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이 탄핵 국면 앞에서 기로에 섰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서 임기 단축 등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합의해서 알려주면 따르겠다고 발표한 이후 ‘탄핵연대’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탄핵안 가결에 키를 쥐고 있던 비박은 당초 2일 탄핵안을 발의하기로 했던 계획을 수정해 대통령이 퇴진 시한을 밝히는 것을 보고 9일 탄핵에 동참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이탈표를 감안하고라도 2일 탄핵안을 발의할지 아니면 비박계 표를 결집해 9일 탄핵안을 발의할지 결정해야 한다. 

확실한 당론을 가지고 있는 당은 새누리당과 정의당이다. 새누리당은 1일 의원총회에서 4월 대통령 퇴진 그리고 6월 조기 대선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사실상 대통령 탄핵은 하지 않겠다는 공식 선언이다. 

▲ 1일 열린 본회의에서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이 친박계 이정현, 조원진, 이장우 의원등과 웃으며 인사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정의당은 계획했던 2일 탄핵안을 발의해야 한다는 확고한 입장이다. 심상정 대표는 "탄핵의 최종 결재권자는 비박계가 아닌 국민이다. 9일로 늦출 이유 없다. 계획대로 오늘 오후 탄핵소추의결서를 제출할 것을 야3당에 엄중히 촉구한다"며 "야당이 국민의 명예가 아니라 피의자 대통령의 명예를 앞세운다면 국민들은 야당에 대한 신뢰를 거둘 것"이라고 밝혔다. 

새누리당과 정의당이 확실한 당론을 가지고 탄핵 국면을 돌파하고 있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우왕좌왕하고 있다. 눈치보기 싸움이다. 

민주당은 우선 2일 탄핵안을 발의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당 내부에서 9일 탄핵안을 처리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일례로 김부겸 의원은 "비박계에도 명분을 세워줘야 한다"면서 "비박계 동의가 없이는 탄핵안 통과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국민의 요구 때문에 (2일) 의결 시도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같이 말하면서 "새누리당 비박계에게도 명분을 세워주고 그들이 탄핵에 동참할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해야 한다"며 9일을 탄핵안 처리일로 잡고 비박계를 설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탄핵안 가결에 필요한 표를 고려할 때 2일 탄핵안을 처리하면 불발이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9일 확실한 가결표를 끌어모아 탄핵안을 처리해야한다는 주장이다. 김 의원의 주장은 비박계의 도움 없이는 탄핵안 통과과 불가능한 현실을 직시하자는 얘기다. 

▲ 국민의당이 오는 2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본회의 처리에 대한 더불어민주당 제안을 거절한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야3당 대표가 회동에 앞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국민의당 안에서도 내부 갈등이 벌어질 조짐이다. 안철수 전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2일 통과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전 대표는 9일 탄핵안 발의에 찬성하는 의원들을 설득해 2일 발의안을 제출하겠다며 탄핵안 통과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반면, 박지원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중요한 것은 단 하나,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이라면서 "부결될 게 뻔한데도 무조건 발의하자는 것은 책임있는 정당과 정치인의 태도가 아니다"고 밝혔다.

하지만 9일로 탄핵안 처리일을 늦추는 것이 오히려 국민 여론에 반하는 일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 3차 담화문 발표 뒤에서 탄핵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국민 10명 중 7명으로 나왔다. 탄핵은 공식적으로 국민의 뜻에 반해 잘못된 국정운영을 한 대통령의 죄를 묻는 절차이기 때문에 퇴진과 상관없이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도 거세다. 

이미 비박계에서 ‘4월 퇴진, 6월 조기 대선’에 동조하는 의견이 나오면서 9일로 탄핵안을 늦추더라도 이탈표가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9일 탄핵안을 처리하자는 명분은 비박계를 설득해서 가결시키는 게 현실적이라는 건데, 정작 비박계의 표심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비박인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국정 안정화의 더 빠른 길이 있는데 왜 굳이 돌아가려 하느냐"면서 "대통령이 탄핵보다 더 빨리 물러날 길을 열었는데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걷어차 버리는 야당은 민심을 잘못 읽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5일까지 대통령 퇴진 일정을 여야가 합의해 통보하고, 7일 대통령이 3월까지 하야하겠다고 하면 탄핵은 할 필요가 없고, 수용하지 않으면 9일 탄핵안을 처리하면 된다는 주장이다. 

하 의원의 주장은 한편으론 현실적인 주장처럼 보이지만 촛불집회에서 나온 즉각 퇴진 및 탄핵 요구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다. 대통령직을 내려놨다고 해서 모두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탄핵안은 가결시 바로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는 반면, 시한을 정한 하야는 어찌됐든 내려오기까지 직을 유지하면서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할 수밖에 없다. 촛불집회에서 수백만명의 국민들이 대통령 하야를 외친 건 대통령이 책임을 지고 직을 내려놓으라는 명령이다. 하지만 담화문 내용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박 대통령은 자신은 사심 없이 살아왔다며 국정농단 사건에 대해 책임은 없다고 발을 빼고 있다. 국민들은 탄핵이라는 헌법의 권한으로 대통령을 준엄하게 꾸짖고 싶은 것이다.

▲ 11월1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과 세종로 일대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4차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민주당이 섣불리 탄핵안 처리를 늦출 수 없는 이유도 국민여론이 어디로 튈지 갈피를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혹여 9일에도 탄핵안 처리가 불발되면 야당 책임론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심판한 국민 여론을 야당이 무시했다는 비난으로 돌아올 수 있다. 

청와대는 새누리당이 4월 퇴진-내년 6월 대선 당론을 확정하자 "여야가 합의해달라"고 밝히면서 야당을 압박했다. 퇴진 시한을 합의해달라고 촉구하면서 동시에 탄핵 절차는 중단돼야 한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백찬홍 씨알재단 운영위원은 "여당은 단일안을 냈고, 대통령은 또다시 국회가 합의하라고 공을 던지면서 야당을 압박한 것"이라며 "야당은 야당대로 합의하기 어려운 국면이 됐다. 국민 대다수는 탄핵을 해야 한다는 건데 탄핵안 처리 현실론에 막혀 자중지란이 되면서 대통령 덫에 걸려 버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백 위원은 "어찌됐든 특검도, 국정조사도 남아있다. 대통령이 수세 국면에 있는 것이고, 야당이 책임질 일이 아니다"면서 "강공을 펴는 것이 원칙으로 보이는 것이다. 대통령의 덫에 걸려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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