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온갖 압력을 행사한 사실이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서 드러났다. 심지어 삼성 측이 국민연금이 투자위원회를 열기 전부터 국민연금의 결정을 알고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지난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가장 큰 논란은 합병 비율이었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이슈페이퍼에 따르면 구 삼성물산의 기업 가치는 17조원이 넘고 제일모직은 13조원 정도였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기관 ISS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을 0.95대 1로 분석했다. 삼성물산 주식을 10%넘게 갖고 있던 국민연금 기금운영관리본부 리서치팀은 0.46대 1이 적절하다고 봤다. 서울고등법원은 0.414대 1을 적정비율로 제시했다. 

그러나 당시 합병 비율은 0.35대 1이었다. 그럼에도 국민연금은 합병에 찬성했다. 삼성물산 주식을 많이 가지고 있던 국민연금은 4900억 원 가량의 손해를 입었다. 국민연금은 지속적으로 삼성물산 주식을 매도해 주가를 낮추는데 기여했다. 반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8조 원 가량의 이익을 봤다.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주식 4%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시가 총액이 200조 원임을 볼 때 삼성전자 지분 1%는 2조 원 가량이다. 이 합병으로 이 부회장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삼성전자 4%의 지배력을 확보했다. 

▲ 6월1일 오후 서울 중구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제26회 호암상 시상식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참석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6일 열린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서는 삼성이 합병과정에서 경영권 승계를 위해 국민연금과 접촉하고 기관투자자들과 주주들을 상대로 합병에 찬성해달라고 압박했다는 증언이 쏟아졌다. 먼저 이 부회장은 합병 직전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을 만났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에 이재용 부회장은 “합병 당시 국민연금 측에서 저를 보자는 요청이 있어서 실무자들과 만났다”며 “합병 비율 이야기가 나왔고 여러 안건 중에 하나였다”고 말했다. 장관도 만나기 힘든 이재용 부회장이 국민연금 실무자들과 수십 분 간 만났다는 것.

게다가 삼성 측은 국민연금이 투자위원회를 열기 전부터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삼성물산 주주였던 윤석근 일성제약 대표이사는 “삼성물산으로부터 계속 설득을 당했다”며 “다섯 번 정도 만나서 (합병에) 찬성해달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윤 대표이사는 이어 국민연금 투자위원회가 열린 지난해 7월10일 전날에도 삼성물산 관계자와 만난 자리에서 “국민연금에서 반대하면 내 찬성이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물었더니 국민연금은 다 됐다고 이야기를 했다”며 “그게 (합병) 찬성의 의미냐고 물었더니 (삼성물산 관계자가) 그렇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기관투자자로서는 유일하게 합병에 반대의견을 냈던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에게도 삼성의 압력이 가해졌다. 주 전 대표는 “(삼성과 관련된) 지인 네 사람정도 전화가 와서 의결권을 위임해달라고 했고 위임하지 않는다고 하니 (합병에) 찬성해달라고 전화가 왔다”고 말했다. 당시 한화투자증권은 삼성물산의 자산 가치는 12조원인데 제일모직의 자산 가치는 4000억 원 수준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자산 가치로 환산하면 합병 비율은 1 대 2.85였다. 이 부회장의 경영권 계승에 불리한 보고서였다. 

▲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1차 청문회에 참석한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전 대표이사가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주 전 대표는 이날 국정조사 자리에서 “보고서가 나가기 며칠 전 한화그룹 경영기획실장인 금춘수 사장이 나를 보자고 해서 만났다. 그는 삼성과 한화가 사이가 좋은데 부정적인 보고서는 쓰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런 부탁은 부당하다, 약속 못 하겠다고 했고 1차 보고서가 나갔다”고 말했다. 결국 주 전 대표는 올해 2월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는 “(합병에 찬성하지 않으면) 좋지 않다는 식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이날 국정조사에서 시종일관 ‘송구하다’고 말했던 이재용 부회장의 주눅 든 목소리와 달리, 그는 경영권 승계를 위해 비선실세 최순실의 딸에게 10억짜리 말을 사주고 국민연금을 압박하는 등 전방위적 로비를 펼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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