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촛불이 ‘대통령 퇴진’과 하야를 요구하면서 정치권이 본격적으로 탄핵 정국을 맞이하고 있다. 야당은 박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날 가능성은 요원하다는 가정 하에 새누리당 비박과 힘을 합쳐서 탄핵을 성사시킬 준비를 시작했다.

국민의당은 지난 12일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 이후 탄핵을 공식화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대책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는 천정배 국민의당 의원은 14일 오전 회의에서 “먼저 국민의 압도적인 요구에 부응해서 국회가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결의안을 채택할 것을 제안한다. 우리 당은 이 결의안을 당론으로 발의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천 의원은 이어 “박근혜 대통령이 퇴진을 거부하는 경우에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 우리 당과 국회는 지금부터 탄핵소추를 준비해야 할 것”이라며 “우리 당이 탄핵발의를 위한 실무적 준비를 시작함과 아울러 국회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 특위를 설치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박주현 의원도 같은 자리에서 “대통령의 퇴진과 탄핵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다”며 “국민의 여론이 강고함에도 대통령이 사임하지 않는다면 야당은 당연히 탄핵해야 한다. 야당의 구호는 ‘사임하지 않으면 탄핵 한다’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지난 12일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새누리당 비박 계에서도 그간 금기시 되던 탄핵 주장이 등장하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는 14일 오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국정 마비 상황을 하루속히 수습할 수 있는 헌법적 절차는 탄핵”이라며 “(탄핵의) 결과 여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바도 없고, 결과가 어느 정파와 세력의 유불리에 따라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그건 의원들의 자유의사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비박 계 하태경 의원도 12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오늘 광장에 모인 국민들의 외침은 대통령이 마음 비우고 모두 내려놓으라는 거다. 대통령 스스로 결단할 수 없다면 국회가 나서야 한다”며 ‘탄핵 절차를 밟는 것 외에 대안이 없다“고 밝혔다. 비박 계 나경원 의원도 ”헌법상 탄핵 요건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면 의견 모아 탄핵절차를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탄핵에 대한 의견 교환을 위한 야당과 새누리당의 접촉도 이루어지고 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지금 현재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비서실, 그리고 새누리당 친박 일부 의원들의 작태를 볼 때 하야는 기대하기 어렵다. 물리적으로 보면 탄핵 가결을 위해서는 새누리당에서 29석이 와야 하지만 통상 무기명 비밀표결이기 때문에 최소한 40여석의 새누리당 의원의 확보가 필요하다”며 “새누리당 비박 계에서 탄핵을 이야기했고, 그 사이 제가 물밑접촉을 통해서 나눈 대화를 종합해보더라도 40여석의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해 본다”고 밝혔다.

아직까지 ‘2선 후퇴 안 하면 퇴진 투쟁’을 주장하고 있는 민주당 지도부에 대한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이석현 의원은 13일 최고위원-중진위원 연석회의에서 “우리는 그동안 박대통령의 2선 후퇴와 거국내각을 요구해 왔지만 박 대통령이 실기를 하고 있다. 이제 국민들이 그런 주장에 동의 해줄지 우려되는 상황”아라며 “촛불민심은 하나같이 한목소리로 하야하라는 것이었다. 하야하라는 국민의 무거운 요구를 귓전에 흘리면서 제1야당인 우리가 언제까지나 2선후퇴만 주장해야할 것인지 이제 고민해볼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 12일 민주당이 주최한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규탄대회에 참석한 문재인 전 대표(왼쪽)와 당 지도부. 사진=문 전 대표 측 제공

이인영 민주당 의원도 13일 기자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통해 “당리당략과 조기대선의 유불리를 떠나서 ‘대통령 하야 투쟁’의 선봉에 민주당이 서야 한다. '하야’가 거부되면 ‘탄핵’해야 한다”고 밝혔다.

비박 일부도, 야당도 탄핵 준비를 하는 상황에서 남은 건 새누리당의 친박 지도부다. 친박 지도부는 탄핵 및 하야 여론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조원진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1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통령에 대한 탈당과 탄핵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우리를 부정하는 것은 안 된다고 본다”며 “당을 해체하고 대통령을 탄핵하려고 하면 우리 스스로가 더욱더 큰 결단을 내리는 것이 맞다 생각하고 반대 입장을 밝힌다”고 말했다. 비박 계의 탄핵 및 탈당, 새누리당 해체 요구를 거부한 것이다.

이장우 최고위원 역시 같은 자리에서 “국민 불안만 불에 기름 붓는 겪으로 야당의 신중치 못한 처신에 유감을 표한다. 이제 정치권도 이성을 회복하기를 간곡하게 촉구한다”며 야당의 탄핵 및 하야 움직임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다만 정진석 원내대표는 친박 계와 다소 다른 입장을 취했다. 정 원내대표는 14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두 야당의 정식으로 요청한다. 야당이 이 시점에서 요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대통령의 하야인가. 탄핵인가”라며 “탄핵소추권도 국회에 있고 국무총리임명 동의권 역시 국회에 있다. 국회가 중심을 잡고 이 난국을 헤쳐 나가야한다”고 말했다. 정 원내대표는 또한 “야당 내에서 그동안 다양한 주장을 제기했다. 두 야당의 통일된 입장을 요청하고, 입장을 정리해주면 저희도 당 의원들의 의견을 모아보겠다”고 했다.

야당도 친박 지도부가 걸림돌이라는 점을 내비치고 있다. 이정현 대표는 13일 기자간담회에서 오는 1월21일 당 대표 선출을 위한 조기 전당대회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는 1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어제 1월 21일 전당대회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발표하신 걸 보면서 정말 한가한 판단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루하루가 급한데 내년 1월 21일까지 새누리당을 현 상태를 끌고 가겠다는 인식에서는 절망을 느꼈다”고 비판했다.

▲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초선의원들과의 면담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포커스뉴스

야당을 중심으로 제시되는 비상시국 회의, 시국회의 등도 이런 친박을 배제한 논의 기구라 볼 수 있다. 박영선 민주당 의원은 13일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이제 국회가 국민의 명령에 따라서 안정적 하야, 질서 있는 퇴진 요구를 위한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비상시국 전원위원회 개최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런 제안에 대해 한 민주당 의원은 “저쪽 지도부가 비박으로 바뀌면 여야 원내대표 및 대표 논의의 틀에서 박 대통령 하야 및 퇴진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안 바뀔 것 같으니 친박을 뺀 나머지가 모이는 틀을 만들자는 제안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탄핵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그간 미루어졌던 총리 추천 및 거국내각 구성도 같이 논의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만약 지금 상태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직무정지가 되면 황교안 국무총리와 현재의 내각이 대통령 직무를 맡게 되기 때문이다.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14일 비대위 회의에서 “탄핵이 의결된다고 하더라도 헌법재판소가 인용을 할 것인가. 이러한 모든 문제를 검토할 때 헌법재판소에서 6개월 내에 신속하게 인용 판결을 할지 그 자체도 우리는 분석할 수밖에 없다”며 “만약 대통령이 하야하거나 탄핵을 당하면 이 총리가 곧 대통령 직무대행, 권한대행으로서 모든 국정을 이끌고 특히 개헌이나 대통령 선거를 치러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선결조건이 정리되지 않고 그대로 황교안 총리가 재임한다고 하면 거국중립내각이 아닌 박근혜정부의 연속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변수는 검찰의 박근혜 대통령 수사다. 검찰은 오는 15일, 늦어도 16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대면수사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19일로 예정된 최순실씨 기소일정에 맞추려면 박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반드시 거쳐야한다. 이 과정에서 검찰이 미적거리거나 제대로 수사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 “대통령이 내려와서 수사 받아라”는 여론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따라서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여론을 무시하는 박근혜 대통령이 아니라 여론에 좀 더 민감한 새누리당과 검찰을 상대로, 여의도와 검찰청 앞 등에서 시위를 벌여야 한다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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