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가 2년여 만에 ‘정윤회 문건’을 추가 공개했다. 세계일보가 14일치 보도에서 공개한 문건은 3가지 버전이다. △2014년 1월6일 공직기강비서관실 명의로 보고된 2쪽짜리 공식 문건인 ‘‘청(靑)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측근(정윤회) 동향’(이른바 ‘최종본’) △역시 2쪽인 ‘청 비서실장 교체설’ 언론보도 관련 특이 동향’(이른바 ‘중간본’) △이들 보고서를 위한 3쪽짜리 워드 형식의 ‘초안’ 성격인 ‘시중여론’ 등이다. 

3개 버전 문건에는 모두 박근혜 대통령 비선 측근 최순실씨가 거론돼 있었다. 2014년 11월 일부만 공개됐던 세계일보 문건 보도의 주된 내용은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실장이자 최태민 목사의 사위인 정윤회씨가 ‘문고리 권력 3인방’을 포함한 청와대 안팎 인사 10명을 통해 각종 인사개입과 국정농단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 세계일보가 14일 공개한 정윤회 문건. 사진=세계일보
문건에 여러 차례 최씨가 거론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박근혜 정부가 사활을 걸고 세계일보 추가 보도를 막은 이유를 추측할 수 있다.

정윤회 문건 당시 세계일보 사장이었던 조한규 전 사장은 “정윤회 문건 보도 이후 후속 보도도 준비하고 있었다”며 “세계일보 사장에서 물러나지 않았다면 ‘최순실 게이트’로 판이 넘어갔을 것이다. 그때 제대로 비선 문제가 정리됐다면 오늘의 불행한 사건은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디어오늘이 15일 서울 서대문에서 만난 조 전 사장의 눈은 뻘겋게 충혈돼 있었다. 그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문건 보도 이후 녹내장에 시달렸다. 녹내장 약 때문에 자꾸만 충혈이 된다”고 말했다. 문건 보도 이후 심리적‧신체적 고통을 받았음을 말해준다. 

조 전 사장은 세계일보 문건 보도(2014년 11월) 이후인 지난해 2월 사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는 “현 정권은 나를 포함해 세계일보 편집국장과 기자들을 상대로 소송전을 벌였고, 통일교를 압박해 나를 해임토록 했다”고 주장하며 “이는 언론과 종교에 대한 탄압”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2년 동안 그가 겪은 외압과 풍파를 들어봤다. 아래는 조 전 사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이 15일 서울 서대문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어떻게 지켜보고 있나.
“정윤회 문건에도 ‘최순실’이 언급돼 있지 않나. 당시에는 정윤회가 비선 실세로서 국정을 농단했기 때문에 거기에 초점을 맞춰서 보도했다. 세계일보 문건 보도로 정윤회가 날아갔고 최순실이 전면에 나서 국정을 농단했다고 생각한다. 후속 보도도 준비하고 있었다. 보도 이후 여러 제보가 들어왔다. 그때 정권이 비선 문제를 정리했다면 오늘과 같은 불행은 없었을 것이다.”

- 당시 ‘정윤회 문건’을 직접 봤나?
“문건을 직접 본 적은 없었다. 어디까지나 세계일보 편집국이 결정하고 판단할 문제였다. 다만 구두 보고를 받곤 했는데, 워낙 충격적인 내용이었기 때문에 사장 자리가 위태로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보도가 됐을 때 여러 곳에서 전화가 왔고 항의도 많이 받았다. 사실 문건을 공개하기 전부터 세계일보가 청와대 관련 단독 보도를 많이 터뜨렸다. 내부에선 ‘문건을 공개하지 않으니 풍문으로 쓴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다. 현장 기자들이 압박을 받으니 문건을 공개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고 며칠간 고민 끝에 받아들였다.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는 부분은 가리고 보도하라’ 정도로만 얘기했다.”

- 지난 14일 세계일보가 공개한 문건이 전부인가?
“정윤회 버전만 공개한 것 같다. 공식 문건은 11건 정도 된다고 알고 있다. 기자들 이야기에 따르면 로우 데이터로만 700페이지 분량이 된다. 기자들은 관련 내용을 다 읽어봤다고 했다.”

- 정윤회 문건 보도의 취재 기간은 어느 정도였나?
“2014년 4월부터 7~8개월 정도 취재를 했더라. 특별취재팀이 정말 고생했다. 일각에서는 최순실이 정윤회를 제거하기 위해 세계일보에 정보를 줬다는 ‘카더라’가 나오기도 했는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문건팀 3명(조현일‧김준모‧박현준)이 집중 취재를 통해서 특종을 한 것이다.”

▲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이 15일 서울 서대문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청와대 측에서 압박이나 회유는 없었나?
“청와대 측에서 ‘살살 좀 다뤄달라’, ‘이 문제를 풀고 가자’는 취지로 메시지를 전달했다. 직접적인 압력보다 통일교를 통한 압력이 있었다.”

세계일보 문건 보도 직후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 등 소위 ‘문고리 3인방’은 조 전 사장과 세계일보 편집국장, 기자 등 6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검찰은 이 사건에 대해 ‘공소권 없음’ 처분으로 종결했다고 지난 7월 밝혔다. 

당시 언론계에서는 김상률 청와대 교육문화수석비서관이 ‘정윤회 문건’ 수습을 담당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김 수석은 지난해 1월 한용걸 세계일보 편집국장을 만난 바 있으며 신성호 청와대 홍보특보도 조 전 사장과 만나 수습 메시지를 전했다.

- 조 전 사장이 해임될 때 청와대가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은 많았다.
“통일교를 상대로 정권 차원에서 압력을 가했다는 정황은 있었다. 김상률 당시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정윤회 문건 수습’을 핸들링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청와대 홍보 쪽은 세계일보 문제를 좋게 풀고자 했으나 그게 뜻대로 안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최순실-차은택-김상률(차씨의 외삼촌)-김종’ 라인이 영향을 미친 게 아닌가 싶다. 통일교 한 관계자에게 ‘누가 나를 자르라고 하느냐’라고 물었더니 ‘정부 고위 관계자에게 직접 연락을 받았다’고 말하더라. 한학자 통일교 총재가 그 당시 하와이에 있었는데, 거기까지 전화했다고 한다. 언론사 발행인 해임을 요구하는 건 종교 탄압이자 언론 탄압이다.”

- 세계일보 문건팀 3인방도 적잖게 고초를 겪었을 것 같다.
“미행을 당했다고 한다.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이다. 조현일 기자의 경우 특히 힘들어했다. 정신과 치료를 받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었을 거다. 거의 식사를 못할 정도였으니까. 수사 과정에서 문건 유출자로 지목받은 최경락 전 경위가 목숨을 끊지 않았나. 한일 전 경위와 최 전 경위의 명예는 회복돼야 한다. 기자들은 취재원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상당한 충격을 받았고 위축됐다.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사장으로서 조금 더 버텨야 했나 싶다.”

▲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이 15일 서울 서대문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최 전 경위 이야기가 나오면서 화제는 ‘정윤회 문건’에 대한 재수사로 이어졌다. TV조선이 공개한 고(故)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을 보면,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정윤회 문건 수사가 한창이던 2014년 12월13일 “조기 종결토록 지도”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나타나 있다. ‘문건 유출자’로 지목받은 한일 전 경위는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자진출두 해 자백하면 불기소 편의를 봐줄 수 있다’고 자신에게 약속했던 사람은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직속 특별감찰반 책임자인 우병우 당시 민정비서관이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김기춘-우병우’ 라인이 문건 사태에 적극 나섰다는 것이다. 

- ‘정윤회 문건’ 재수사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정윤회 문건과 최순실 게이트는 별개의 사건이 아니다. 별도 특검이나 국정조사를 통해 다시 정윤회 문건을 다뤄야 한다. 그들이 언론을 탄압했던 문제, 최 전 경위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 보도 이후 사장에게도 여러 제보가 왔었다던데?
“유의미한 제보 가운데 하나는 최순실이 2012년 19대 총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이었다. 모 인사가 나를 찾아와 공천을 받기 위해서 최순실을 만났다고 했다. 해당 인사는 공천을 받지 못했는데, 최순실로부터 ‘이런 경력을 갖고 국회의원을 하려고 하냐’는 핀잔만 받았다고 했다.(웃음) 박근혜 대통령 옆에서 모든 걸 간섭했을 테니 공천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렇게 본다면, 지금 새누리당 의원 가운데에서도 ‘최순실 인사’가 있지 않겠나. 새누리당은 해체하고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만약 최씨로부터 공천을 받은 현역 의원들이 있다면 그들은 정계 은퇴해야 한다.”

- 새누리당 홍문종‧김진태 의원 등은 정윤회 문건 유출 경위를 문제삼거나 “마녀사냥”이라며 박 대통령을 적극 두둔했는데?
“그들은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정윤회-최순실’을 비호한 거 아닌가. 가슴에 손을 얹고 이제 정치는 그만둬야 한다.”

- 세계일보의 최순실 단독 인터뷰가 논란이었다. 어떻게 지켜봤나?
“전임 사장이 현재의 일을 왈가왈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그는 이 질문에 유독 말을 아꼈다.)

- 세계일보 기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없나?
“세계일보 내 풍파가 심했다. 그때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지혜롭게 해결했어야 했는데 제대로 못했다. 미안하게 생각한다.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느낀 건, 언론이 살아있어야 나라가 산다는 것이다. 공자가 말하는 ‘언’(言)은 ‘직언’을 의미한다. 직언이 아니면 언론이 아니다. 그래야 민주주의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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