '물타기성'보도를 내보냈다. "'머리 굴리지 마라' 망신 준 의원... '기억 안난다' 피해간 회장"(조선일보) "총수 9명에 '기꺼이 냈죠?' 최태원에겐 '구치소 멀지 않다'"(중앙일보) "'머리 굴리지 말라, 직원에 탄핵 당해' 대기업 총수들 불러놓고 면박-호통"(동아일보) 등이다.

중앙일보 "미래전략실 폐지, 과감한 결단"

삼성과 특수한 관계인 중앙일보는 이날 청문회를 어떻게 다뤘을까. 중앙일보는 이날 청문회를 삼성청문회로 묘사했다. "총 58차례 질의 중 43번 이재용 집중 삼성 청문회" 기사를 통해 삼성에 질의가 몰렸다는 점을 부각하고 "질의에 나선 여야 의원들은 이 부회장을 매섭게 몰아세웠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에는 "이 부회장은 손을 책상 아래 무릎 위에 모아놓고 등을 의자에 기대지 않은 공손한 자세로 답변을 이어갔다"는 불필요해 보이는 서술도 있었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청문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삼성그룹의 미래전략실 폐지도 과감한 결단"이라며 "지주회사로 체제를 바꿔나가고 있는 삼성으로선 투명경영의 체제 확립을 대외에 천명한 셈"이라고 치켜세웠다.


"송구하다" "기억 안 난다" "모른다"  

물론, 일부 의원이 무조건적으로 호통을 치거나 인신공격성 발언을 하는 건 문제가 있다. 그러나 재벌을 감싸고 국회의 구태만을 탓할 정도라고는 보기 힘들다. 사상초유의 국정농단 사태에 재벌의 공모 성격이 짙다는 문제가 있었고, 재벌총수들이 답변을 회피하는 등 태도가 불성실했기 때문이다. 

전경련과 재벌들은 국민연금 동원 논란이나 롯데 수사에 대한 로비 의혹 등에 대해 이구동성으로 대가성을 부인했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청와대의 출연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웠다"면서도 사업특혜와 총수사면 대가성 의혹을 부인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사회공헌이든 출연이든 어떤 부분도 대가를 바라고 하는 지원은 없다"고 말했다. 최태원 SK 회장 역시 "대가성이라는 생각을 갖고 출연한 적이 없다"고 말했고, 신동빈 롯데 회장은 "면세점 추가 입찰이나 수사관련 로비와는 관계없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CJ에 대한 인사개입이나 강제모금에 대한 발언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이미 폭로되거나 보도된 내용을 재언급하는 데 그쳤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재벌의 불성실한 답변에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경향신문은 "총수들은 동문서답, 모르쇠, 변명으로 책임을 피해갔다"면서 "민심의 분노는 국정농단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할줄 모르는 재벌총수들의 태도는 박 대통령의 엉뚱한 사과와 함께 국민의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일보 역시 "28년 만에 재현된 역사의 무대에서 총수들 발언은 그때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면서 "대기업도 공범이라는 국민의 인식과 차이"가 있었다고 보도했다.

대가성 밝혀낼 수 있을까?

결국 재벌의 '피해자 코스프레'는 성공했다. 이날 청문회에서 '작심발언'이 나오지 않으면서 과제가 만만치 않게 됐다. 재벌의 죄를 입증하기 더욱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동아일보는 "대가성을 한사코 부인한 것은 제3자 뇌물제공 혐의를 피하기 위해 준비한 답변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라고 분석했다. 제3자 뇌물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대가성'과 '부정한 청탁'이 밝혀져야 한다. 

공은 특검으로 넘어갔다. 한겨레는 "결국 특별검사가 철저히 수사해 진상을 밝히는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특검은 제3자 뇌물죄 혐의가 있는지 조사할 예정이지만 그간의 검찰수사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제대로 밝혀질지는 불확실하다. 

대통령의 퇴진거부, 야당 공격 나선 조선, 동아

박근혜 대통령이 6일 "탄핵소추 절차를 밟아서 가결이 되더라도 헌법재판소 과정을 보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차분하고 담담하게 갈 각오가 돼 있다"고 밝혔다. 탄핵안이 가결되더라도 물러나지 않을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탄핵이 의결되더라도 즉각 사임할 것을 요구해왔는데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문 전 대표와 야당을 비판하고 나섰다. 박 대통령이 국회가 원하는 탄핵을 '수용'했다는 점을 부각하고, 유력한 야권 대권주자에게 역습을 가하는 모양새다.

동아일보는 "광장 민심에 들떠 위헌, 위법적인 주장을 내놓아선 안 될 것"이라며 문 전 대표 등을 겨냥했다. 조선일보 역시 문 전 대표의 발언을 언급하며 "자기모순이자 무법적 발상"이라며 "마치 점령군 같은 행태"라고 비판했다.

이들 언론은 대통령이 퇴진하면 당장 큰 혼란이 있을 것처럼 묘사했다. 동아일보는 "촛불과 탄핵 바람 속에서도 대한민국의 체제는 지켜져야 한다"면서 "이 와중에 정치적 재기를 노리는 옛 통합진보당 잔존세력들이 설 자리가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 세월호 참사 당일 머리손질

한겨레는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미용사를 불러 90분 동안 머리를 손질했다고 보도했다. 한겨레에 따르면 서울 강남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정아무개(55) 원장이 낮 12시께 청와대로부터 '대통령의 머리를 손질해야 하니 급히 들어오라'는 연락을 받아 머리손질을 했다.

한겨레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의 헤어스타일인 올림머리를 하는데 통상 90분 정도 소요됐고, 이날도 비슷한 시간이 소요됐을 것으로 보인다. 12시는 이미 세월호 참사 전원구조가 오보이고 단원고 학생들을 비롯한 315명이 배에 갇혀 있다는 사실이 보고된 다음이다.

6일 밤 SBS도 같은 미용실 원장을 취재한 결과를 내보냈는데 내용은 다소 차이가 있었다. SBS는 미용실 원장이 오전에 한차례 청와대를 방문해 대통령의 머리손질을 한 이후 오후 3시경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 비상상황에 걸맞게 머리를 부스스하게 연출했다고 보도했다.

청와대는 "(머리손질에) 소요된 시간은 20여분"이라며 반박했지만 거짓말을 했다는 점을 시인하게 됐다.  앞서 이영석 청와대 경호실 차장은 5일 국회 국정조사 특위에서 세월호 참사 당일 "외부에서 (관저로) 들어온 인원은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혀 위증논란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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