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대선 X파일, 2002년 대선 땐 차떼기, 2010년엔 삼성 비자금 사건이 있었다. 한 번이 아니고 여러 번, 대선이 있을 때마다 대통령 만드려고, 검찰총장, 언론에게 돈을 갖다바쳤다. 엄연히 불법이고 뇌물이다." (정지현 사회진보연대 활동가)

"7년 째 국민연금낸다. 내가 14만 원, 회사가 14만 원 한달 28만 원이 적립된다. 30년 꼬박 부어야 연금 제대로 받을 수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무리하게 합병시켜 국민연금 6천억원이 날라갔다. 그거 다 누구 돈이냐. 당신들 경영승계에 들어갈 돈이 아니다." (정성원 사무직 노동자)

시민들이 '최순실 게이트'에 뇌물 수뢰 의혹으로 연루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시민법정에 세워 '유죄를 선고'했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출연금으로 건넨 204억 원 외에도 정경유착, 노동권 탄압, 국민연금 강탈, 의료민영화 등으로 '공공에 피해를 입혔다'는 이유다.

▲ 사진=손가영 기자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제5차 범국민대회 개최되기 4시간 전,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보건의료단체연합, 반올림(반도체 노동자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사회진보연대 등은 26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본관 앞에서 '삼성 이재용-최순실 게이트 시민법정'을 열었다.

삼성 반도체·LCD 공장 직업병 피해자, 삼성전자서비스센터 노동자, 국민연금 징수자, 보건의료연합단체 대표 등이 증인으로 참석해 각각 ▲삼성전자 노동권 탄압 및 산업재해 문제 ▲경영승계로 인한 국민연금 손실 ▲의료민영화 밀실 추진 등을 고발했다.

이들이 ‘최순실 게이트’를 ‘삼성 이재용-최순실 게이트’라 부르는 이유는 삼성그룹을 포함한 대기업 재벌들을 최순실과 같은 특혜 수혜자로 보기 때문이다.

▲ 사진=손가영 기자


대기업들이 486억 원을 출연한 미르재단 설립일은 10월27일이다. 하루 전 26일 재벌대기업 16곳은 입금을 완료했다. 대통령은 10월27일 ‘2016년도 예산안 시정 연설’에서  ‘노동개혁 5법’ 처리,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의료법, 국제 의료 지원법 등 ‘경제 활성화법’ 처리, 한중 FTA 비준 등을 강조했다.

K스포츠재단 설립 때도 이는 반복됐다. 지난 1월12일 대기업 16곳은 288억 원 입금을 완료한다. 다음 날 13일 케이스포츠재단이 설립됐고 박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담화문 은 노동개혁 5법, 의료·전기·가스 등의 민영화 방침이 담긴 경제활성화법 통과 필요성을 강조했다.

“삼성없는 한국경제는 상상할 수 없다. 경영승계 실패하면 한국경제 휘청거릴 텐데 누가 감당합니까?” 이재용 부회장의 가면을 쓴 참여자는 “삼성도 피해자”라고 강조했다.

▲ 사진=손가영 기자


이재용 부회장의 ‘의료민영화’ 혐의를 폭로한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시민법정 재판장에게 “재벌이 입금할 때마다 대통령이 재벌의 명령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을 추진했다”며 “삼성을 비롯한 재벌은 결코 피해자가 아니라 공범으로 뇌물죄로 처벌받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박 대통령이 지난 2년 동안 공식석상에서 원격의료를 언급한 게 261번이라 하는데 내가 세어 보니 더 많더라. 얼마나 세게 써놨고(재벌의 요구사항) 얼마나 돈을 강력하게 받았으면 그렇게 했겠나.” 이재용 부회장은 2015년 다보스포럼 등의 공식석상에서 수차례 삼성의 ‘미래 먹거리’를 IT, 의학, 바이오의 융합이라 거론해왔다. 이 부회장은 구체적 산업으로 ‘원격의료’를 제시해왔고 삼성그룹 내 계열사는 병원, 보험산업, 전자제품 제조산업 등에 걸쳐 있다. 우 정책위원장이 ‘의료민영화도 삼성의 입김일 것’이라 보는 근거다.

▲ 사진=손가영 기자


노동권 탄압에 대해 이재용 부회장을 분한 참여자는 “삼성에 노동조합이 없는 이유는 탄압해서가 아니라 만족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이종란 노무사는 산업재해를 인정받지 못하는 직업병 피해자 한혜경씨의 글을 읽었고 라두식 삼성전자서비스지회장은 노조탄압을 겪은 경험담을 증언했다. 한혜경씨는 지난 1995년 삼성전자 LCD 기흥공장 생산직으로 입사해 6년간 인쇄회로기관 납땜 업무를 했고 2001년 건강악화로 퇴사한 뒤 2005년에 뇌종양 진단받은 직업병 피해자다.

▲ 사진=손가영 기자

“우린 반도체·LCD 공장에서 종일 서서, 몸이 부서져라 일했는데도, 쉬는 시간은 점심시간 40분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옷갈아입고 건물을 오가는데 썼고 밥먹는 시간은 겨우 5분이었다. 물량이 많을 때는 화장실에서 대충 빵으로 때우기도 했다. … 노동자들은 화학물질을 다루는 데도 그 물질이 어떻게 안 좋은지는 전혀 모른 채 일했다. 동료가 갑자기 하혈하고 백혈병으로 쓰러져도 그게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이종란 노무사)

“염호석 열사(2014년 사망) 유족이 아들의 유지대로 모든 장례절차를 노조에 위임한다고 했다. 그러나 사망 하루 뒤인 5월18일 시신이 안치된 장례씩장에 300여 명 경찰병력이 투입됐고 강압적으로 시신을 탈취했다. … 삼성전자서비스지회에서 생긴 노동열사가 아니라, 한 개인의 죽음이었다면 경찰은 이와 같이 나섰을까? 염호석 열사 시신탈취 사건은 국가권력이 어떻게 자본에게 통제되는 지 보여준다.”(라두식 지회장)

법정 말미, 재판장은 이재용 부회장에게 ‘유죄’를 선고하고 ‘2380’ 번호가 쓰여진 죄수복을 입혔다.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유전무죄’가 적힌 스티커를 삼성 본관 건물에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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