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함께 파헤치던 언론들의 논조가 갈라졌다. 탄핵이냐, 거국내각이냐, 조기대선이냐, 하야냐를 두고 9개 종합일간지가 각각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봤다.

한겨레와 경향, 세계일보는 ‘퇴진’

경향신문(10월28일)과 한겨레(11월3일자)는 사설에서 공식적으로 대통령 퇴진을 주장했다.

▲ 14일자 한겨레 사설

경향신문은 16일 “야 3당은 대통령 퇴진과 그 이후 계획을 세우라”는 사설에서 “청와대는 부인하고 있지만, 박 대통령의 퇴진은 가부 차원을 넘어 이제 시간의 문제가 됐다”며 퇴진을 기정사실화했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날 경우 60일 내 대선을 실시하게 된다. 황교안 총리가 권한대행을 맡고, 차기 대선주자들은 촉박하게 선거를 준비하게 된다.

15일 야3당은 대통령 퇴진을 공식화했다. 12일 촛불집회 분위기를 받아들인 결과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대표는 “야3당과 시민사회가 비상시국기구를 구성하겠다”고 말했고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지역까지 함께하는 비상기구를 통한 전 국민적 확산”을 언급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에서 대통령 퇴진을 주장하는 이유는 선명하다. 14일자 한겨레 사설 “‘박근혜 대통령 하야’는 국민의 명령이다”를 통해 “박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이끌 자격과 신뢰를 상실했다는 일치된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세월호 참사, 역사교과서 국정화, 공안정국 조성, 백남기 농민사망사건 등 민주주의 원리에 반했던 정권의 비선까지 드러났기 때문이다.

세계일보도 대통령 퇴진을 주장했다. 이 신문은 16일자 사설에서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한다”는 취임선서를 언급하며 “지금 박 대통령이 취임선서를 제대로 지키지 못해 표류 중인데 책임을 지는 일은 대통령 스스로 물러나는 방법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세계일보는 2년 전 정윤회 문건을 입수해 보도했지만 이 사태를 예견하고 방지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쳤다. 세계일보는 최순실 단독인터뷰, 정윤회 문건 중 최순실 부분을 추가 공개하면서 뒤늦게 자존심을 회복하는 모습이다.

조선·중앙, ‘거국중립내각·대통령 2선 후퇴’

15일 이전까지 문재인 전 대표는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주장했다. JTBC가 최순실 태블릿PC를 보도한 직후인 지난달 26일부터 조선일보의 입장과 유사하다.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박 대통령은 이 시간 이후로 국내 정치에서 완전히 손 떼겠다고 선언하고 여당을 탈당해야 한다”며 “내년 대선에 관심을 버리고 중립적 관리 역할로 남아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16일 사설에서 “모두가 탄핵을 너무 쉽게 입에 올리고 있다”며 탄핵에 선을 그으며 “파국적 상황을 피하려면 대통령 2선 후퇴와 거국총리에 의한 개헌, 조기 대선 등 가능한 수습책의 문을 닫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 16일자 중앙일보 사설

중앙일보도 같은날 “문재인·안철수, 새 총리 합의 추천부터 하라”는 사설을 통해 “국정에서 손을 떼고 2선으로 물러나라는 국민적 요구에 박 대통령이 버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100만 명의 국민이 모여 2선 후퇴를 요구한 것처럼 해석하며 거국중립내각을 주장하고 있다.

거국중립내각은 여야가 합의해 추천한 인물로 총리를 임명하고 해당 총리가 가지고 있는 장관 임명제청권을 실제로 행사하는 것이다. 대통령은 2선으로 후퇴해 하야에 비해선 국정공백이 적다.

동아와 한국은 ‘탄핵’

최근 탄핵을 주장한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등 비박계는 탄핵주장 이전까지 조선일보와 비슷한 입장이었다. 탄핵은 200명 이상의 의원이 찬성해 탄핵소추안이 의결되면 대통령 권한은 정지되고 헌법재판소가 심판하는 절차다. 탄핵심판은 최대 180일이 소요돼 탄핵될 경우 차기 대선은 내년 중순경 진행된다. 문 전 대표는 탄핵 주장에 대해서는 거부했다.

▲ 동아일보 14일자 1면

동아일보는 탄핵을 주장했다. 14일 1면 사설에서 “민중 권기로 대통령을 하야시키는 것은 헌정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며 헌법에 따른 퇴진절차인 탄핵을 주장했다. “당초 야당이 제안했던 ‘거국중립내각’이나 대통령의 2선 후퇴는 이론적으론 가능할지 모르나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의 권한과 충돌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일보도 탄핵을 언급했다. 16일 한국일보는 사설에서 “박 대통령이 질서있는 퇴진을 거부하면 탄핵절차 돌입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그러나 탄핵에 대해 “결정까지 수개월이 걸려 국정 공백과 혼란의 장기화가 불가피하다는 게 문제”라며 “이런 정치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 제기된 수습 방안이 질서 있는 퇴진인 셈”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서울, 하야와 거국내각 절충

거국중립내각을 꾸린 후 조기대선을 추진할 수도 있다. 16일 국민일보는 사설에서 현실적인 이유를 들며 “거국내각을 수립해 국정을 추스르고 새 지도자들은 선거를 준비해 내년 6월을 하야시점으로 수립할 것”을 권했다. 당장 하야하면 헌법이 정한 60일안에 대선을 치러야 하는데 이 위기를 기회로 바꿔볼 시간적 여유가 허락되지 않아서다.

▲ 16일자 국민일보 사설

지난달 25일 국민일보는 1면에 대통령 연설문 유출 논란보도를 누락했다. 이에 국민일보 노조는 “우리는 오늘 아침 신문이 부끄럽다”는 제목의 긴급성명을 통해 “25일 아침 신문은 그동안 누적됐던 편집국장의 뉴스 판단 미스, 지나친 자기 검열, 이로 인해 편집국 전체에 만연한 피로감과 안일한 분위기가 빚어낸 인재”라고 지적했다. 편집국장도 교체됐다.

청와대 눈치를 보던 일관하던 국민일보가 내부 구성원 비판에 직면해 촛불민심의 목소리를 담기 시작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조기대선 추진은 대통령 하야하는 방법과 거국중립내각으로 내년 말 대선까지 대통령 임기를 유지하는 방법을 절충한 안이다.

조기대선을 주장하진 않았지만 서울신문 역시 사설에서 “헌법상 탄핵은 국회발의부터 헌재 결론까지 최소 180일이란 시간이 소요되고 이 기간에 국정혼란을 잠재울 방법이 없다. 100만 촛불시위에서 보여준 대통령의 즉각 퇴진이란 민심과 상당한 괴리감이 있다”며 판단을 유보했다.

서울신문 역시 지난달 20일 성명을 통해 “쓸 내용은 넘치는데 청와대 눈치를 보느라 드러난 사실조차 쓰지 못하게 막으니 지면을 채울 기사가 없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라고 비판한 뒤 촛불민심을 의식하고 있다.

조선과 동아, 야권에 책임 넘기기?

이런가운데 보수신문은 박 대통령을 정치일선에서 배제하면서 야권에게도 책임을 넘기기 위해 분주하다. 16일자 동아일보는 “文, ‘비상기구 통해 대통령 퇴진운동’이 무슨 뜻인가”라는 사설에서 “무슨 권한으로 이 정체불명의 기구가 과도내각을 구성하고 차기 대선까지 관리하도록 한다는 건가”라며 야권의 결단을 비판했다.

이어 동아일보는 “야당이 강조하는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을 위해서는 국회가 제 할 일을 해야한다”며 “야당이 주장했던 거국내각이든, 현재 주장하는 과도내각이든 차기 대선까지 국정을 관리할 ‘대통령 대리인’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중앙일보 역시 “거국중립내각은 야권이 먼저 요구한 것이고 불발된 영수회담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16일 “물리적 충돌 사태만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사설에서 “박 대통령이 2선 후퇴조차 거부하고 야권과 시민단체들이 하야를 요구하면서 충돌하면 앞으로도 평화 집회가 이어질 수 있을지 우려된다”며 “물리적 충돌 사태를 막으려면 야당의 자제와 책임감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분노를 표출하다 충돌이라도 하면 야당을 탓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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