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이상호 전 MBC 기자(현 고발뉴스 기자), 손석희 JTBC 앵커,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 등 영화 ‘다이빙벨’과 연관된 인사들을 주시하고 부산영화제 동향을 파악한 정황이 드러났다.

다이빙벨은 이상호 기자가 만든 영화로 세월호 참사 당시 정부의 무능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다이빙벨 상영을 강행한 부산국제영화제가 부산시와 첨예한 갈등을 빚고,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이 사퇴 종용과 검찰 수사를 받는 등 영화제를 둘러싼 각종 외압 논란이 청와대에서 비롯했음을 보여주는 근거 자료가 나온 것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김환균)은 2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 비망록 가운데 청와대의 언론 통제·문화 검열과 관련된 부분을 추가 공개했다. 

▲ 이상호 전 MBC 기자(현 고발뉴스 기자, 왼쪽)가 2일 오전 전국언론노동조합이 개최한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 비망록 공개 기자회견에 참석해 다이빙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사진=김도연 기자)
‘김영한 비망록’은 지난 8월 별세한 고 김 전 수석이 2014년 6월14일부터 2015년 1월9일까지 청와대에서 일하며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지시사항 등 수석 비서관 회의내용을 적어놓은 기록물이다. 언론노조는 김 전 수석 유가족 동의 하에 비망록을 입수해 일부 공개했다.

먼저 비망록 9월3일자에는 “다이빙벨 손석희 피소사건(업무방해)-정무 교문. 천안함 때도 국감 출석, 망언”이라고 쓰여 있다. 

이 기록은 청와대가 다이빙벨과 관련한 고발 건에 대해 당시 조윤선 청와대 정무수석과 송광용 교육문화수석 측에 지시한 사안으로 보인다. “천안함 때도 국감 출석, 망언”이라는 대목은 이 대표를 지칭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2014년 5월7일 보수단체인 자유청년연합은 손석희 앵커와 이상호 기자, 이종인 대표를 사기죄·공무집행방해죄·명예훼손죄 등의 명목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다이빙벨 투입 논란으로 정부의 세월호 사고 실종자 구조 작업에 차질을 빚게 했다는 논리였다.

이보다 앞서 이 대표는 4월18일 손 앵커가 진행하는 JTBC 뉴스에 출연해 다이빙벨이 조류와 상관없이 20시간 이상 수중작업이 가능한 장비라고 소개했고 사고 현장에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기자도 고발뉴스 등을 통해 정부가 다이빙벨 투입을 막고 있다며 다이빙벨 투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검찰은 지난해 7월 공무집행방해 혐의와 관련해 이 대표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남긴 비망록 2014년 9월5일자 기록.(사진=언론노조)
비망록에서 특기할 만한 기록은 “다이빙벨-교문위-국감장에서 성토 당부(신성범 간사) 부산영화제 MBC 이종인 대표 이상호 출품”이라고 기록돼 있는 9월5일자다. 

다이빙벨과 관련해 다가오는 국정감사에서 여당의 성토를 당부한 것으로 신성범 전 새누리당 의원(제18대·19대 의원)은 당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교문위) 간사였다.

2014년 10월7일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는 다이빙벨의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을 놓고 여야 의원간 설전이 벌어졌다. 

박대출 새누리당 의원은 “다이빙벨 상영이 국격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다”며 “국고 지원을 하는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게 맞는지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용교 의원도 “작품성 없는 영화들이 흔히 쓰는 게 ‘노이즈 마케팅’ 수법인데, 다이빙벨은 그 전형”이라고 비난했다.

비망록 9월6일자에는 “다이빙벨-다큐 제작 방영-여타 죄책(罪責)”, 9월10일자에는 “부산영화제-다이빙벨-이용관 집행위원장, 60억 예산 지원, 손석희 송옥숙-이종인 부부-이상호 기자”, 9월20일자에는 “다이빙벨 상영할 것으로 예상됨 -> 수사” 등의 글귀가 적혀 있다.

다이빙벨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10월6일과 10일 상영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영화제 상영 이전부터 죄의 책임(罪責)을 물어야 한다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 2014년 9월10일자. (사진=언론노조)
이상호 기자는 “9월10일 기록은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을 대대적으로 흔드는 걸 기획한 정황”이라며 “이후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상대로 국가 사정기관이 동원돼 감사와 수사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10월22일자 비망록은 ‘長’(장)으로 표기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지시 사항인 “다이빙벨 상영-대관료 등 자금원 추적-실체 폭로”가 적시돼 있고, 10월23일 비망록에는 “시네마달 내사-다이빙벨 관련” 등의 기록이 있다.

언론노조 관계자는 “김기춘 전 실장은 영화제 상영 직후 배급을 의식해 ‘대관료 등 자금원 추적’이라는 지시를 직접 내린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후 2016년 3월 이용관 집행위원장 등에 대한 검찰 수사가 착수됐다”고 밝혔다.

▲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 2014년 10월22일자. (사진=언론노조)
이 밖에도 “문화예술계의 좌파 각종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 ex) 다이빙벨, 파주, 김현”(2014년 10월2일자)이라는 김 전 실장의 직접 지시 사항, “영화계 좌파성향 인적 네트워크 파악 필요(경제)”(2015년 1월2일자) 등의 기록은 문화예술계 장악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의지를 드러내는 대목으로 간주된다.

반면, 산업화 세대의 애환을 다룬 영화 ‘국제시장’과 관련해서는 “영화 ‘국제시장’ -보수. 애국”(2014년 12월26일자), “‘국제시장’ 제작 과정 투자자 구득난 - 문제가 유. 장악, 관장 기관이 있어야”(2014년 12월28일자) 등의 기록이 비망록에 있다. 이념 잣대로 영화를 차별하고 차등 지원을 지시한 정황이라 논란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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