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한국타이어에 대한 대규모 역학조사 보고서가 발표됐다. 그 결과 고열과 과로가 돌연사 및 심장질환 유발 요인으로 꼽혔지만, 유기용제 등의 영향은 밝혀내지 못했다. 당시 역학조사 자문위원회 유족 측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던 두 의사는, 한국타이어 측의 비협조적인 태도 때문에 평소보다도 낮은 유기용제 수치만 얻은 한계를 꼬집었다. 스트레스와 고열 등이 원인이라는데, 2008년 이후 지난 8년간 암과 순환기질환 등으로 사망한 한국타이어 노동자는 최소 36명에 이른다. 조사 결과는 나왔는데 아무도 ‘팩트’를 모른다.

미디어오늘은 노상철 단국대 의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와 임상혁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을 만나 당시 역학조사 진행 뒷이야기와 현재 남은 과제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두 전문가는 공통적으로 당시 2008년 역학조사 보고서에 대해 노동자에게 유해한 근무상황을 파악할 만큼 제대로 된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고 답했다. 특히 한국타이어 내부에서 사용했던 유기용제에 대해 유의미한 조사결과가 담길 수 없었던 환경을 지적했다.

노상철 교수는 “현장을 가본 적이 있는데 역겨운 냄새와 제대로 환기가 되지 않고 찜기같은 기계에서 나오는 복합적인 증기들이 가득찼었다”고 회상했다. 역학조사로 인한 현장방문 당시에는 “환경은 이미 바뀌어있었고, 창문도 열고 물질도 바꾼 상태였다. 한 마디로 평소 작업 내용이 아니었다. 측정 결과 (유해한) 화학물질의 수치를 확인하지 못했던 이유”라고 설명했다.

임상혁 소장 역시 “(현장 방문 당시) 너무 깨끗하다고 이상하게 느낄 정도였다”고 말했다. 임 소장에 따르면 공장 작업환경 검사는 불시에 방문할 수 없기 때문에 공장은 미리 가동을 중단하거나 환기를 잘 시켜 놓는다는 것. 2008년 발표된 보고서에서도 부타디엔, 스티렌, 포름알데히드 등은 거의 검출되지 않았다.

임 소장은 “인조고무에서 스티렌, 부타디엔 등 발암물질이 나온다는 건 이미 세계 연구를 통해 입증된 결과”라며 “정련, 가류 등 타이어 생산공정에서 다양한 물질이 나온다. 미쉐린, 굿이어 등 해외 타이어공장에서도 암환자가 빈번하게 발생해왔고 타이어공장을 1급 발암물질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덧붙였다.

노 교수는 2007년에 진행된 2008년 역학조사 보고서에 한국타이어 공장 내부 화학물질 측정치가 정상 근로환경과 다르게 측정됐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한 가지 근거로 2004년 한국타이어 제조 공정 중 하나인 비드(타이어를 자동차 림에 창착시키는 부품)공정에서 검출되는 메틸헥산과 헵탄, 메틸시클로헥산 등의 검출치가 2007년에는 거의 검출되지 않았을 정도로 크게 줄었다는 것을 들었다. 노 교수는 “작업장 내의 환경이 그 사이에 크게 변화한 것이 아니라면 뭔가 측정상의 문제가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두 전문가는 일부 물질만의 직접적인 영향보다는 다양한 물질과 환경이 노동자에게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 교수는 일각에서 제기했던 타이어를 찌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무 흄의 유해성에 대해서는 “독성이나 영향들이 연구로 밝혀진 게 없어 유기용제의 유해성보다도 더 명확하지 않아 이를 문제로 삼기는 힘들어 보인다”고 답했다. 임 소장 역시 “화학물질 하나가 하나의 병을 일으키는 게 아니라 (공장 내에) 여러 가지 물질이 영향을 준다. 신경계 독성을 지닌 물질도 있고 생식기계에 영향을 주는 물질도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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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용제 이외에도 스트레스 역시 돌연사의 한 원인으로 유효했을 것이라는 당시 분석은 일부 타당했을 것이라고 두 전문가는 답했다. 한국타이어에 대한 역학조사가 이뤄지기 전까지의 노무 관리 상황 때문이다.

노 교수는 “(2007년 역학조사가 이뤄지기 전까지 사내 노무관리 시스템에 의해) 심장에 문제를 일으킬만한 스트레스”가 있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노 교수는 당시 한국타이어의 노무환경에 대해 “라인에서 작업자가 근무를 하고 이동하는 상황이 모두 중앙컴퓨터에 자동으로 보고가 되고, 곳곳에 CCTV를 설치했다”고 전했다. 다만 노 교수는 “일부 부서의 결과치로만 사내 스트레스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언급됐던 것”이라며 전체 문제로 보기어려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2008년 당시 역학조사는 준정부기관인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현 안전보건공단)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 이뤄졌다. 사실상 준정부기관이다. 노 교수는 당시 역학조사에 대해 “단일 규모로는 당시 역대 최대였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노 교수는 “물량과 장비, 시설 등 이전에 투입되지 않았던 물량이 모두 투입됐던 조사”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역학조사로 한국타이어의 돌연사 및 심장질환으로 인한 사망은 고열과 스트레스만이 유효한 원인으로 꼽혔다. 조사 기간도 4개월 남짓으로 다른 역학조사에 비해 짧았다. 준정부기관이 나선 조사였지만 사실상 밝혀낸 것이 없다고 두 전문가가 입을 모으는 이유다.

한국타이어 문제는 삼성 반도체 문제와 달리 여론의 주목도 받지 못했다. 이미 2008년 발표된 역학조사에 이어 2009년 추가 역학조사역시 사측이 노동자들의 건강관리에 신경써야 한다거나 보건관리 시스템을 갖춰야한다는 수준 이상의 특별한 조치도 없었다. 이처럼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지만, 이미 두 차례의 집단 역학조사가 이뤄졌는데 이후에도 특별히 여론이 집중 조명하지 않으면 또 다시 집단 역학조사가 이뤄지는 것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당시 역학조사 결과가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조사 이후에도 건강한 환경 속에서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감시해야 하는 이유다. 임상혁 소장은 “2008년 이후 현재 한국타이어의 근무 상황을 보는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후 노동 환경이 진짜 개선된 것이 맞는지, 현재 근무하고 있는 약 4000여명의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에게 노동 환경이 미치는 영향은 어떤지, 그리고 노동자들에 대한 노무 관리 상황은 개선됐는지 등의 현 상황 점검이 가장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노상철 교수도 “현재 증상이 있거나 통증이 있는 사람들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며 “지금으로서는 빙산 아래 물 속에 있는 사람을 같이 고려해야 한다. 전체를 대상으로 잠재적 위험에 대한 집단관리가 필요하며, 여기서 추가로 더 위험한 사람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와 함께 산재와 근로 환경 조사 관련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임상혁 소장은 “산재 입증 책임을 회사로 전환해야 한다. 만약 벤젠이 영향을 줬다면, 산재를 신청하기 위해서는 노동자가 근무 환경 속에서 벤젠이 쓰였다는 자료를 일일이 다 찾아내야 한다. 회사로 입증책임을 바꿔버리면, 벤젠을 안 썼다는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면 (산재와의 연관성이 없다고) 입증하지 못한 것이 된다”고 말했다.

노 교수는 “현장에 대한 객관적인 조사와 조사 과정에의 근로자 참여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 현장조사에 들어갈 때 평소에 하던 작업을 검사할 수 있는 여건도 돼야 한다. 어떤 조사든 검사와 피의자, 피의자 이해관계를 두둔할 수 있는 제3자가 함께 앉아서 심문을 받는 조건을 상상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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