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법원이 지난 2월 발생한 ‘6사단 GP 구타·가혹행위 사망사건’ 가해자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내려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오늘이 25일 가해자 4인 중 3인의 1심 군사재판 판결문을 확인한 결과 재판부는 가해 병사 전원에 집행유예를 선고한 동시에 판결문에 피해자의 사망 사실을 단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다. 재판부가 가해 행위와 피해자 사망 간 인과관계를 누락한 것이다. 

▲ 군인권센터는 11월24일 오전 서울NPO지원센터에서 ‘6사단 GP 구타가혹행위 사망사건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사건의 진상을 알렸다. 사진=손가영 기자

제5군단 보통군사법원(재판장 이제흠 대령)은 지난 6월2일 가해 병사 제아무개 상병(이하 당시 직급)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 김아무개 상병과 임아무개 일병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각각 선고했다. 군 검찰이 피고인 제 상병에게 징역 3년을, 김 상병과 임 일병에겐 징역 4년을 구형한 것에 비하면 한참 낮춰진 형량이다.

재판부가 밝힌 양형의 이유는 ▲전과 및 징계처분 전력이 없는 점 ▲수백 장의 반성문을 자필로 작성해 제출한 점 ▲범행을 모두 인정하는 점 ▲피고인 연령, 성행, 가정환경 등을 참작한 점 등이다.

피해자 박아무개 일병이 피고인들의 지속된 폭력으로 사망했음에도 재판부는 이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양형 이유에서도 피해자의 사망 사실을 누락했다. 가혹행위와 자살사망 간의 연관성이 존재함에도 피고인에게 그에 대한 책임은 묻지 않은 것이다.

판결문에서 박 일병의 사망 정황을 유일하게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양형 이유 중 “피해자 박 일병의 유족들과 합의하지 아니하였기에 엄히 처벌함이 마땅”하다는 언급이다. 이마저도 ‘유족’이라는 간접적인 기재다.

▲ 제아무개 상병에 대한 제5군단 보통군사법원 재판부(재판장 이제흠 대령)의 양형 이유 판시. 또 다른 피고인 김아무개 상병과 임아무개 일병의 양형 이유도 이와 대동소이하다.

피고인들의 폭력 및 가혹행위가 박 일병의 죽음에 영향을 줬다는 점은 박 일병의 심리부검 조사에서 입증된다. 이영문 아주대 교수가 책임 진행한 ‘박 일병 자살사망원인조사 심리부검’에 따르면 박 일병은 “정서적으로 안정된 대가족 내에서 충분한 관심과 존중이 보장되던 환경에서 성장해 교우관계, 가족관계 모두에서 문제가 없었”고 “군 생활이 시작된 이후 생명 위협을 느낄 정도의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가 단기간에 집중”됐다. 박 일병이 쓴 글에 따르면 그는 자살에 대해서도 부정적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심리부검은 그의 신병 자질분석보고, 병영생활 지도기록부, 제6사단 헌병대 진술조서 일체 및 수사의견서, 사망 후 진행된 설문수리 및 진술서, 박 일병 생활기록부, 박 일병의 부대 내부 근무자 대면 면담, 유가족 대면 면담 등을 종합한 결과다. 군인권센터는 지난 9월 피해자 유족을 만난 후 가혹행위와 사망 간 연관성을 밝히기 위해 검사를 자체 의뢰했다.

박 일병 유족의 법률 대리인 강석민 변호사는 24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제일 좋은 것(방향)은 ‘폭행 치사’ (기소)겠지만 이는 법률적으로 무리가 있다”면서 “최소한 영향을 미친 인과관계가 있다면 (재판부가) 형을 정할 때 중하게 정할 수 있다. 판결문엔 피고인들에 행위로 피해자가 사망에 이르렀다는 언급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 사건을 지원하고 있는 군인권센터는 군사법원이 구조적으로 불공정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현행 군사법 체계 상, 야전부대 사단장 이상 지휘관이 헌병대(군 경찰), 군검찰부(검찰)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가지고 있으며 ‘관할관’ 자격으로 보통군사법원 행정사무를 관장하거나 재판관 지정권 등을 행사할 수 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지난 24일 열린 ‘6사단 GP 구타가혹행위 사망사건’ 긴급 기자회견장에서 “(고위직급이) 징계를 안 받고 진급 잘하기 위해 쉬쉬하는 것”이라며 “독립성, 공정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었음에도 박근혜 정부는 병영문화혁신 때 이를 폐지하지 않았다. 군 장성 또는 군 기득권 세력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로서 군사법원을 계속 쥐고 있는 것”이라 비판했다.

▲ 지난해 8월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군인권센터가 연 28사단 구타 사망사건 피해자 윤 일병 추모제에서 군 의문사 희생자 부모들이 자식의 영정을 든 채 슬픔에 잠겨 있다. ⓒ민중의 소리

‘6사단 GP 구타·가혹행위 사망사건’은 지난 2월7일 박아무개 일병이 선임병사 4명의 폭력, 폭언, 모욕, 가혹행위 등에 따른 고통으로 초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다. 육군 제6사단 7연대 소속으로 강원도 철원 휴전선 부근의 550GP에서 근무한 박 일병은 5개월 넘게 지속된 가혹행위를 견디다 후반야간근무 중인 새벽 4시경 자신의 턱 아래에 총구를 대고 숨을 거뒀다.

폭언과 모욕은 일상적으로 일어났다. 세 병사는 2015년 1월부터 수차례 박 일병에게 ‘○○ 강간하고 싶다’, ‘호박전(누나와 이름이 비슷함) 먹고 싶다’라고 말하며 성희롱을 했다. 김 상병은 ‘자위하면 어머니 나오냐’(어머니 이름이 정액과 비슷함)라며 박 일병의 어머니까지 희롱했다.

피고인들은 박 일병의 업무가 미숙하다며 폭언과 폭행을 행사했다. 임 일병은 박 일병에게 수차례 ‘개XX, 병XXX, 이 XX가 이렇게 빠져있으니 후임 관리도 제대로 못한다’고 폭언했으며 빨래를 제때하지 않는다고 전투화발로 박 일병의 정강이를 차고 어깨를 두 번 밀치는 등 폭력을 행사했다. 제 상병은 ‘답답한 마음이 든다’거나 아무 이유없이 박 일병의 머리를 때리기도 했다.

가혹행위는 사망 일주일 전 집중됐다. 북한의 수소탄 실험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대북방송을 재개해 대비태세가 증가했던 때였다. 550GP에 추가된 ‘화력대기 근무’는 모두 박 일병에게 전가됐다. 피고인 3인과 박 일병이 교대로 서야 했던 근무였다. 박 일병은 1월31일부터 2월7일까지 “영하 10도의 날씨에 야외에서 10시간 이상을 근무(군인권센터)”하며 밤 10시부터 밤 11시50분, 오전 10시부터 오후1시까지 매일 4시간 가량을 쪼개서 취침했다.

군검찰의 항소로 피고인 3인의 기소사건은 부산고등법원으로 이송됐다. 검찰로부터 징역 1년을 구형받은 또 다른 가해자 유아무개 병장(현재 예비역)은 인천지방법원의 1심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유 병장은 박 일병에 대한 폭행죄 및 초병폭행죄로 기소됐다.

제 상병의 범죄사실은 위력해사가혹행위, 협박죄, 폭행죄, 모욕죄 등이다. 김 상병의 경우 위력행사가혹행위, 모욕, 폭행, 강제추행, 초병협박, 초병모욕, 강요 등 박 일병을 비롯한 후임병 3인에 대한 범죄행위로 기소됐다. 임 일병 또한 폭행, 초병폭행, 모욕, 초병모욕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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