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최후의 보루’ 헌법재판소의 존립 근거가 흔들리고 있다. 대통령 비서실이 헌법재판관의 판결에 개입한 정황이 속속들이 드러나면서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2014년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의 결과를 미리 알고 있었으며 당시 재판관들의 평의 내용도 알고 있었던 사실이 확인됐다.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 비망록을 입수한 한겨레의 단독보도다.

청와대가 박근혜 대통령이 태반·백옥·감초 주사를 맞았다고 시인했다. 최순실, 차은택 등 비선실세 혹은 ‘보안손님’들의 ‘청와대 프리패스’ 정황도 확인됐다. 5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국정조사)에서 밝혀진 내용이다.

친박도 ‘탄핵 찬성’으로 돌아서고 있다. 5일 하루에만 친박계 의원 20명이 찬성으로 돌아섰다는 분석도 나왔다. 비박계 의원의 탄핵 동참을 고려하면, 박 대통령 탄핵안은 9일 정족수를 충족할 것이란 낙관론이 제기된다. 한편 박 대통령의 4차 담화, 무기명 자유투표의 함정 등 최종변수로 끝까지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아래는 6일자 아침 주요종합일간지 1면 머리기사 헤드라인이다.
경향신문 <[탄핵안 표결 D-3]탄핵열차 200석을 채워라>
국민일보 <“브렉시트 이후 韓·英관계 견고” 찰스 헤이 주한英대사, 국민일보 목회자포럼 강연>
동아일보 <靑 “朴대통령 4월 퇴진 수용>
서울신문 <靑 “대통령 4월 퇴진 수용… 곧 결단”>
세계일보 <청 의무실장 “박 대통령 태반주사 처방”>
조선일보 <親朴도 "탄핵 표결" 靑 "대통령 거취 곧 결단 내릴 것">
중앙일보 <[산업부장의 뉴스분석] 권력과 재벌 ‘잘못된 만남’…28년 전 데자뷔>
한겨레 <[단독] 김기춘, ‘통진당 해산’ 헌재 논의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한국일보 <靑ㆍ친박 “4월 퇴진”… 탄핵 저지 안간힘>

대통령 비서실 아래에 있는 헌법재판소?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헌재의 통합진보당 ‘위헌정당강제해산’ 심판 선고가 나기 이틀 전에 헌재의 재판결과를 알고 이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언급했다. 김 전 비서실장은 당시 진보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의원직 상실 여부를 두고 엇갈렸던 재판관들의 이견도 상세하게 알고 있었다. 헌법재판소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이 심각히 훼손됐다는 논란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 6일자 한겨레 1면

한겨레는 김 전 민정수석의 업무수첩(비망록) 전문을 입수한 결과 이같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6일 보도했다.

2014년 12월17일 기록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뜻하는 ‘長’이란 글자 아래 ‘정당 해산 확정, 비례대표 의원직 상실’이라고 적혀 있다.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은 이보다 이틀 뒤인 12월19일에 났다.

당시 메모에는 ‘지역구 의원 상실 이견-소장 의견 조율중(今日·금일). 조정 끝나면 19일, 22일 초반’이라는 내용도 적혀 있다. 진보당 의원 자격 상실을 둘러싼 재판관들의 평의 내용이다. 한겨레는 “박 헌재소장이 이를 최종 조율하고 있으며, 조정이 끝나면 19일이나 22일에 선고가 있을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분석했다.

선고 하루 전인 12월18일엔 김 전 실장이 ‘국고보조금 환수’ 등 통진당 해산에 따른 후속 조처를 지시한 내용도 적혀 있다.

대통령 비서실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1심 무죄 판결을 비판한 김동진 부장판사의 징계도 직접 논의한 것이 확인됐다. 2014년 9월22일 비망록을 보면 ‘長’이란 글자 옆에 ‘비위 법관의 직무배제 방안 강구 필요(김동진 부장)’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 6일자 한겨레 3면

김 부장판사는 10일 전인 9월12일 법원 내부통신망에 "서울중앙지법의 국정원 댓글 판결은 '지록위마의 판결'"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수원지법은 대통령 비서실이 징계를 논의한 지 4일 뒤인 9월26일 김 부장판사가 품위를 손상하고 법원의 위신을 떨어뜨렸다며 대법원에 징계를 청구했다. 대법원은 그해 12월3일 김 부장판사에게 2개월 정직 처분을 내렸다.

한겨레는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훼손시킬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헌법재판관 평의 내용 인지는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이다. 헌법재판소법 제34조 제1항은 사건 심리 마지막 단계에서 재판관들만 참여해 합의와 표결로 결론을 내리는 평의는 공개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당시 논의 과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특히 통진당 해산 심판 사건은 보안 유지가 중요해 재판관들 외에는 헌재 관계자들도 전혀 내용을 알 수 없었다. 청와대가 재판관들 간의 이견까지 알 정도였다면 서로 접촉했다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청와대 "대통령, 태반·백옥주사 맞았다… 최순실·차은택은 '보안손님'"

이선우 청와대 의무실장은 지난 5일 국정조사에 출석해 태반·백옥·감초주사가 "(대통령에게) 필요한 처방에 따라 처방됐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런 주사를 청와대 직원들이 맞았다던 그간의 해명과 배치된다. 이 실장은 이어 "태반·감초 주사가 꼭 미용을 목적으로 사용된다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6일자 경향신문 5면

이 실장은 "직원들은 감초주사와 백옥주사만 맞았다"면서, '주사를 주로 대통령에게 처방했다고 보면 되냐'는 물음에 한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대통령을 포함해서 (직원들에게) 처방했다"고 대답했다.

이영석 청와대 경호실 차장은 '(특정인이) 대통령과 사적 만남을 갖고 있는 상황에선 경호실 업무가 작동하지 않는거냐'는 황영철 새누리당 의원의 질문에 "보안손님에 대해선 보고를 못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순실, 차은택 등이 청와대 관저를 수시로 드나들었다는 증언·의혹에 대해 '보안손님'의 경우 출입 보고를 받지 못할 수 있음을 청와대가 시인한 것이다.

지난 5일 국회 국조특위는 청와대, 기획재정부, 교육부를 상대로 2차 기관보고를 받았다. 6일엔 삼성·현대차·LG·SK 등 9대 국내 대기업 재벌 회장이 국회 '청문회'에 선다. 이들은 박 대통령과 안종범 전 경제수석의 강요에 의해 미르·K스포츠재단에 각각 486억원, 288억원을 출연했다. 국조특위는 이들의 뇌물공여 및 수수 혐의에 대해 추궁할 예정이다.

이번 국정조사가 '맹탕 청문회'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최순실, 최순득, 장시호 등 최순실 일가 피의자들이 참석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오는 7일 청문회 증인으로 소환했으나 지난 5일 불출석 사유서를 냈다. 최순실씨는 재판이 진행 중인 점과 공황장애 등 건강 상의 이유를 불참 사유로 적어 냈다. 최재경 청와대 민정수석, 박흥렬 대통령 경호실장, 류국형 경호본부장도 지난 5일 국정조사에 출석하지 않았다.

김성태 국조특위 위원장은 동행명령장 발부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최순실 일가' 및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전 승마 국가대표 감독인 박원오씨 등을 청문회에 세울 것이라고 밝혔다.

탄핵안 표결 D-3, '돌아서는 친박' 정족수 넘을까?

새누리당은 오는 9일 예정된 박 대통령 탄핵 소추안 표결에서 당론을 정하지 않고 자유투표를 할 예정이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9일 예정대로 탄핵 절차에 돌입하게 되면 새누리당 의원들도 개개인이 헌법 기관인 만큼 모두 참여해서 양심에 따라 투표하는 게 옳다는 게 제 일관된 생각"이라고 밝혔다.

▲ 6일자 조선일보 3면

친박이 다수인 새누리당 재선 의원들도 이날 모임을 갖고 탄핵안 자유투표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국회 본회의장 입장 거부' 입장이었던 친박계 의원들의 입장이 바뀐 것으로 보인다.

경향신문은 "정치권이 탄핵안 가결선 ‘200명’ 확보 여부를 놓고 요동치고 있다"면서 "탄핵 가결을 추진 중인 새누리당 비주류와 야 3당이 표 계산에 골몰하고, 가결 확신론과 신중론이 교차하는 등 긴박한 분위기"라고 지적했다.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현재 확실하게 거론되는 탄핵 찬성 의원수는 172명이다.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등 야 3당 의원 및 야당 성향 무소속 의원, 새누리당에서 탈당한 김용태 의원 등이 포함된 숫자다. 탄핵안 가결 요건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인 200명으로 현재 탄핵 찬성 예상 숫자보다 28명이 더 필요하다.

▲ 6일자 경향신문 3면

지난 4일 '9일 탄핵 표결'로 입장 선회한 비박계 의원들을 포함하면 새누리당 비주류에서 35~40명 선의 찬성표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탄핵 가결선을 넘는다.

비박계 주축 모임인 비상시국회의의 황영철 의원은 5일 조선일보에 "확실히 탄핵 찬성 의사를 밝힌 비주류 의원 35명 외에 친박 의원 중에서도 탄핵안에 찬성표를 던지겠다는 의원들이 3명이 넘는다"고 주장혔다.

'샤이(shy) 탄핵파' 친박 의원의 존재도 탄핵 가결 가능성에 힘을 싣는다는 분석이다. 조선일보는 "그동안 탄핵 찬반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던 친박계의 H, S, Y 의원 등 10여명의 초·재선 의원이 주변에 탄핵 찬성 입장을 직·간접으로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탄핵이 불가피하다고 보지만 주변에 대놓고 말하지 못하는 '샤이(shy) 탄핵파' 친박 의원이 10명 정도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의 4차 담화, 무기명 자유투표 등 최종 변수들이 남아있어 섣불리 탄핵 가결을 낙관할 수 없다는 분석도 있다. 박 대통령이 퇴진 시기를 못박을 경우 탄핵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있고 담화 수위에 따라 일부 여당표가 돌아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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