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간호장교가 박근혜 대통령의 혈액을 뽑아 차움병원 김상만 녹십자아이메드 원장에 전달하고 최순실의 이름으로 혈액을 검사한 것이 드러났다.

그런데 청와대는 혈액 대리 검사에 대한 이렇다할 해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의 공식 해명이 없는 가운데 대통령 혈액을 외부로 유출해 대리 검사를 해야만 했던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만 무성하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혈액이 외부로 반출된 심각한 사안이지만 청와대는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심지어 대통령의 개인 의료 기록이라며 혈액 대리 검사 문제를 흐리는 주장도 나온다. 

16일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13년 9월 2일 김 원장은 최순실의 진료 차트에 ‘안가’라고 적고 대통령의 혈액을 검사한 것으로 나왔다. 김 원장은 “간호장교가 채취해온 대통령 혈액을 최순실씨 이름으로 검사했다”고 진술했다. 혈액 대리 검사를 인정한 것이다. 그럼에도 보건복지부 조사는 한계가 따른다. 김 원장의 진술에만 의존해 사실관계를 파악했을 뿐이지, 구체적으로 어떤 경로를 통해 어떤 이유로 대통령의 혈액을 뽑아 외부에서 검사했는지 여전히 설명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공식해명은 “검찰 수사를 받으면 나올 것”이라는 무성의한 내용뿐이다. 조사를 담당했던 보건복지부는 더욱 이상한 해명을 내놨다. 복지부는 “대통령의 건강이 기밀 사안이라 그런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대통령 주치의가 배석해 진료하는 시스템을 건너뛰고 대통령의 혈액을 외부로 반출해 검사를 한 것이 ‘대통령의 건강 기밀 사안’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과 운영, 그리고 기업 강제 출연금 모집 등은 검찰 수사를 통해 범죄로 밝혀지고 있다. 또 다른 수사 대상인 대통령 연설문 외부 유출도 정호성 전 비서관을 통한 경로로 이뤄졌다는 게 밝혀졌다. 그런데 대통령의 대리 혈액 검사는 어떤 이유로 이뤄졌는지 명확히 드러난 게 없다.

이와 관련해 SBS는 김 원장이 효소치료를 개발한 의사라며 효소 치료를 하려면 혈액검사가 필요하다고 보도했다. 몸 속에 관여하는 효소나 미네랄 200가지 가운데 부족한 성분을 찾아내기 위해서 대통령의 혈액을 김 원장이 외부에서 검사했다는 것이다. SBS는 “국군 서울지구병원이나 서울대 병원 등 대통령의 공식 병원에서는 혈액 효소검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차움의원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SBS의 보도 역시 김 원장의 '고유한' 치료법을 연결고리로 한 추측일 뿐이다. 

채널A도 “박 대통령, 대리 피 검사 비밀 풀렸다”라는 기사에서 김 원장이 평소 강조해 온 치료가 부신 호르몬 조절을 통한 만성피로 치료였다면서 신장 근처에서 만들어지는 부신 호르몬 농도를 측정하고 호르몬 주사의 적정 농도를 맞추기 위해 혈액검사를 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채널A도 “부신 호르몬을 측정할 장비가 청와대 의무실에 구비되지 않았거나 박 대통령의 비밀주의 때문에 혈액을 반출해 차움 의원에서 검사했을 것이란 추정”이라고 전했다. 여전히 혈액 대리 검사의 이유가 불분명한 것이다. 

▲ 11월10일 박근혜 대통령과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MOU서명식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혈액은 한 사람의 건강정보를 담고 있다. 더구나 대통령의 혈액이라면 통수권자의 건강 상태가 외부로 유출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 가정이긴 하지만 간호장교가 김 원장에게 건넨 대통령의 혈액이 잘못 전달돼 다른 사람의 혈액이 건네졌다면 잘못된 처방을 내릴 수도 있다. 모두 청와대의 공식 의료 시스템을 건너뛰고 벌어진 일이다. 

대통령 혈액 검사가 외부에서 이뤄졌고, 최순실의 진료 차트에 기록됐다는 것은 검사 결과를 공개할 수 없는 사정으로 인해 이중 장치를 걸어놓은 것으로 해석된다. 단순히 김 원장의 치료법에 적합한 혈액검사가 아닐 수 있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대통령 주치의가 공식 혈액검사를 했을 경우 드러나지 않아야 할 정보가 확인되는 상황을 막기 위한 조치 아니냐는 것이다. 

의사들은 혈액 대리 검사라는 게 일반적이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A 의사는 “일부러 외부에서 피를 뽑아온 것을 검사하진 않는다. 일반 사람들이라면 이렇게 할 이유가 전혀 없다”며 “가족관계이거나 완전히 신뢰를 하는 사람이라면 할 수는 있다. 예를 들어 깊은 관계에 있는 사람이 아버지의 피를 뽑아 줄테니 검사해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상황이라는 게 있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A 의사는 “무슨 이유로 이렇게까지 혈액을 검사해야 하는지 궁금하다. 두가지 가능성이 있다. 무언가를 숨기기 위해 그랬을 수 있다. 다른 한 가지는 차움병원이 영양치료나 비타민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곳인데 심각한 질병을 발견하기 보다는 건강과 불건강 사이 변변치 못한 병이지만 본인이 불편한 부분에 대해 검사를 했을 수 있다. 호르몬 등 문제가 심각하면 외부로 피를 유출해 검사를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다.

A 의사는 대통령이 처방받았다는 태반주사에 대해서도 “맞는 사람에 따라 효과가 많이 볼 수 있다. 갱년기 증상이나 피곤한 것에 대해 효과가 있을 수 있다. 강남의 부유층들이 하는 것을 비선으로 맞은 게 아닐까 싶은데, 정상적으로 서울대 같은 병원에서 주치의들은 정통 의학에서 벗어난 것이기 때문에 싫어할 수도 있으니까 비선을 통해 비공개적으로 맞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청와대에서 할 만한 치료는 결코 아니다”고 말했다.

B 의사는 “남의 피를 저렇게 뽑아서 다른 이름으로 검사한다는 건 처음 들어본다. 예를 들면 음주 채혈을 할 때 저렇게 하면 어떻게 되느냐, 상식적으로 맞지 않다”고 말했다. 혈액 대리 검사는 어떤 이유에서든지 비정상적이라는 얘기다. 

청와대가 제약업체 녹십자로부터 2년 동안 태반주사, 감초주사 등 비정상적인 양의 주사제 2000만원어치를 사들인 것도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청와대는 지난 2014년 3월부터 올해 8월까지 31차례 걸쳐 녹식자 의약품을 구입한 것으로 나왔다. 녹십자의료재단은 녹십자아이메드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대리처방과 혈액 대리 검사를 한 김 원장은 현재 해당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자료에 따르면 청와대는 2014년 11월부터 2016년 6월까지 태반주사로 불리는 라이넥주와 감초주사로 불리는 히시파겐씨주 등을 사들였다. 태반주사는 지난해 4월과 11월, 12월 3차례에 걸쳐서 50개씩, 감초주사는 지난해 4월과 올해 6월, 각각 50개씩 모두 100개를 구매한 것으로 나왔다.

B 의사는 “만약 이 같은 양을 한 사람이 모두 맞았다면 주사제에 섞는 수액만으로도 부종 등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양”이라고 지적했다.

A 의사는 “구매할 수는 있지만 청와대에서 이런 걸 구매한 건 의아하다”면서 “보도된 내용으로 보면 양이 아주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이 사람 저 사람 놨을 때의 얘기다. 청와대 해명대로 직원이 나눠맞을 수 있는데 의사 처방 없이는 주사를 놓지 못한다”고 말했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청와대가 구매한 태반주사 등 주사제는 의학적 근거가 없는 의약품"이라며 "근거가 없는 치료를 받았다는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한 우 위원장은 "청와대에선 각 분야의 주치의가 있는데 주치의 공동결정으로 구매한 것인지도 따져봐야 한다. 만약 이런 결정 과정없이 구매했다면 대통령 측근이 근거도 없는 불로장생의 치료를 위해 국민 세금을 썼다는 말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김모 원장이 청와대로 주사제를 가져가 대통령에 놨다는 내용에 대해 전직 주치의들은 김모 원장의 존재와 함께 관련 처방을 알지 못한다고 증언하면서 이번 태반주사 등 대량 구매도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우 위원장은 "구매한 주사를 통한 항노화 치료 가능성이 있는데 양을 보면 거의 중독 수준"이라며 "혈액 대리 검사도 태반주사를 저렇게 많이 맞았다고 하면 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혈액 검사를 받기엔 무리가 따르고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받았을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우 위원장은 "이런 식으로 근거없는 의약품들이 구입되고 주치의 모르게 투여한 게 맞다면 심각한 문제"라면서 "혈액 대리 검사 역시 대통령의 건강정보가 모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외부 반출시 혹여 적국에 넘어갔다면 이를 약점을 잡고 협박할 수 있어 국가 기밀 누설에 해당될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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