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과 가족이 돼 가는 게 아닌가. 그들과 함께 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우리는 그들과 함께 삶을 살고.”(영화 ‘순종’ 대사 중) 

CBS가 최초로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순종’은 세계 빈곤 난민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선교사들의 이야기다. 영화 제목에서부터 기독교적 색채가 짙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주지만 영화에서 그려지는 ‘순종’의 모습은 절대자를 따르는 수동형이 아니다. 지배와 종속, 명령과 복종의 관계가 아닌 ‘우는 자와 함께 울라’는 것, 이게 이 영화의 제목이 가져다주는 반전이다.
 
영화 ‘순종’을 제작한 CBS 제작진(선교TV본부 김동민 부장·이주훈 PD)은 영화 제목을 정할 때 고민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기독교 방송의 콘텐츠 특성도 있지만 다큐멘터리를 처음 기획할 때부터 방송만이 아닌 보다 대중적인 영화로 만들기 위해 준비했기 때문이다. 

김동민 부장은 14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순종’은 로마서 12장 15절에 나오는 ‘우는 자와 함께 울라’는 종교적 단어이지만 세월호 집회 등 기독교인들이 그동안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고 함께할 때 많이 쓰던 말”이라며 “좀 더 대중적인 제목 제안도 있었는데 우리는 피동적·수동적 느낌이 아닌 낮은 땅에서 우는 자들과 함께 웃고 울고 살아가며 친구와 가족이 돼 주는 모습들, 그런 연대도 순종이라고 볼 수 있겠구나 하는 반전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 ‘순종’ 예고편
‘순종’ 제작진은 우간다와 레바논 등을 오가며 진행된 총 1년6개월이라는 제작 기간 동안 40도를 웃도는 폭염과 안전이 담보되지 못한 지역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난민들과 동고동락하며 고군분투했다. 

이 영화는 선교사 아버지의 삶을 이어받아 우간다의 작은 마을에서 살아가는 초등학교 교사 출신의 김은혜 선교사와 그의 남편 한성국 선교사, 그리고 시리아 국경 레바논에서 전쟁의 공포에 떨고 있는 난민들의 상처받은 영혼을 어루만지며 난민촌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김영화 선교사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제작진에게 가장 어려웠던 점도 테러 위험 지역 레바논으로 들어가 한 달간의 촬영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었다. 이주훈 PD는 “우리도 들어가기 전에 선교사에게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레바논은 합법적으로 난민을 받는 나라가 아니라 난민이 불법으로 존재하는 곳이었다”며 “우리가 혹시라도 잘못된 타깃이 될 수 있겠다는 우려가 있어 어렵게 들어간 레바논은 첫째 날부터 폭격 소리와 총소리가 계속 울려 퍼졌다”고 회고했다. 

이 PD는 “한 달 동안 레바논 난민과 같이 난민촌에서 큰 사고 없이 있었다는 게 기적 같은 이야기”라며 “그곳엔 극단 무슬림도 있어 무슬림 난민과 관계를 계속 가진 선교사가 노출되면 다른 선교사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어 선교사들 안전 문제 때문에 우리 욕심대로만 촬영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우간다에선 40도 넘는 폭염과 건강이 가장 큰 고비였다. 휴먼 다큐멘터리 특성상 카메라를 들고 난민을 밀착해 취재할 수밖에 없었고, 아침부터 밤까지 길게는 15시간 동안 촬영한 분량이 수만 분에 달했다. 카메라 감독들은 건초염에 시달리다 나중엔 팔목이 나가버리기도 했다. 한 카메라 감독은 심한 장염 후 장티푸스가 의심돼 격리됐지만 다행히 장티푸스 판정을 받진 않았다. 

영화 ‘순종’을 제작한 CBS 선교TV본부 이주훈 PD(왼쪽)와 김동민 부장.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이 PD는 “오랫동안 제작진도 한 가족처럼 지내다 보니 서로 간 이야기와 스토리 라인, 감정 선까지도 서로 숙지하며 교감을 나눌 수 있었다”며 “우리도 그 안에서 순종을 깨달았고, 가장 낮은 곳에서 그들과 울고 웃는 선교사의 모습에서 순종이란 게 우리가 범접할 수 없는 특별한 존재의 모습이 아님을 발견하게 됐다”고 술회했다. 

“한쪽 눈 종양을 가진 플로렌스라는 아이의 치료를 위해 고 김종성 목사의 한국 가족들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수술을 시켰어요. 그 아이가 마지막에 김 목사를 향해 한국말로 ‘목사님’ 하고 우는 장면이 나와요. 나에게 새로운 삶을 열어준 목사님을 위해서요. 그게 순종의 의미인 것 같아요. 함께 있어주고 울어주고, 말보다 존재 자체를 기억하는 것이요.”

‘순종’ 제작진은 자신들이 생각했던 영화의 메시지가 하나하나 퍼즐을 맞춰가며 관객과 제작진이 계속해서 완성해 가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제작진은 “선교사들의 이야기가 먹먹하지만 내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 같고 내 가족, 이웃과 순종하는 삶을 새롭게 찾아가 봐야겠다고 느끼는 분도 있었다”며 “‘우는 자와 함께 울라’는 순종은 증오와 배신으로 가득 찬 한국 사회와 기독교에 꼭 필요한 키워드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제작진은 또 “우리가 외국의 난민들을 얘기했지만 한국사회와 겹쳐놓고 보면 우리 주변에도 함께하는 손길이 필요한 난민들이 굉장히 많다”며 “세월호 유가족과 위안부 할머니, 헬조선에서 못 살겠다는 젊은이, 구의역에 컵라면을 남기고 떠난 젊은이들 모두 우간다·레바논에서 바라본 난민과 똑같은 한국의 난민이다. 선교사들의 평범한 순종이 우리 사회를 비춰볼 수 있는 작은 불빛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밀알복지재단과 함께 제작한 CBS 다큐멘터리 영화 ‘순종’은 오는 17일 전국에서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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