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9일 퇴진 의사를 밝혔다. 즉각적인 퇴진은 아니라는 점, 향후 반전을 꾀할 가능성이 남아있다는 점에서 대통령의 퇴진 의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무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언급한 것은 1960년 4월27일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 성명을 발표한 지 56년 만의 일이다.

두 대통령의 퇴진은 헌법질서를 파괴하고 끝까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 대규모 퇴진운동이 하야 직전까지 연이어 벌어졌다는 점이 닮았다. 박 대통령이 보다 오래 견뎠다는 사실은 차이다.

▲ 1960년 4월27일 동아일보 1면

이 전 대통령의 경우 1960년 3.15 부정선거부터 4월26일 하야성명까지는 42일이 걸렸다. 3.15 부정선거는 이 전 대통령을 향한 대대적인 퇴진운동을 일으킨 촉발제였다. 이 전 대통령은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공무원을 동원한 선거운동, 선거인명부 허위기재, 위조투표, 투표함 바꿔치기 등을 서슴지 않았다. 마산시민들이 3월16일 항거에 나서는 등 퇴진운동이 확대됐으나 폭력진압으로 시민들이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 이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급감해갔다.

4월11일 최루탄이 박힌 고 김주열씨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되며 퇴진운동은 급격히 진전됐다. 4.19혁명은 서울 시내 대학생, 중·고교생들이 일제히 거리로 나오며 시작됐다. 시위대는 대통령 관저 '경무대'까지 접근했다. 이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이날, 서울에서만 경찰의 총격에 의해 사망자 100여 명이 발생했다. 폭력진압에 의한 희생자는 전국 186명으로 집계됐다. '살인정권 타도'라는 구호가 등장했다.

대량 인명 피해로 국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4월25일 묵묵히 사태를 지켜보던 교수들도 하야 요구 선언문을 발표하며 거리로 나왔다. 이들은 "쓰러진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는 현수막을 들었다. 장면 부통령은 25일 사퇴했다.

이 전 대통령은 다음 날인 26일 장기집권 12년을 끝으로 하야 성명을 발표했다. 허정이 권한대행 역할을 맡았다.

4월26일 시위대는 더 불어났다. 이 전 대통령은 이날 장기집권 12년을 끝냈다. 하야 성명서를 발표한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은 5월29일 비밀리에 하와이로 망명해 다시 대한민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 2010년 7월19일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우남 이승만박사 45주기 추도식'에서 참석자들이 분향후 고개숙여 묵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승만 대통령은 4월26일 "나는 무엇이든지 국민이 원하는 것만이 있다면 민의를 따라서 하고자 할 것"이라며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의 담화문엔 부정선거, 폭력진압 등에 대한 사죄와 책임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전 대통령은 하야할 때까지 자신의 과오를 언급한 적이 없었다.

박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지난 9월20일 미르·K스포츠재단 비리 및 최순실 비선 실세 의혹이 한겨레를 통해 보도되면서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졌다. 박 대통령은 29일까지 70여 일이 지나는 동안 세 차례 담화문을 발표했으나 헌법 질서를 어겼다는 등 제대로 된 사죄를 하지 않았다.

29일 담화문에서 박 대통령은 퇴진 의사를 밝혔다. 박 대통령은 "저는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며 "여야 정치권이 논의해 국정 혼란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방안을 만들어 주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최순실 게이트 규탄 촛불집회에 참가자들이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며 촛불을 밝히고 있다. ⓒ포커스뉴스

그는 끝까지 국정 농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지금 벌어진 여러 문제들 역시 저로서는 국가를 위한 공적인 사업이라고 믿고 추진했던 일들"이었다며 "주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은 결국 저의 큰 잘못"이라고 밝혔다. '최순실 게이트'로 드러난 국정농단 사태를 주변인의 일탈로 몰고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3차 담화문이 있기 까진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촛불집회가 다섯 차례 이어졌다. 지난 26일 5차 범국민대회엔 최대 규모인 190만 명이 전국에 모였다.

하야 요구가 거센 와중에도 박 대통령은 '질서있는 퇴진' 수순을 택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즉시 "탄핵 국면 탈출하려는 꼼수"라며 "국회는 탄핵을 계속 추진할 것"이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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