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흥미유발형 자막이 때론 시청자들의 상상력을 방해하고 출연진에 대해 인신공격을 하는 등 프로그램 시청에 방해가 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18일 SBS와 국립국어원이 주최한 ‘존중과 배려의 방송언어’ 세미나에서 이현경 SBS 아나운서는 ‘시청자의 프로그램 해석에 있어 자막이 미치는 영향’이란 주제로 발표에 나섰다. 

이 아나운서는 MBC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 스타’ 489회(지난 8월3일자) 한 회분을 중심으로 분석하며 해당 프로그램에서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출연진들을 비하하는 표현이 자주 등장했다고 밝혔다. 

에컨대 출연자를 소개하던 중 솔비의 성형사실을 수차례 언급하는 윤종신의 멘트와 함께 ‘성형 후유증? 웃고 있는데 미소를 못 짓는 겁니까?’라는 자막과 폭탄이 터지는 CG를 연출했다. 이 아나운서는 “출연자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고정하고 있다”, “폭탄 CG를 통해 출연자가 큰 충격을 받은 것처럼 감정 상태를 과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지난 8월3일자 MBC '라디오스타' 화면 갈무리. 솔비의 성형사실을 희화화하는 모습

MC들은 솔비가 행위예술을 선보였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예시로 사진을 제시하려다 경리의 졸업사진을 슬쩍 공개했다. 이 아나운서는 “사람의 얼굴이 담긴 출연자의 평범한 졸업사진에 모자이크를 처리했을 뿐더러 비하의 의도로 ‘행위 예술’이라 표현하며 웃음의 소재로 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 지난 8월3일자 MBC '라디오스타' 화면 갈무리. 솔비의 행위예술에 대해 비하하며 경리의 졸업사진을 놓고 외모에 대해 평가하기도 했다.

이상민을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이상민이 개인적인 이유로 MBC 예능 프로그램 ‘나혼자 산다’에 출연하지 못한다고 하자 MC들이 이를 추궁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를 하이에나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이 아나운서는 “사람을 동물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으며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하이에나로 표현했다”고 지적했다.

▲ 지난 8월3일자 MBC '라디오스타' 화면 갈무리. 제작진이 출연진들을 동물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제작진이 개입해 시청자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장면도 있었다. 김구라가 계속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대한 대화에 끼어들자 제작진은 타 방송에서 이상민이 한숨을 쉰 장면을 짜깁기했다. 이 아나운서는 “한숨을 내쉬는 표현으로 김구라의 발언을 무시하고 있으며 정작 이상민은 이 상황에서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음에도 마치 그가 한숨을 내쉰 것처럼 연출했다”고 지적했다.

▲ 이상민이 한숨을 쉬는 타방송의 장면을 짜깁기한 장면. 실제 이상민은 한숨을 내쉬지 않았다.

이 아나운서는 해당 회차에서 살펴본 것을 토대로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막이 갖는 문제를 네 가지로 분류했다. 

첫째 인물의 캐릭터화. 뇌순녀·공주병(솔비), 빚쟁이(이상민) 등은 제작자가 의도를 가지고 캐릭터를 만든 것이다. 이같은 표현은 일반 대인관계에서도 들으면 기분이 나쁠 가능성이 높은 인격모욕이나 인권침해 사례에 해당한다. 출연진인 이상민도 기분이 나쁠 수 있고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상처받을 수 있다는 게 이 아나운서의 지적이다.

▲ 채권자들에게 빚을 져 독촉받는 상황을 희화화한 모습

둘째 심리묘사 및 장면 내 등장인물의 상황 규정이다. 제작진이 자막을 통해 직접 출연진의 심리를 묘사하는 것을 말한다. 시청자는 해당 자막이 편집된 것이며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시청 당시에는 만화를 보는 것처럼 자막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제작자가 느낀 점을 제공하면 재미를 더할 수 있지만 시청자들의 상상력을 저해할 수 있다.

셋째. 출연자의 대사와 행동을 하나하나 자막으로 설명하고 정리하며 수동적인 시청을 유도하게 돼 획일적으로 시청하게 만든다. 넷째. 시선 집중용 그림과 기호 사용으로 시청자들이 사전에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를 내지만 자막이 2개 이상 등장해 화면의 반 이상을 차지하기도 한다. 이런 산만한 시청행위가 반복될 경우 시청자들이 자막이 없을 경우 프로그램 내용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할지 모른다는 지적이다.

▲ 솔비가 자신을 보기위해 고등학교 시절 오토바이가 학교앞에 즐비했다고 얘기하자 MC들이 중국집 배달원들 아니냐고 희화화하는 모습. CG로 화면을 뒤덮고 있고, 중국집 배달원을 비하하며 웃음의 소재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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