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원씨(가명·47)는 두 달 전 탈수 증세로 응급실에 실려갔다. 박씨는 다발성신경병증에 따른 통증으로 사흘 간 침대를 내려오지 못해 음식을 제대로 못 먹었다. 그는 통증이 심할 땐 “목구멍으로 밥을 넘기기”도 힘들다. 지난해부턴 치매 증세도 겹쳤다. 기억력이 떨어져 다른 사람과 대화를 이어가기도 쉽지 않고 자동차 운전도 그만 뒀다. 박씨는 “다 타이어 고무를 마셔서 합병증이 생긴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종종 박씨를 찾는 이웃인 정아무개씨(53)도 알츠하이머 환자다. 이씨의 증세는 박씨보다 심각해 거울을 보며 “밥 많이 먹어”라고 말을 걸고 10분 터울로 같은 질문을 너다섯번 반복해서 묻는다. 고려대 안산병원이 지난 2월 발급한 업무관련성 평가서는 “약 5년 간(1993~1998)에 걸쳐 유기용제(HV-250, 메틸시클로헥산이 주성분, 기록상 1998년 벤젠, 톨루엔 등이 일부 함유)를 집중 취급”했다며 “이른 연령에 인지기능장애가 발생한 점을 보아 업무와 상병 발생간의 관련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적고 있다.

불과 한 달여 전 숨을 거둔 동료도 있다. 설아무개씨는 6개월 전 직장 정기 건강검진에서 간암 진단을 받은 뒤 5개월 만에 사망했다. 박씨는 둘 다 “한국타이어에서 고무흄을 마셔서 병을 얻은 것”이라 말했다. 이들 모두 대전 한국타이어 생산공장에서 20여 년 간 일을 한 노동자다.

▲ ⓒGettyimagesbank

한국타이어 산업재해 문제가 8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타이어는 2007년 노동자 15명이 돌연사, 암 질환 등으로 1년 동안 사망해 ‘집단 산재 사망’ 논란이 일었던 곳으로 대대적인 역학조사 및 관리감독이 진행된 곳이다. 이후 상당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노동자들 사이에선 ‘여전히 안전하지 않은 공장’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김종훈 의원실(무소속)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8년간 암, 순환기질환 등으로 사망한 한국타이어 출신 노동자는 최소 36명이다. 특수건강진단에 따라 질병 유소견자 및 요관찰자로 기록된 이들만 추적한 값으로 사망자 및 질환자 전수 조사가 아니다. 사고사, 자살 등을 포함하면 사망자는 46명이다. 1996년부터 2007년까지 사망한 93명을 더하면 지난 19년 간 최소 139명이 사망했다. 악성 또는 양성 종양, 순환기질환, 손상중독외인만 꼽으면 119명이다.

이 중 악성·양성 종양 사망자는 39명이다. 설씨의 경우처럼 통계에 잡히지 않는 암 사망자를 고려하면 이는 최소값이다. 1800여 명 하청업체 직원도 제외된 결과다. 2008년 이후 산재 보험을 신청한 사망자 24명 중 4명만 산재 신청이 승인됐다.

2009년 기록을 보면 한국타이어 노동자 절반인 2239명이 질병 유소견자와 요관찰자 판정을 받았다. 유소견자는 2005년 514명에서 2009년 892명으로 대폭 증가하는 양상도 보였다.

▲ 2년 여간 다발성신경병증을 앓고 있는 박상원씨(가명)의 발. 박씨는 통증이 심할 땐 침대를 벗어나기가 힘들 정도며 발이 퉁퉁 붓거나 허벅지 전체에 피멍이 들 때가 많다고 말했다. 사진=장그래 대전충북지역 노조

“고무흄 전 공장 다 깔려… 얼마나 위험한진 몰라”

또다른 피해자 김상수씨(가명·37)는 항암치료를 위해 올해 국립암센터가 있는 일산으로 거처를 옮겼다. 2010년부터 타이어 완제품 검사를 해온 김씨는 근육 사이에 종양이 생기는 ‘고악성 활막 육종암’을 앓고 있다. 그는 몸에 이유없이 피멍이 들고 체력이 자주 고갈돼서 이상하게 여겼는데 2014년 암 진단을 받았다. 2015년 복직했으나 암이 재발해 올해 초 퇴직했다.

김씨는 “고무흄이 전 공장 안에 다 깔려있다고 보면 된다”면서 “흄에 어떤 물질이 있는지, 정확히 어떤 물질을 (우리가) 쓰는지, 얼마나 위험한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다른 피해자들도 ‘타이어공장은 그 자체로 발암물질’이라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무흄과 유기용제는 타이어공장 노동자들이 대표적으로 꼽는 ‘위험물질’이다.

2008년 역학조사보고서에 따르면 타이어 생산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은 66종, 화학제품은 120종이다. 발암물질로 지적된 바 있는 카본블랙과 유기용제 솔벤트(HV-250) 등이 포함된다. 타이어 원료를 고열로 혼합하는 공정에서 고무흄, 다핵방향족탄화수소(발암물질) 등 증기가 발생하고 부타디엔, 스티렌과 같은 잔유물도 남는다. 고무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내는 압출 공정도 고열로 이뤄져 흄과 가스, 증기가 발생한다. 타이어 재료를 붙일 때는 유기용제와 고무를 혼합해 만든 ‘시멘트’를 뿌린다.

이후 타이어 틀을 만들기 위해 고열에 찌는 일련의 공정에서 흄, 가스, 증기가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솔벤트, 시멘트 등 유기용제도 지속적으로 사용된다. 완제품을 검사하는 작업까지 유기용제는 사용된다.

해당 역학조사 보고서는 고무흄, 유기용제 등의 위험성에 대해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회사는 2003년부터 무벤젠화를 추진했다고 밝히며 유해물질이 노출 기준을 초과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현장 직원들의 생각은 다르다. 박씨는 “공장 내 역한 냄새를 맡으면 아무리 안전하다고 말해도 믿을 수 없을 것”이라 말했다. 김씨는 솔벤트 냄새는 ‘헛구역질’이 날 정도로 독하며 이 때문에 퇴사하는 동료도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해성을 ‘냄새’로 따질 수 없다 치더라도, 이들은 이 용제가 얼마나 안전한 물질인지 교육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유기용제에 ‘벤젠이 없다’는 주장에 박씨는 “고무 공정에 벤젠을 안 쓸 수가 있냐”며 불신을 표하기도 했다.

2008년 역학조사 보고서는 HV-250의 주성분은 메틸시클로헥산이 60%이고 벤젠, 톨루엔, 크실렌 등은 비중이 0.1% 이하로, 검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1998년 한국타이어 중앙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당시 HV-250엔 벤젠, 톨루엔, 크실렌이 약 5% 포함돼있었고 벤젠은 0.5% 함유돼있었다. 한국타이어가 오염물질 관리 지자체인 대전 대덕구청에 신고한 대기·폐수 오염물질목록엔 벤젠이 포함돼 있다. 대덕구청 관계자는 기준치 이상으로 검출된 적이 없다고 밝혔다. 피해자들은 회사 측이 공개하지 않는 이상 은폐될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 한국타이어 공장 내부 모습. 뿌연 고무 흄이 천장을 메우고 있다. 사진=장그래 대전충북지역노조

정체모를 고열 가스 가득한 ‘밀폐 공간’

“비오고 눈오는 날은 천장이 보이지도 않는다.” 박씨는 “공장이 알 수 없는 물질로 꽉 들어차”있지만 환기는 안중에도 없다고 지적했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할 때도 있지만 충분치 않다. 김씨는 “타이어는 온도가 조금만 떨어져도 불량품이 많이 생겨 공정 상 환기를 잘 시킬 수 없다”면서 “내부는 항상 37도를 웃도는 고열 상태”라고 말했다.

2008년 이후 환경이 개선되지 않았냐는 말에 박씨는 “그럼 환기가 기가막히게 잘 돼야지”라며 체감 상 나아진 것은 없다고 지적했다. 박씨처럼 20년 동안 한국타이어에 근무하며 뇌경색 및 뇌병변을 얻은 권선하씨(가명·48)도 동의했다.

권씨는 이 조치를 “전시용”, “무용지물”이라고 비판했다. 시설개선은 분명히 있었으나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붕에 설치된 집진기의 경우 권씨는 “제대로 가동되는 걸 본 적이 별로 없다. 가동하는데 상당한 비용이 든다는 얘길 들었다”면서 “국소배치장치도 잘 활용되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유기용제 보관실에 방독면이 비치됐으나 200~300명이 3개를 돌려가며 쓰고 있다.

내부 직원들은 솔벤트를 몸에 문지르기도 한다. 몸에 묻은 고무를 떼내려면 그 방법밖에 없어 여전히 과거 관행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권씨는 안전교육도 조회시간에 형식적으로 1~3분 진행되는 것이 거의 전부라고 지적했다.

지급되는 보호구는 일회용 마스크, 장갑, 작업복 및 안전화다. “유기용제를 달고 사는 작업자”들에게 마스크와 장갑은 중요하지만 이 또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김씨는 작업을 효율적으로 잘 해야 하는 상황과 고열인 환경에서 마스크를 착용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타이어에 근무하는 박씨의 아내는 “면장갑은 조금만 쓰면 금세 유기용제에 젖는다”고 말했다.

▲ 지난 2008년 서울 역삼동 한국타이어 본사 앞에서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이 진행됐다. ⓒ민중의소리

“뭐가 위험하고 아닌지 조사부터 해달라”

이들이 답답한 지점은 공장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체감’할 뿐이지 ‘증명’해내지 못하는 점이다. 산재가 승인된 사례 대부분은 2003년 이전 ‘벤젠, 톨루엔, 자이렌’ 등의 유해화학물질 사용되던 시기에 근무가 확인된 경우다.

심장질환, 암 등의 발병을 ‘우연’이나 ‘개인적 요인’으로 돌리는 논리도 강하다. 김씨는 “담배핀다고 다 폐암에 걸리냐. 개인차를 굉장히 일반화시키는 것”이라며 “어느 정도 개연성이 있는 산재도 다 막는 논리로 쓰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무엇이 위험하고 위험하지 않은지’ 기준조차 없는 상황에서 김씨는 지난 4월 근로복지공단에 ‘유해물질에 의한 질병 업무관련성 산재 신청’을 청구했다. 김씨는 박씨, 이씨, 그리고 한국타이어 산재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장그래 대전충북지역 노동조합’ 위원장인 박응용씨와 함께 4인이 집단으로 신청했다. 근로복지공단은 4월18일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조사를 의뢰했고 김씨는 6월 경 담당자로부터 역학조사를 시작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아프고 나서 보니 산재로 인정돼야 할 사람이 못 받는 경우가 많더라. 여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같이 산재 신청을 했다.” 김씨는 역학조사에 따라 조금이라도 더 진상이 규명돼 산재 피해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진상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실정에서 현장 노동자들 사이엔 근거없는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공단이 파악한 사망자 수는 그 자체로 불신의 대상이다. 박씨는 “46명이라니 그보다 몇배는 더 있을 것”이라고 말했고 김씨도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병에 걸렸을 거라 본다”고 말했다. ‘불임’에 대한 우려도 깊다. 1999년 벤젠, 톨루엔 등이 함유된 유기용제 중독을 인정 받은 진성식씨(가명·69)는 불임 증상도 산재로 인정받은 바 있다. 4년 전까지 한국타이어 산재추정 피해자들을 도운 진씨는 “불임 고민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타이어 홍보팀은 역학조사 당시 법적 노출기준을 초과하는 유기용제는 없었으며 당사는 무벤젠 솔벤트를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타이어측은 2007년 노동부 특별감독 이후 “환경오염물질의 배출 및 처리 현황을 실시간 확인하고 국제 기준에 맞춰 운영관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면서 “이런 노력의 결과, 국내 및 국제 안전보건경영시스템(KOSHA/OHSAS 18001)인증, 2010년 PSM(공정안전관리제도, Process Safety Management)평가에서 S등급, 2014년 타이어 업계 최초의 녹색기업 인증(금산공장) 등을 취득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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