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박근혜 대통령을 최순실씨의 공범으로 규정하고 피의자로 정식 입건했다. 현직 대통령이 피의자로 규정된 것은 초유의 일이며, 피의자 신분임에도 물러나지 않는 것 역시 초유의 일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21일 의원총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추진을 공식 결정했다. 바야흐로 탄핵 정국이다. 재적의원 3분의 2(200명) 이상이면 탄핵안 통과가 가능하다. 야3당과 야권 성향 무소속 의원을 합한 171명에 새누리당 이탈표 29명이 있으면 된다.

주요 신문은 지면을 통해 지체 없는 탄핵을 요구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22일자 사설에서 “피의자 신세가 된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모든 권위를 상실했다”며 여야가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을 끌어낼 총리추천과 탄핵을 지체 없이 추진하라고 요구했다. 중앙일보는 “탄핵은 박 대통령이 시간을 벌고 지지층을 결집시키기 위해 자청한 꼼수란 지적도 있지만 대통령의 범죄행위가 명백히 드러난 이상 국회의 탄핵은 당연한 의무”라고 지적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11월4일 대국민 사과에 나선 모습. ⓒ연합뉴스
동아일보는 탄핵안을 신속히 발의하라고 요구했다. 동아일보는 같은 날 사설에서 “제1야당이 탄핵 발의를 질질 끌수록 국가 리더십의 공백 상태가 장기화될 뿐”이라고 강조하며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한 4·19 때처럼 혁명적 상황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면 박 대통령이 비정상적으로 농단한 국정을 헌법 절차에 따라 복원하는 일에 머뭇거려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촛불집회까지 지켜본 뒤 탄핵 추진에 나서겠다면 혼란을 부추기고 이용하려 한다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역시 “박 대통령 탄핵 절차는 헌법과 법률에 따라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해야한다”고 주장하며 “국회는 아무리 늦어도 12월 전반기에는 본회의에서 탄핵소추안을 표결해 결론을 내려야한다”며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했다. 헌법재판소를 향해서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결정에 64일이 걸렸던 점을 언급하며 “최대한 심리를 집중해 국정 공백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선 역시 동아와 마찬가지로 “탄핵 절차마저 지지부진하게 만들면 국민의 염증은 야당으로도 향할 것”이라며 야당에게 날을 세웠다.

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날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거리에서 퇴진만 외치는 게 오히려 국정혼란을 초래한다는 게 보수신문의 프레임이다. 세계일보는 “결백을 주장하는 박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날 리 없다”며 “야당은 황교안 총리로는 안 된다고 주장할 게 아니라 새 총리를 추천하든지 아니면 김병준 카드라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세계일보는 “대통령의 버티기가 사태를 악화시키는 게 사실이지만 야당의 헛발질도 인내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며 “하야송만 부르다가 새 총리를 내세울 기회를 다시 놓쳐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정말 야당의 ‘정세 판단’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야당에도 ‘사정’이 있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야당을 하나로 묶어보기가 어렵다. 지금 국면은 대권경쟁과 긴밀하게 맞물려 있어서 큰 틀에서 (야권주자들이) 방향은 맞을 수 있으나 세부적 합의를 만들어내기 어려운 정치 환경”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야 3당만으론 탄핵 의결 정족수가 부족해 탄핵 부결이란 역풍을 피하기 위해선 비박계의 강한 호응이 필요해 이를 기다리는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결과의 불확실성과 소요시간도 탄핵에 대한 부담 요소다.

▲ 11월12일 민중총궐기 모습. ⓒ최창호 작가
돌이켜보면 보수신문의 ‘야당 탓’은 지금껏 사회 이슈를 주도해온 고전적 클리세다. 보수신문은 주권자들의 분노가 박근혜정부의 ‘내부자들’이었던 자신들에게 향하지 않을까 두려워 거리의 함성이 무섭다. 최근 박근혜 하야 집회 현장을 생중계하며 평화시위를 ‘극찬’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탄핵정국에서 탄핵이라는 합법적 절차를 강조하는 것도 이런 배경이 있다. 탄핵안을 빨리 통과시켜 거리로 나온 촛불과 함성을 잠재우고 싶은 것이 제도언론의 태생적 욕망일 수 있다. 이 욕망에 따라 야당을 다그치는 것이다. 

물론 탄핵 발의 자체로 대통령에게 압박을 주며 사퇴를 이끌어내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한국일보는 “청와대가 대통령의 명백한 범죄 혐의에도 헌법재판소까지 가보자고 나선 마당에 더 이상 정파마다 다른 이해타산에 빠질 계제가 아님이 분명해졌다”며 “검찰조사 결과로 법적 요건이 갖춰진 만큼 탄핵안 발의시기를 재는 것은 무의미하다”며 즉각적인 절차돌입을 강조했다. 그러나 탄핵절차 돌입 이후 향후 몇 개월간 벌어질 갖가지 변수는 다들 ‘가지 않은 길’이어서 어두컴컴하다.

▲ 11월12일 민중총궐기 당시 시민이 촛불을 들고 있는 모습. ⓒ최창호 작가
진보성향 신문은 지속적으로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한겨레는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탄핵 추진 및 국정 공백 최소화를 위한 과도내각 구성방안 논의를 제안한 야권 대선주자들의 요청이 적절하다며 새누리당의 협력을 당부했다. 22일에는 “검찰이 박 대통령에 대한 강제수사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여야는 총리 선임 논의와 (박근혜가 배제된) 정부-국회 협의 창구를 갖추는 등 실효성 있는 조치를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경향신문은 19일 사설에서 “최소한의 명예를 지키며 퇴진할 기회는 지금이 마지막이다”라며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으며 22일 사설에선 “국무회의도 주재할 엄두를 못 내는 그 자리의 쓸모는 오직 하나, 당분간 수사를 피하는 것”이라며 대통령을 비판했다. 현재 박 대통령이 “제 발로 나가지 않을 테니, 나를 끌어내릴 수 있으면 해보라며 생떼를 부리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생떼’가 멈추려면 한줌의 ‘5% 지지율’을 붕괴시킬 주권자들의 힘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이는 국정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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