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에게 조금이라도 부정적 느낌을 주는 부분은 사실에 입각한 검증이라도 자제하는 게 좋을 것 같다” (2012년 12월5일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중앙선대위 본부장단 회의에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파국은 2012년 18대 대선에서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었다. 1순위 책임자는 문재인 후보다. 문재인은 박근혜를 검증하지 않았고, 검증하지 못했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놀라는 분위기라 하더라도 후보자를 검증하지 못한 정치권에 면죄부를 줄 순 없다.

최태민 일가와 박근혜의 관계는 40여년이나 지속됐다. 이 관계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던 보수 성향의 언론은 대선 당시 박근혜의 문제점을 외면했고, 진보언론은 집요하게 검증하지 못했다. 이제라도 언론이 그들의 비리를 보도하고 있지만 여전히 책임은 남는다. 언론 못지않게 후보를 검증하지 못한 문재인의 책임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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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은 박근혜 검증에 실패했다 

최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보도를 보면 공통점이 있다. 최순실 관련 보도의 정보 출처가 2007년 한나라당 경선과정에서 이명박 당시 후보 측 조순제, 김해호, 정두언 등의 발언이나 자료들이다. 박근혜 후보와 직접 대선을 치렀던 문재인 후보 측에서 나온 자료는 찾기 어렵다. 문재인 측에서 박근혜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 박근혜 대통령

선거는 크게 두 가지 면을 보고 선택한다. 후보가 어떤 공약을 제시하는지와 해당 공약을 실천할 만한 자질을 삶에서 보여줬는지다. 

대선 당시 박근혜과 문재인의 공약엔 큰 차이가 없었다. 두 캠프에서 모두 경제민주화를 주장했고 박근혜 캠프가 이를 선점한 상황이었다. 공약을 잘 실현할 수 있을지는 선거과정에서 후보자의 과거 경력을 추적해 향후 어떤 정치를 펼칠지 유추해야 한다. 그러나 문재인의 ‘네거티브 자제령’은 이 과정을 봉쇄했다.

대선직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민간인 사찰 비선 라인의 존재를 알고도 비호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고 있었다. 당시 권재진 법무부 장관이 책임지고 사퇴하라는 요구가 있었다. 문재인 캠프 선대본부장이었던 박영선 의원은 선대본회의에서 권 장관이 퇴진을 거부한 것을 비판하며 “이것은 박 후보와의 암묵적 교감이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실정을 국민들도 이미 체감했고, 박근혜는 여당 내 야당으로 불렸기에 이는 무기력한 네거티브였다. 

민심보다 한 걸음 뒤에 있었던 문재인 

지도자는 결단해야 한다. 심지어 결단이 자신의 사익에 반하더라도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 비전을 제시하며 사익을 내려놓고 불이익마저 감수했던 게 ‘노무현 정신’이다. 그러나 문재인은 소위 ‘각을 세우지 않는 방향’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다. 노무현이라는 후광을 입은 상황에서 이는 정치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

리더가 손해를 감수하며 결정하지 않으면 공동체에 혼란이 온다. 캐머런 전 영국 총리는 당내에서 결정할 사안인 브렉시트를 자신이 결정하지 않았다. 국민투표로 떠넘겼고,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와 많은 비난을 받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리더십은 자신을 희생하는 만큼 발생한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2003년부터 시작된 4단계 경제개혁을 단행했다.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재정악화와 저성장으로 인해 독일의 실업률이 심각한 문제로 등장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복지 및 노동정책인 ‘어젠다 2010’을 시행해 반발을 샀다. 당시 인기 없는 개혁이었지만 슈뢰더는 정치적 생명의 위기를 예상하며 정책을 추진했다.

예상대로 슈뢰더는 낙선했고 정권은 사회민주당(SPD)에서 메르켈 현 총리가 소속된 기독교민주연합(CDU)에게 넘어갔다. 슈뢰더는 지도자는 결단을 회피해선 안 된다는 신념을 관철했고, 독일의 경제는 일정부분 안정화에 성공했다. 메르켈 총리도 이후 소득세 최고세율을 높이는 등 슈뢰더의 개혁을 계승했고, 전임 총리를 높게 평가했다.

문재인은 어떤 결단을 하고 무슨 책임을 지고 있을까. 문재인은 파도에 출렁이는 조각배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휩쓸리는 중이다.

이달 초 문재인은 “정치인이 집회에 참여할 경우 정쟁으로 비칠 우려가 있다”며 촛불집회에 참여하지 않았다. 우리는 문재인이 대선불출마를 선언하고 나라를 걱정하며 촛불 든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 요지는 기득권을 내려놓을 줄 아는 ‘리더의 모습’을 찾기 어렵다는 말이다. 그는 지난 대선 직후 대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말은 했지만 의원직 반납 요구는 거부했다.

▲ 5차 촛불집회를 앞두고 눈이 내린 26일 오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서울 마포구 홍대 앞 걷고싶은거리에서 진행된 '노변격문(路邊檄文)'에 참석해 촛불집회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사진제공=문재인 전 대표, 포커스뉴스

국민들이 대통령 즉각 퇴진을 주장할 때 문재인은 ‘대통령 2선 후퇴와 거국중립내각’을 제안했다. 국정공백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문재인은 민심보다 한걸음 뒤에 있었다.

문재인은 ‘거국중립내각’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지난 15일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과 함께 전국적인 퇴진 운동에 나서겠다”며 “명예혁명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탄핵에는 선을 그었다. 11월 한 달 간 400만이 넘는 촛불을 켰다. 시민은 시민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문재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다 하지 않았다. 그는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다.

지난 20일 검찰에서 박근혜의 범죄사실을 명시했다. 문재인을 비롯해 야3당은 탄핵을 입에 올렸다. 100만명이 지속적으로 모이자 문재인도 거리에 나왔다. 차기 대권에 가까이 있는 문재인과 대권 잠룡들은 다시 촛불을 두고 지분경쟁을 벌이고 있다. 촛불민심이 곧 야당지지라고 착각하는가? 

▲ 23일 오후 서울 용산구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열린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학생들과 함께 하는 시국대화'에 참석한 학생이 문 전 대표를 지지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문 전 대표는 이날 전국 최초로 동맹휴업을 결의한 숙명여대 학생들과 만난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의 뜻을 거부하면 즉각 탄핵해야 한다'는 점을 밝혔다. 사진=포커스뉴스

문재인은 기득권을 포기할 수 있나 

촛불에는 ‘선배 정치인의 아우라를 등에 업고 청와대에 입성하는 정치’에 대한 비판이 녹아있다. 촛불은 민심에 숨은 정치인이 아닌 민심을 이끄는 지도자를 열망한다. 새누리당 남경필 경기지사가 탈당했고 김무성 전 대표가 대선불출마를 선언했다. 문재인은 이런 ‘정치쇼’로 보일만한 행동조차 하지 않는다. 

우리는 1987년 대통령직선제 이후 가장 망가진 국정운영을 지켜보고 있다. 무능한 리더가 선출되더라도 최근 같은 상황을 막을 방법이 뭔지, 승자가 독식하는 선거제도를 개선할 필요는 없는지, 세월호 참사를 야기한 규제완화와 이윤중심사회는 어떻게 바꿀지, 검찰·재벌·언론은 어떻게 개혁할지, 정경유착의 고리는 어떻게 끊을지, 문재인의 의견을 국민은 알아야 한다. 여기에 대한 문재인의 답변은 구체적이면서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대통령의 지지율은 급격하게 빠졌는데 왜 문재인 대선후보지지율은 지난 한 달 간 20%내외에서 오락가락할 뿐일까? 진정성 없는 주장들에 지지층이 확장될 수 없다.

28일 JTBC '뉴스룸'에서도 문재인은 한 치의 기득권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문재인은 대통령 즉각 퇴진을 주장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탄핵에 의해 쫓겨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럴 경우 대선은 60일 이내에 치러진다. 단연 가장 유리한 후보는 문재인이다. 자신의 정치적 유불리에 충실한 답변이다.

앵커 손석희가 “조기대선을 염두에 둔 주장이냐”고 묻자 문재인은 “그게(조기대선)이 헌법 규정”이라면서도 “(조기대선이) 무리하다면 국민들이 공론을 모아줄 것”이라고 답했다. 손석희의 반복적인 물음에 “지금 이 시기에 그런 이야기는 이르다고 생각한다”며 답변을 피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진정성을 보이기 위해 필요하다면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든가, 차라리 박근혜가 떠난 자리에 앉고 싶다고 말하든가 해야했다. 그러나  문재인은 박근혜 이후를 말하지 않는다. 

18대 대선과정에서부터 최근 정국까지 문재인의 행동에는 일관성이 있다. 함부로 민심을 이끌지 않는다. 19대 대선에서 문재인은 희생을 감수할 한국사회의 지도자로 변할 수 있을까? 문재인과 맞붙을 후보들을 제대로 검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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