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뉴스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주하는 5년 정도 더 반성과 참회의 시간이 필요하다’라는 말을 전해 듣게 됐다. 5년 뒤에 뉴스를 한다고 해도 그때는 내 나이가 50이다. 뭘 할 수 있겠나.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공영방송 MBC 메인뉴스 간판 앵커였던 김주하. 그는 지금 종합편성채널 MBN 메인뉴스 간판 앵커다. 2012년 파업에 참가했던 언론인들이 불이익을 받고 MBC를 떠날 때도 그는 자리를 지켰다. 당시 그는 뉴미디어국 인터넷뉴스부 기자였다. 그러나 그는 2015년 퇴사해야만 했고 그해 7월 MBN으로 자리를 옮겼다. 뉴스를 위해서였다. 

지난 1일 만난 김주하 이사는 의자에 몸을 묻으며 인터뷰 내내 피곤함을 감추지 못했다.  전 날 3시간밖에 자지 못한 탓이라고 했다. 그러나 생방송 뉴스가 시작되자 이날 정치 기사를 두고 “일단 ‘혼전’ 이렇게 썼는데 혹시 또 다른 게 나올 수 있으니 기사가 나오면 나한테 바로 달라고”라며 목소리를 높이며 생기를 되찾았다. 야3당이 탄핵안을 두고 삐걱거렸던 날이었다. 

단독앵커를 맡은 지 1년, 김주하 이사를 만나 뒷이야기와 함께 최근의 고민을 들었다. 아래는 김 이사와의 1문1답.

▲ MBN 뉴스8 아이템 회의를 하는 김주하 특임이사. 사진=MBN 제공
-메인뉴스 단독앵커를 맡은 지 1년이 됐다. 어떤가. 

“훨씬 힘들다. 예전엔 이런 힘듦을 즐겼다. 마감뉴스를 좋아했던 게 짜여진 대로 하지 않아서였다. 사람들 다 퇴근한 뒤 이슈가 터지면 다 내꺼다. 천안함, 평창올림픽 등이 그랬다. 속보 뜨는 거 보고 종이하나 펜 하나 들고 방송을 했다. 그런 걸 하는 게 좋았다. 단독 진행을 하다 보니 그걸 즐기기 어려워졌다. 30개 넘는 기사를 혼자 소화해야 하고 거기에 또 의미를 넣어줘야 한다. 요즘은 인터넷에 먼저 다 뜨기 때문에 의미를 부여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 안 그러면 사람들이 방송뉴스를 볼 필요가 없다. 밖에 나가서 취재하는 것도 좋아하는데 바빠서 하지 못하니 아쉽다.“

-하루 일정이 어떻게 되나. 

“초반에는 8시 반 편집회의부터 왔는데 요즘은 9시나 10시 사이 출근한다. 그리고 뉴스초점 회의를 하고 점심 먹고 2시 즈음에 또 회의가 있다. 이후로는 계속 뉴스를 확인하며 상황이 변하는 걸 본다. 기사 마감이 빨리 되면 좋은데 요즘 같은 때는 6시에도 이슈가 터진다. 기사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퇴근은 뉴스가 끝나고 밤 9시 반 정도에 한다.”

-손석희 JTBC보도담당 사장은 한때 선후배였지만 지금은 동시간대 뉴스를 놓고 경쟁하는 관계다. 자신만의 장점은 뭐라고 생각하는가. 

“지금도 (손 사장과는) 선후배라고 생각한다. 그건 다른 기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MBN 후배들이 제게 이사님이라고 하면 선배라고 말하라고 한다. 저는 기계적인 중립이 아니라 철저한 중립이 (제)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건에 대해 양쪽의 입장을 반반 반영하는 건 기계적인 중립이다. 하지만 지금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하야하라는 목소리가 높으니 거기에 서서 말하는 게 중립이라고 생각한다.” 

-메인뉴스 앵커를 맡은 뒤 여야 양쪽에서 욕을 먹었다. 

“어디서는 ‘박근혜빠’라고 욕하고 어디서는 빨갱이라고 욕한다. 모두에게 욕먹는 건 그때그때 중립에 서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양쪽의 칭찬을 모두 받는 사람을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하더라. 정치권에서도 여러 번 제의가 있었는데 여야에서 다 왔다. 중립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올해 1월 어버이연합이 27일 MBN 본사 앞에서 항의 집회를 열었다. 사진=이하늬 기자
-정치권에서 수차례 제의를 받았다고 했는데 가지 않은 이유는.

“뉴스가 좋아서다. 요즘은 한 시간만 뉴스를 안 봐도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를 지경이라 조금 피곤하긴 하지만, 상황이 급변하거나 새로운 소식이 갑자기 들어오면 가슴이 뛴다. 호떡집에 불난다고 할 정도로 바쁘면 너무 좋다. 뉴스가 녹화면 싫을 것 같다. 얼마 전에도 갑자기 지진특보를 했는데 아무것도 없이 했다. 과학교육과를 나와서 아는 걸 그때 써먹었다. (웃음)”

-MBC에서 나오게 된 것도 비슷한 맥락인가.

“MBC에서 거의 제일 마지막에 나왔다. 뉴스를 다시는 못하게 될 것 같아서였다. ‘되겠지 되겠지’ 하면서 기다렸다. 그러다가 김주하에게 뉴스를 다시 시키자는 이야기가 있었다. 제대로 써먹자는 거지. 그런데 어느 분이 ‘김주하는 앞으로 최소 5년간 반성과 참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가 이미 한 4년 쉬었을 때다.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 그간 파업을 하고 싸워도 끝나면 다시 하나가 됐는데 여기는 아직도 나를 그렇게 보고 있구나. 아 그러면 그때는 내가 오십이 되겠구나. 영원히 뉴스를 못하겠구나. 그때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러 종편사에서 제의를 받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왜 MBN이었나. 

“과거 MBC에서 제가 뉴스 할 때와 가장 비슷한 분위기라고 봤다. 사람이 놀던 물에서 놀아야하기 때문에 사내 분위기를 많이 봤다. 사주가 있기 때문에 눈치를 보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그나마 다른 곳에 비해 눈치를 덜 보는 곳이 아닐까? MBC에서는 엄청나게 힘들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MBN에서는 ‘직원’으로 받아주었으니까. 프리랜서랑 직원은 다르다.”

-그럼 MBN은 김주하의 역량을 어느 정도 발휘할 수 있는 토대라고 보나.

“예전 회사에 있을 때보다는 된다. 그때는 어리기도 했고 내가 바로 윗사람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여기서는 지위가 높게 부여되다보니 의사소통 시간도 줄일 수 있고 제 의사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 만족스럽진 않지만 중립적으로는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점수를 주자면 70점 정도다. 예전 회사는 40점정도?”

▲ 12월1일 뉴스를 진행하기 전 기사를 확인하는 김주하 이사. 사진=MBN 제공
-MBN 뉴스가 색깔이 없다는 비판도 있다.

“중립을 표방하니 내 편이 없는 건 맞다. 색깔이 없다는 것도 장단점이다. 한쪽으로 치우친 걸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이 (MBN을) 찾는 것 같다. 제 뉴스를 계속 보신 분이라면 제 뉴스가 편하게 느껴지실 것이다. 논조가 확 바뀐다거나 그런 것이 없다. 시청률을 생각하면 쏠리는 게 좋다. 쉽게 말하면 내 편이 생기는 거니까. 그런데 우리는 중립을 표방하니 외로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종편이 출범한 지 5년이 됐다. 지상파 출신으로서 종편이 여론다양성 확보에 기여했다고 보나. 

“여론 다양성 확보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나오는 기사만 봐도 과연 ‘종편이 없었으면 대통령이 저 지경이 됐을까?’라는 생각은 든다. 지금 상황을 보면 종편에서 기사가 나가면 시민단체에서 고소를 한다. 그리고 검찰이 수사를 하고, 수사결과 사실로 드러나는 식의 패턴이다. 이것만 해도 어마어마한 것이다.”

-지난 번 ‘뉴스초점’의 경우 박근혜 대통령을 피해자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다.

“제 뉴스를 꾸준히 봐왔던 사람들이 뭐라고 했다면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았다. 제가 그동안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는 뉴스초점을 상당히 많이 했음에도 아무도 그런 건 알아주지 않고 딱 그 부분만 떼어놓고 비판을 했다. 그리고 뉴스초점에 제 생각이 많이 담긴다고 보셔서 저를 비판하신 거겠지만 초점에 제 생각의 절반도 못 담고 있다. 약간 아쉬운 점이다. 게다가 특히 실망한 건 취재를 안 하고 쓰는 기사가 너무 많다는 거다. 기사를 쓰기 전에 취재를 하려면 당사자의 입장도 당연히 들어가야 한다. 제게 전화 온 기자는 한 명도 없었다. 전화가 어려우면 뉴스초점 몇 꼭지라도 봤어야 했다. 오히려  취재해서 쓴 기사에 ‘김주하랑 친하냐’는 댓글이 달렸다. 그 논란으로 19년 내 언론사 생활이 한 순간에 이렇게 부정되는구나 싶어서 조금 슬펐다.“

-당신은 ‘가장 닮고 싶은 여성언론인’으로 꼽힌 언론인이지만 지나친 사생활보도로 어려움을 겪었던 언론의 피해자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보도가) 억울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양쪽 입장이 다 되어보니까 함부로 판단을 안 하게 됐다. 무슨 일이 있을 때 ‘말이 돼?’ 라고 하기보다는 ‘분명히 뭐가 있을 거야. 뒷이야기가 있을 거야’ 라고 생각하게 됐다. 악플이 많은 건 알고 있는데 정신건강을 위해서 읽지 않는다.”

▲ 12월1일 김주하 앵커. 사진=MBN 제공
-강용석 전 의원 건도 그렇고 구의역 사고 어머니건도 그렇고 ‘사건’이 아니라 앵커가 돋보인다는 비판이 있었다. 

“구의역 사건 같은 경우 뒷이야기는 저랑 같이 갔던 PD밖에 모른다. 절대 인터뷰를 해주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일단 찾아갔다. 당시 MBN에서 사고 피해자도 잘못이 있을지 모른다는 뉴스가 나간 이후였기 때문에 유가족에게 엄청 혼이 났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40분 정도 벌을 서고 있으니 얼굴 안 나오게, 목소리 변조를 조건으로 인터뷰를 하게 됐다. 그래서 샷이 제 위주로 나온 것이었다. 그러니까 김주하가 왜 스포트라이트를 받느냐? 왜 저 여자가 주인공인데? 이런 생각을 하신 것 같다.”

-뉴스에서 보이는 모습과 실제 성격이 많이 다른 것 같다. 

“주변에서는 헛똑똑이라고들 한다. 뉴스를 할 때 차갑게 보이는 이유 중 하나가 눈빛 때문이 아닐까. 뉴스는 아이컨텍이다. 앵커가 말로 전달하는 것도 있지만 눈으로도 전달한다. 그래서 서클렌즈를 끼고 뉴스를 하는 것을 싫어한다. 요즘 서클렌즈 끼는 앵커들이 많은데 예쁜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앵커가 절대로 해선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예쁜 걸로 치면 연예인이 앵커를 하겠지.”

-김주하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앵커의 모습은 무엇인가.

“이상적인 앵커나 롤모델은 없다. 다들 너무 잘났다. 앵커가 되는 순간, 자기가 상위권 몇 퍼센트 안에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다. 진짜 바보 같은 거다. 그게 아니라 오히려 국민을 대변해야 하니까 같은 눈높이를 가져야 하는데 앵커석에 앉는 순간 목이 뻣뻣해진다. 그래서 시청자들의 눈높이에 늘 맞추려고 한다.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어떤 앵커처럼 되겠다는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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