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문열(69)씨가 지난 2일 조선일보에 기고한 “보수여 죽어라, 죽기 전에…새롭게 태어나 힘들여 자라길”이라는 칼럼이 논란이다. 이씨는 이 글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북한의 ‘아리랑 축전’에 비유하는 등 현 시국 민심과 배치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씨는 “심하게는 그 촛불 시위의 정연한 질서와 일사불란한 통제 상태에서 ‘아리랑 축전’에서와 같은 거대한 집단 체조의 분위기까지 느껴지더라는 사람도 있었다”며 “특히 지난 주말 시위 마지막 순간의, 기계로 조작해도 어려울 만큼 정연한 촛불 끄기 장면과 그것을 시간 맞춰 잡은 화면에서는 으스스한 느낌마저 들었다고도 했다”고 말했다.

▲ 12월2일자 조선일보 1면.

‘박근혜 게이트’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보수진영에 단호한 결의를 촉구하는 기고이지만, 민심과 동떨어진 그의 글에 반발의 목소리가 크다. 

변화를 요구하는 시민들과 이씨의 반목은 이번만이 아니다. 이씨는 지난 2000년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 운동과 관련해 2월8일자 중앙일보에 시론 ‘홍위병을 돌아보며’를 기고했다. 이씨는 “총선연대 시민단체의 활동을 보면 자꾸 홍위병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라고 적었다. 

시민단체에 ‘홍위병’을 빗댄 것으로 당시 총선시민연대가 김대중 정부와 모종의 관련이 있다는 ‘음모론’을 대중적으로 퍼뜨렸다. 이에 진중권씨는 3일 뒤 중앙일보 지면에 ‘이문열과 젖소부인의 관계?’라는 시론을 기고하며 이씨의 필력을 되돌려주었다.

“끊임없이 나도는 야합설에도 불구하고 물론 현재까지 이런 발언을 하는 이문열씨가 정치권 일각의 사주를 받았다는 뚜렷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을 뿐더러 그의 선의를 의심할 근거도 없다. 그런데도 그의 행각을 보면 자꾸 나치 친위대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진중권 시론 중) 

이씨는 김대중 정부의 조중동 등 언론사 세무조사 국면이던 2001년 7월2일 조선일보에 ‘신문 없는 정부 원하나’라는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이씨는 “우리 사회는 같은 철로 위에서 걷잡을 수 없는 투지로 서로를 향해 치닫고 있다”며 “굳이 두 기관차가 충돌로 승패를 가름해야 한다면 나는 언론 쪽의 승리를 기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당시 민주당 국회의원 추미애(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는 “지식인이 일부 신문의 지면을 통해 성장한 뒤 언론에 곡학아세해서야 되겠느냐”고 직격했다.

이씨의 기고 이후 일부 시민단체들이 ’책 반품 운동’을 주장하며 이씨를 압박했고, 이씨는 2001년 7월9일자 동아일보 시론에 ‘홍위병을 떠올리는 이유’라는 글을 통해 이렇게 적었다.

“지난번 낙선운동은 특정한 정치인들만 겨냥했고, 어떤 안티운동은 특정 신문만 대상으로 삼았지만 (중략) 특히 안티운동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나는 공격성과 파괴성도 우리에게 홍위병을 연상시킨다. (중략) 마지막으로 요즘의 이런저런 시민운동에서 홍위병을 떠올리게 되는 까닭은 우연의 일치치고는 너무 자주 그들의 견해가 정부 혹은 정권의 그것과 일치한다는 점이다.”

▲ 소설가 이문열. ⓒ연합뉴스
그와 시민진영간의 갈등은 송사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씨는 2001년 12월 부산의 모 대형서점에서 안티조선운동 진영에 대해 “안티조선은 친북세력이며 그 원조는 북한”이라고 발언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에 안티조선 활동가들이 2002년 이씨에게 명예훼손에 따른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2003년 7월 “친북세력 발언을 불법행위로 인정함으로써 언론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안티조선운동’에 참여했던 한윤형씨는 자신의 저서 ‘안티조선운동사’에서 “이문열이 정치에 영향을 미치려고 해도 국회의원이 되는 것보다 ‘소설가 이문열’로서 발언하는 쪽이 훨씬 힘이 크다”며 “진중권은 그렇게 이문열과 그 옹호자들을 논박했지만 ‘홍위병’이라는 말이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고 평했다. 이씨의 노림수를 엿볼 수 있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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