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청와대를 포위했다. 26일 오후 4시부터 광화문 광장에서 출발한 시민들이 대열을 나눠 청와대 동쪽과 서쪽 200m 인근까지 행진해 집회를 시작했다. 청와대 코 앞에서 ‘박근혜 퇴진’ 구호가 하늘을 찌를 듯 울려퍼졌다

서울행정법원은 25일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이 경찰을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을 일부 받아들여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새마을금고 광화문 본점, 삼청로 세움아트스페이스, 신교동로터리 등 청와대 인근을 지나는 4개 경로로 행진을 허가하라고 명령했다. 허용된 시간은 집회는 오후 5시까지 행진은 오후 5시30분까지다.

▲ 사진=손가영 기자


오후 4시 기준, 시청광장, 광화문광장으로 모인 시민 20만 명(주최측 추산)은 광화문에서 청운동주민센터까지 이르는 행진로와 동십자각을 지나 삼청동으로 이르는 행진로 두 갈래로 나뉘어 ‘청와대 포위 행진’을 시작했다.

청와대 동쪽인 삼청로 세움아트스페이스 앞 도로는 청와대 동문에서 400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서쪽으로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은 200m 거리다. 청와대 앞 200m 지점에서 열리는 대규모 집회는 헌정 사상 처음이다.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는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고등학생인 이해남군은 방송차에 올라 "우리나라는 민주주의다. 하지만 왜 박근혜는 모르는가. 아버지 박정희가 독재자여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말귀를 못 알아들어서 그런 것인가"라면서 "점점 시간 끌수록 불리해져 간다. 하지만 국민들은 함께 해야 한다. 박근혜는 퇴진하고 야당은 탄핵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 사진=손가영 기자


국민으로서의 자존감을 회복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안산시민 김창균씨(34)는 "내가 내 시간을 포기하며 여기 나온 것은 더 중요한 가치를 회복하기 나왔다. 국민들의, 내 자존심을 청와대에 있는 누군가가 부셔놓았기 때문"이라면서 "국정을 하라고 뽑았지 최순실과 차은택에게 퍼주라고 뽑은 게 아니"라며 박 대통령의 퇴진을 주장했다.

민주노총 조합원이라 밝힌 기아자동차 노동자는 오는 30일 민주노총이 단행하는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위한 총파업을 응원해 줄 것을 당부했다. 그는 "70% 조합원이 박근혜 퇴진 총파업에 동의했다. 조합원의 열망, 시민들의 열망으로 민주노총 파업을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면서 "경찰들은 국민을 위한 존재라면 전경버스 다 치우고 박근혜를 체포해야 한다. 당신들이 못한다면 우리가 가서 체포할 것"이라 발언했다.

대안학교인 '하자작업장 학교' 소속 학생 30여 명은 북, 캐스터네트, 실로폰 등으로 타악기 연주를 하며 청운동주민센터 앞 집회에 합류했다. 이들은 모두 세월호 추모 리본을 착용했다.

집회를 태어나서 두번째로 와봤다는 대학생 임아무개씨(25)는 "박근혜 대통령을 뽑은 것이 너무 부끄러워서 지난 주부터 촛불집회에 나왔다"면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할 만큼 비정상적인 대통령"이라고 비판했다.

오후 4시50분 현재 삼청동 세움아트스페이스에서도 시민들의 자유 발언이 계속되고 있다.

강원도 강릉에서 왔다는 한 시민은 자유 발언대에 올라 “이런 함성으로는 박근혜를 놀라게 할 수 없다”면서 “거센 함성으로 박근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 사진=손가영 기자

중학교 3학년이라는 한 학생은 “나라가 힘들 때 학생들이 나섰다, 우리가 살아야 할 세상이고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세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은 “박근혜는 퇴진하라”, “박근혜를 구속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50대 가정주부라고 밝힌 한 시민은 “우리 같은 평범한 시민들은 슈퍼에 가서 돼지고기 한 덩어리를 살까 말까 들었다 놨다 하는데 박근혜는 수천억 수십조원을 순실이와 해 먹었다”면서 “분해서 잠을 잘 수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시민들은 발언이 끝날 때마다 거센 함성과 박수로 화답했다. 일부 시민들은 축구 경기장에서 유행했던 부부젤라를 불면서 흥을 돋우기도 했다. 조계종 승려들이 트럭에 싣고 온 큰 북을 두들겨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이에 앞서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 대한문 앞 광장에서 열린 중소상인 만민공동회에 참석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특권부패집단 모두가 부역자이며 여전히 3분의 2가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새누리당 역시 국민 심판 대상이 될 것”이라며 “이제 썩어빠진 나라를 바로 세워야 한다. 박근혜와 부역세력들, 친일세력들, 부패한 기득권 세력들을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집회에는 지난 집회에서 화제가 됐던 장수풍뎅이연구회를 비롯해 얼룩말연구회와 고산지발기부전연구회 등의 참신한 깃발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청와대가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와 팔팔정 등을 대량으로 구입할 걸 비꼬는 듯 하야하그라라는 깃발을 든 시민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