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7일 새벽4시경 철원 전방에 위치한 한 GP(Guard Post, 휴전선 감시 초소)에서 총성이 울렸다. 육군 제6사단 7연대 수색중대 소속 박아무개(21) 일병이 총구를 턱 밑에 대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총을 들기까지 1년여 동안 박 일병의 군 생활은 선임병들의 가혹행위로 얼룩져있었다. ‘고 윤일병 사건’의 재발을 막는다며 국방부가 병영문화혁신안을 내놓은 지 1년 반이 채 지나지 않은 때였다.

“죽은 사람은 있는데 죽인 사람은 없다.” 박 일병의 사망사건을 폭로한 군인권센터의 말이다. 박 일병 유가족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군인권센터를 찾았고 군인권센터는 24일 오전 서울NPO지원센터에서 ‘6사단 GP 구타가혹행위 사망사건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사건의 진상을 알렸다. 유가족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군인권센터가 박 일병 사망사건에 대한 수사자료, 1심 판결문, 관계자 증언 등을 토대로 만든 자료에 따라 박 일병이 목숨을 끊기까지의 과정을 재구성했다.

▲ 군인권센터는 11월24일 오전 서울NPO지원센터에서 ‘6사단 GP 구타가혹행위 사망사건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사건의 진상을 알렸다. 사진=손가영 기자

일상적 폭행 의심되는 부대, 사망 직전 10일 동안 가혹행위 집중

박 일병은 분대 선임들로부터 상습적인 폭행, 폭언, 모욕, 가혹행위 등을 당해왔다. 이 같은 사실은 1심 재판 과정에서 확인됐다. 가해자 선임병 4인은 가해사실을 인정했고 같은 초소에서 근무했던 타병사들도 가해사실을 증언했다.

지난해 9월에 있었던 일이다. 박 일병과 함께 656GP 초소를 섰던 유아무개 병장은 ‘업무 불성실’을 이유로 박 일병에게 기마자세를 시키고 K-1소총 개머리판으로 그의 왼쪽 팔을 5차례 가격했다. 당시 분대장이었던 제아무개 상병은 이를 보고받았으나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유 병장은 10월 초 또 폭행사실이 적발돼 보직이동 조치를 받았다. 초소 세면장 앞에서 유 병장이 ‘빨래가 제대로 돼있지 않다’는 이유로 박 일병의 턱을 두 차례 가격하는 모습을 손아무개 중사가 상황실 CCTV로 발견했다.

군인권센터는 “박 일병이 소속된 1분대가 이전부터 가혹행위, 폭행 등이 관습적으로 계속되는 분위기였다”고 지적했다. ‘적발된 폭행’보다 더 광범위하고 일상적으로 가혹행위가 이뤄졌을 것이란 추정이다. 유 병장은 재판과정에서 ‘나도 여기 왔을 때 선임이 나를 잘돼라고 때려서 정신 차리고 할 수 있었다. (박 일병도) 잘 되라고 때렸다’고 증언했고 가해 병사 대부분이 피해 경험이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 지난해 8월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군인권센터가 연 28사단 구타 사망사건 피해자 윤 일병 추모제에서 군 의문사 희생자 부모들이 자식의 영정을 든 채 슬픔에 잠겨 있다. ⓒ민중의 소리

가혹행위는 박 일병이 사망하기 직전까지 1개월 여간 집중적으로 일어났다. 특히 1월31일부터 2월7일까지 상황은 그를 극한으로 몰고 갔다. 북한의 수소탄 실험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대북방송을 재개해 대비태세가 증가했던 때였다. 박 일병이 근무한 550GP 초소엔 ‘화력대기 근무’가 추가됐다. 모든 추가대기근무는 박 일병에게 할당됐다. 사수 4인이 교대로 맡아야함에도 선임병 3인이 ‘막내 사수’였던 박 일병에게 전가했다.

박 일병은 제대로 잠을 자지도 못한 채 1주일 동안 모든 진지 대기시간을 챙겼다. “영하 10도의 날씨에 야외에서 10시간 이상을 근무”했다.(군인권센터) 취침시간은 많아야 5시간이었다. 그마저도 밤 10시부터 11시50분,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쪼개야했다. 화력대기 근무 배치는 분대장이 담당했다. 분대장 제아무개 상병은 박 일병에게 가혹행위를 행사한 병사 중 한 명이다.

“전쟁터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맨날 북한 쪽 봐야 뭐하나. 뒤를 돌아 여길 보면 진짜 전쟁터가 있는데….” 당시 박 일병이 후임들에게 한 말이다. 후임인 박아무개 이병 앞에서 박 일병은 눈물을 흘리며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 사진=군인권센터 보도자료

입에 담기 힘든 성희롱… 사망 직전까지 괴롭힌 정황

제 상병, 김아무개 상병, 임아무개 일병 등은 1월 초부터 박일병에게 폭언과 모욕을 한 가해자다. 모욕은 박 일병의 어머니와 누나에 대한 성적 희롱부터 이유없는 폭언까지 다방면으로 이뤄졌다.

세 병사는 매일같이 박 일병에게 ‘○○ 강간하고 싶다’, ‘호박전(누나와 이름이 비슷함) 먹고 싶다’라고 말하며 성희롱을 했다. 김 병장은 ‘자위하면 어머니 나오냐’(어머니 이름이 정액과 비슷함)라며 어머니까지 희롱했다.

업무가 미숙하다는 이유로 폭행, 폭언도 자행됐다. 세 병사는 빨래를 후임들에게 전가시켜 제때 하지 않으면 욕설을 했고,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박 일병의 말꼬리를 잡고 욕설을 이어갔다. 박 일병이 후임 교육을 할 때 ‘가르칠 능력은 되냐, XXXX야, 신병 취급 받고 싶냐’(제 상병, 임 일병) 등의 폭언, ‘개XX, 병XXX, 이 XX가 이렇게 빠져있으니 후임 관리도 제대로 못한다’(임 일병) 등의 폭언도 수시로 이뤄졌다.

임 일병은 빨래를 제때하지 않는다고 전투화발로 박 일병의 정강이를 차고 어깨를 두 번 밀치는 등 폭력을 행사했다. 제 상병은 ‘답답한 마음이 든다’거나 아무 이유없이 박 일병의 머리를 때리기도 했다.

군인권센터는 2월7일 새벽 3시 누적된 고통의 방아쇠가 당겨졌다고 보고 있다. 새벽 3시 상황실 근무 중이던 임 일병은 ‘담배를 피고 오겠다’며 4초소를 향했다. 4초소엔 박 일병이 후반야간근무를 서고 있었다. 임 일병은 박 일병에게 ‘PSV-04K(야간투시경)’을 꺼내놓지 않았다며 욕설과 함께 질책했고 이를 분대장 제 상병에게 말할 것이라 협박했다.

박 일병은 이후 1시간 동안 함께 있던 이아무개 이병에게 힘들다는 신호를 남겼다. “초소까지 와서 이럴 줄은 몰랐다. 화난다.”, “내가 스트레스 때문에 죽으면 다 저 XX들 때문이다.”, “정말 X같다.” 등을 맞대고 경계를 섰던 이 이병은 등 뒤로 ‘노리쇠 후퇴 전진’(격발 전 단계) 소리와 한숨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새벽 4시 총성이 울렸고 이 이병은 턱에 총을 쏘고 주저앉은 박 일병을 발견했다.

군 인권센터에 따르면 이 이병 또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전역을 한 상태다. 센터는 이 이병도 가혹행위의 피해자였다며 그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으며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스트레스 장애가 높다고 전했다.

사망 원인 언급안한 군사법원, 가해자 모두에 집행유예

군인권센터가 “죽은 사람은 있지만 죽인 사람은 없다”고 말한 까닭은 박 일병의 사망의 진상이 밝혀졌음에도 제대로 된 판결이나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판결문은 가해자의 가혹행위와 박 일병의 사망 간 연관성을 언급하지 않았다. 박 일병에게 ‘순직 3형’을 결정한 육군 보통전공사망심사위원회는 이미 지난 5월 가혹행위로 인한 사망을 인정한 바 있다. 제 상병, 김 상병, 임 일병은 지난 6월 5군단 군사법원으로부터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 사진=국방부 홈페이지 캡쳐

‘고 오대위 사건’, ‘고 윤일병 사건’ 등 군대 내 가혹행위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군인권센터는 군사법원 폐지를 주장해왔다. 제대로 된 수사와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행 군사법 체계 상 야전부대 사단장 이상 지휘관이 헌병대(군 경찰), 군검찰부(검찰), 군사법원을 모두 관할할 수 있다. 지휘관은 소속 부대 헌병, 검찰을 지휘·감독하고 ‘관할관’ 자격으로 보통군사법원 행정사무를 관장하거나 재판관 지정권 등을 행사한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국방부의 사건 은폐 및 솜방망이 처벌에 대해 “징계 안 받고 진급 잘하기 위해 쉬쉬하며 언론에 알리지 않는 것”이라며 “독립성, 공정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었음에도 박근혜 정부는 병영문화혁신 때 이를 폐지하지 않았다. 군 장성 또는 군 기득권 세력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로서 군사법원을 계속 쥐고 있는 것”이라 비판했다.

“군대가 이미 폐쇄병동인데 GP는 더 해… 도움 요청할 곳 전무”

임 소장은 ‘박근혜 정부의 병영문화혁신 실패’라고 단호하게 진단했다. “군대 자체가 이미 폐쇄병동 내지는 준 구금시설인데 GP는 더 한 곳”이라는 것이다. 그는 박 일병은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GP가 “나 같은 민간인이 들어가려면 한미연합사령부에 통보하고 북측에 왜 들어가는지 통보할 정도로 폐쇄된 공간”이라며 “군대는 그만둘 수 있는 곳도 아니고 옆은 지뢰밭이고 앞엔 북한이 있다. 그런 곳에 콘크리트 옹벽 짓고 먹고 자는 생활을 하는 것”이라 지적했다. GP는 간식 등의 음식도 수송기를 통해 조달하고 전화 등의 소통수단 접근도 어렵다.

박 일병이 근무한 초소엔 8명이 근무했다. 그 중 3인은 가해 선임 병사였고 4인은 자신의 후임병이었다. 센터는 수사과정 중 중대원들의 진술만 보더라도 ‘(해당 분대가)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박 일병의 최초 폭행 사실이 상부에 보고돼도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 그 방증이다. 박 일병이 속한 중대엔 고충처리 상담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병사가 한 명도 없었다. 박 일병은 신병 전입 후 병력을 관리하는 담당 행정보급관과 면담을 한 적도 없다.

박근혜 정부의 병영문화혁신안으로 병영생활전문상담관 등의 인력이 보강됐으나 상담 여부는 상부에 다 알려지는 것이 현실이다. 상부의 허가 절차를 거치거나 방문준비에만 수 일이 소요되는 등 병영생활전문상담관이 GP 초소 지역을 방문하는 것부터 쉽지 않다는 게 군인권센터의 지적이다. ”GP에서 상담을 한다? 엄두가 잘 나지 않을 것이다. 조용히 입 다물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임태훈 소장)

군사법원 폐지·군인권보호관 발로 찬 박근혜 정부, 책임 통감해야

이영문 아주대 교수가 박 일병에 대한 ‘심리부검’을 진행한 결과 고인의 자살과 가혹행위로 인한 스트레스 간엔 명확한 정신의학적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보고서는 박 일병이 “정서적으로 안정된 대가족 내에서 충분한 관심과 존중이 보장되던 환경에서 성장해 교우관계, 가족관계 모두에서 문제가 없었다”면서 “군 생활이 시작된 이후 생명 위협을 느낄 정도의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가 단기간에 고인에게 집중됐다”고 적고 있다. 박 일병이 쓴 글에 따르면 그는 자살에 대해서도 부정적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센터는 가해자들이 제대로 된 죗값을 받는 것만큼 제대로 된 병영문화 혁신이 이뤄지는 게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래야 박 일병과 같은 억울한 죽음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란 점에서다.

▲ 군인권센터는 2014년 4월 사망한 윤아무개 일병의 부대 내 상습 폭행 및 가혹행위에 관한 군 수사내용을 공개했다.ⓒ민중의소리

현재 가해자 4인은 모두 재판 절차를 밟고 있다. 제 상병, 김 상병, 임 일병은 위력행사가혹행위, 폭행, 모욕 등의 혐의로 부산고등법원에 이송됐다. 유 병장(현재 예비역)은 인천지법으로 이송돼 1심이 진행 중이다. 검찰은 폭행죄로 유 병장에게 징역 1년을 구형했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간사는 “가해자와 가해자 가족들은 1심이 끝날 때까지 제대로 된 사과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집행유예 선고 후 군이 주선한 자리에서도 ‘반성문을 써달라’는 유족의 요청을 거부했다”면서 “(민간 법원에서) 2심이 진행되니 비로소 합의를 시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군인권센터는 군사법원 폐지, 군인권보호관 도입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모두 민간의 군 감시 확대다. 군인권보호관은 독일에서 따온 모델로, 50여 명의 보호관이 군 진급 인사 비리, 병영부조리, 구타·가혹 행위·성희롱·성추행 등 사건 등에 대한 조사권을 가진 공무원이다. 이들은 새벽 3시에 불시 부대 방문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조사권을 가지고 있다. 모두 2014년 국방부 병영문화혁신안에서 폐기된 대안이다.

임 소장은 “박 일병의 죽음은 폐쇄적인 군의 고질적 병폐를 고치기 위한 근본적 처방을 모두 거부한 결과이자 박근혜 정부가 지난 4년간 추진해 온 병영문화혁신의 참담한 성적표”라면서 “공수표만 발해해온 국군 최고 통수권자(박근혜 대통령)에게 더 이상 나라를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우리 아들, 딸의 생명을 맡길 수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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