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통합진보당 국회의원들이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게 ‘정치 보복의 진실을 밝혀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헌법재판소의 진보당 해산 결정에 정부가 개입한 정황이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을 통해 확인된 데 따라서다. 헌법 최고기구조차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됐다는 점에서 헌재의 존립 근거가 흔들린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윤종오 국회의원은 5일 오전 국회에서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청와대 개입 진상규명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 및 오병윤·이상규·김선동·김미희·김재연 전 국회의원이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 및 오병윤·이상규·김선동·김미희·김재연 전 국회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윤종오 국회의원이 12월5일 오전 국회에서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청와대 개입 진상규명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윤종오 국회의원실

2년 만에 처음으로 공식석상에 선 이정희 전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묻는다. 통합진보당을 강제로 해산시키기 위해 대통령과 청와대는 어떤 음모를 꾸몄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전 대표는 “김 전 실장이 이끄는 대통령 비서실은 박 대통령과 정면으로 맞선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치보복 컨트롤 타워’였다”면서 “박 대통령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 청와대는 통합진보당의 강제 해산을 위해 헌법이 명시한 3권분립 원칙을 위배했다”고 비판했다.

이 전 대표는 또한 “박 대통령과 김 실장은 자백하라”면서 “대통령 마음에 들지 않는 정당을 없애려고 벌인 민주주의 파괴행위를 언제까지 감출 수 있나. 국정원의 대선 개입이 탄로나 민주적 정당성을 잃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헌법을 난도질한 범죄를 낱낱이 밝히라”고 주장했다.

이 전 대표가 이들의 자백을 주장하는 근거는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이다. 대통령 비서실이 지난 2014년 통합진보당에 대한 위헌정당해산심판 결정에 개입한 사실은 김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에서 확인됐기 때문이다.

김 전 민정수석은 2014년 10월4일 비공개 회의에서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이 ‘통진당 해산 결정-연내 선고’를 발언한 것을 업무수첩에 옮겨 적었다. 이로부터 13일 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은 여야 의원들과의 국정감사 오찬 자리에서 ‘연내에 진보당 해산 심판 결정을 하겠다’고 말했다.

▲ 2014년 8월25일자 기록인 비망록 18쪽엔 “통진당 사건 관련 지원(支援) 방안 마련 시행(施行) –재판진행상황 -법무부TF와 협력(협력) –홍보(弘報)․여론(與論)”이라는 문구가 기재돼있다. 사진=윤종오 국회의원실

2014년 8월25일자 기록인 비망록 18쪽엔 “통진당 사건 관련 지원(支援) 방안 마련 시행(施行) –재판진행상황 -법무부TF와 협력(협력) –홍보(弘報)․여론(與論)”이라는 문구가 기재돼있다.

2014년 9월19일 비망록 38쪽엔 “미래 – JTBC 13. 11. 5.자(字) 통진당 해산청구 관련 편향 보도(報道)-방심위의 징계에 대한 행정소송(行政訴訟)”이 적혀 있다.

이 전 대표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제재와 재판 진행 상황까지 점검하며 언론을 압박했다”고 지적했다. 2013년 11월5일 JTBC ‘뉴스9’는 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논란을 보도했고 손석희 뉴스 앵커는 김재연 전 의원과 인터뷰를 가졌다. 이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2014년 12월19일 중징계에 해당하는 ‘관계자 징계 및 경고’(벌점4점) 제재를 의결했다.

▲ 2014년 9월19일 비망록 38쪽엔 “미래 – JTBC 13. 11. 5.자(字) 통진당 해산청구 관련 편향 보도(報道)-방심위의 징계에 대한 행정소송(行政訴訟)”이 적혀 있다. 사진=윤종오 국회의원실

이어 2014년 11월25일 기록 58쪽엔 “헌재 재판- 여론전, 활동방향정립(方向定立)(시민사회 활동(活動))”이 적혀 있다. ‘시민사회를 이용한 여론전 지시’로 읽히는 대목이다. 허현준 전 청와대 비서관이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를 관제 시위에 동원한 사실은 지난 4월 언론보도를 통해 폭로된 바 있다.

정부의 보수학자를 동원한 여론 조성 정황도 확인됐다. 2014년 11월26일 청와대 비서실 회의 내용이 기록된 59쪽에는 “헌법학자 칼럼 기고 유도-법무부(法務部)와 협력 / 종북토크 → 통진당 해산 찬성쪽 여론변화 효과(效果)”가 기재돼 있다.

같은 날 회의가 기록된 60쪽에는 ‘선거관리위원회’도 언급된다. 비망록엔 “선관위 사무총장 - 지방의원 자격 불포함(不包含)- 법(法)- 흠결(欠缺)(?)/ 대체정당-법(法)규정-형식적 심사-이설(異說)/취소소송(행정), 헌법소송”이 적혀 있다. 당시 선관위 사무총장이 ‘(전 통합진보당 의원들의) 지방의원 자격 상실은 입법 미비로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데 대한 회의 내용으로 추측된다. 중선관위는 사무총장의 견해와 반대로 2014년 12월22일 진보당 소속 비례대표 의원 6명이 의원직을 상실한다고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다.

▲ 2014년 11월26일 청와대 비서실 회의 내용이 기록된 비망록 59쪽에는 “헌법학자 칼럼 기고 유도-법무부(法務部)와 협력 / 종북토크 → 통진당 해산 찬성쪽 여론변화 효과(效果)”가 기재돼 있다. 사진=윤종오 국회의원실

전 통합진보당 의원들은 이를 “청와대가 ‘정당해산 결정에도 불구하고 지방의원의 자격은 유지된다’는 선관위에 영향력을 행사해 ‘의원직 상실’ 유권해석을 하도록 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 전 대표는 이와 같은 회의 내용에 대해 “통합진보당 해산은 청와대가 기획하고 극우단체부터 집권여당까지 행동대로 총동원한 정치보복”이라면서 “청와대가 삼권분립마저 훼손하며 헌법을 유린한 폭거”라고 비판했다.

통합진보당은 2013년 11월5일 법무부가 청구한 ‘위헌정당강제해산’ 심판에서 2014년 12월19일 헌법재판소가 ‘청구 인용’ 결정을 내림에 따라 헌정 사상 최초로 정당 강제 해산을 당했다. 헌법재판소는 진보당 소속 의원 5명 전원의 의원직 상실을 결정했다. 재판관 9명 중 박한철 소장, 주심 이정미 재판관을 포함한 8명이 해산에 찬성했고 김이수 재판관만이 해산에 반대했다.

이에 따라 통합진보당의 강령, 정책 등 동일한 이념을 내세우는 대체정당의 창당이 원천적으로 금지됐고 ‘통합진보당’ 당명 사용도 금지됐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