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중계방송에는 대본이 없다. 작가 등 다수에게 문제가 될 만한 발언을 검토 받을 기회가 없다. 경기 분위기에 맞게 말을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때문에 불필요한 발언이 전파를 타는 경우가 많다. 그간 ‘저희나라’ 등 비문법적 표현 등이 주로 지적을 받았지만 올해 리우올림픽에서는 성차별적 발언들이 표적이 됐다.

18일 SBS와 국립국어원은 SBS 목동 방송센터에서 ‘존중과 배려의 방송언어’라는 주제로 공동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날 손범규 SBS 아나운서는 ‘스포츠 중계방송의 성차별적 언어 사용 분석’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2016 리우 올림픽 중계방송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지적했다. 

남성 중심 표현

아나운서 “자, 이제 총알 탄 여성들을 만나보실까요?” (8월17일 여자 육상 200m 준결승)

해당 방송은 여자 종목에 대한 중계다. 그럼에도 ‘총알 탄 여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남성 중심의 표현을 사용한 예다. 타 방송사 중계에서도 비슷한 표현이 있다.

아나운서 “여성 선수가 철로 된 장비를 다루는 걸 보니 인상적이네요. 무슨 미인대회에 출전한 것처럼요. 계속해서 미소를 띠고 있는 최인정 선수입니다.” (펜싱중계)

남성성을 강조하는 표현들도 많이 등장했다.

해설자 “올레니크 선수는 마치 외모가 유도 선수 같지 않아요. 마치 미술하는 예술가같이 생겼습니다.”

아나운서 “아주 순하게 생긴 마테오 선수” (8월7일 남자유도 66kg 16강)

해설자 “김정환 선수 보면, 정말 멋지지 않습니까. 겉으로 봤을 때 정말 남자답고, 상남자예요.” (8월11일, 남자펜싱 사브르 개인 준결승)

해설자 “사실 남자 선수들은 스매시 공격을 잘 안하거든요?” (8월15일 남자 펜싱 사브르 개인 준결승)

해설자 “남자 선수도 아니고 여자 선수가 이렇게 한다는 것은 대단합니다.” (역도 중계)

손 아나운서는 “이런 표현들은 남성성을 강조하는 것이 경기력을 강하게 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남성의 상대적 높임은 자주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 지난 7일 오후(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삼보드로모 경기장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여자양궁 단체전 러시아와 결승에서 장혜진이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 연합뉴스

여성성 강조 표현

아나운서 “보기에는 야들야들해 보이는데 상당히 억세게 경기를 치르는 선수입니다.”

해설자 “그렇습니다. 아주 근력도 좋고요.” (8월6일 여자 유도)

[관련기사 : “‘야들야들’한데 경기는 억세게” 성차별 해설 논란]

아나운서 “성지현 선수의 가방에 인형이 걸려있는 것을 보니까 천상 소녀네요. 성지현 선수도.” (8월17일 여자 배드민턴)

아나운서 “러시아 안 뚝 떨어집니다. 기무라 사오리 득점, 기무라 사오리도 예쁜 외모로 인기가 많습니다만, 저 아주 과거에 야마우치라는 일본 선수 굉장히 미모 뛰어났던 선수 기억나거든요.”

해설자 “네. 일본의 공격수, 야마우치 선수인데요. 기무라 사오리 선수와 같이 배구도 잘하고 얼굴도 예뻤죠.” (8월13일 여자 배구)

손 아나운서는 “남성성이나 여성성을 강조하고 비하하는 표현과는 다르게 한쪽의 역할을 강조하는 표현들이 있다”며 “여성의 경우에는 어머니나 아내로서의 역할을 강조하는 표현도 있다”고 지적했다.

▲ 아카이브에는 KBS가 지난 6일 여자배구 한일전 경기 중계에서 한 여자 배구선수에 대해 중계진이 언급하자 “사귀었냐”며 경기 내용과 무관한 선수의 사생활과 연애로 화제를 이어갔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연합뉴스

성역할 강조

아나운서 “플리에르 선수가 엄마가 되면서 코트를 잠시 떠났는데 세계 배구 팬들은 그 멋진 실력과 외모 때문에 엄마 선수도 기다릴 수 있거든요.” (8월7일 여자 배구)

아나운서 “서른여섯 엄마 검객의 네 번째 올림픽 도전.”

아나운서 “땅콩 검사라는 그런 별명도 있습니다만, 엄마 검객으로 이제 별명은” (8월10일 여자 펜싱)

아나운서 “정말 대한민국 어머니의 힘이라고 말하기도 했었는데 정말 ‘어머니의 힘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8월15일 여자 역도)

아나운서 “세터는 약간 엄마 같아야 하고 부공격수는 장남이나 장녀” (8월17일 여자 배구)

손 아나운서는 “스포츠는 남성이 주가 되고 여성이 보저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며 “여성 선수들에 대해 얼굴을 평가하거나 몸매를 강조하고, ‘미녀 스타’, ‘엄마 선수’ 같은 표현들을 사용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현상은 스포츠 중계 뿐 아니라 뉴스에서도 마찬가지다.

“리우 달굴 7인의 미녀 스타, 덤으로 빼어난 외모까지 겸비해 큰 인기를 얻는, 아담한 체구에 최강 동안이라는 애칭답게 귀여운 외모 자랑…” (7월28일 YTN)

“남편만 보면 힘이 솟는 엄마 역사 윤진희” (8월9일 동아일보)

손 아나운서는 “지난 런던올림픽까지는 ‘흥분중계’ 등의 지적을 많이 받았는데 이번에는 성차별적 중계에 대해 지적을 받았다”며 “스포츠 중계방송이 최근 한국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성평등에 관한 여러 문제와 관련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수영 세계 신기록을 12번 경신한 ‘케이티 러데키’ 선수는 자신의 이름보다 ‘여자 펠프스’로 불리며, 올림픽 100m 3연패에 도전하는 자메이카 ‘셀리 앤프레이저 프라이스’ 선수는 ‘여자 볼트’로 불린다”며 “체육계의 남성중심문화가 해설자의 평상시 언어습관에도 반영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IOC 올림픽 헌장에는 “올림픽에 참가하는 모든 선수들은 국가, 인종, 종교, 성별 등 어떠한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 올림픽의 최우선 사항은 성평등이다”라고 돼있다.

그는 “이런 것들을 고쳐나가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는 지적할 게 없는 중계방송을 만들면 좋겠다”며 “중계 내용에 대한 객관적인 연구와 분석이 각 방송사별로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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