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문건’ 수수께끼가 풀렸다. 세계일보가 13일 공개한 3개 버전의 문서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측근(정윤회) 동향” 등에는 비선 실세 최순실이 언급돼 있었지만 검찰은 문건을 찌라시로 규정한 박근혜 대통령의 수사 가이드라인에 따라 ‘국정농단’ 수사를 사실상 뭉갠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일보에 따르면 관련 문건에는 “십상시들과 정윤회의 모임에서는 공공연하게 ‘이 나라 권력서열 1위는 최순실, 2위는 정윤회, 3위는 박근혜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대통령이더라도 자신의 옛애인이 나은(‘낳은’의 오타로 추정) 딸을 어떻게 배척할 수 있겠느냐?’라는 극치의 말이 서로간에 오가고 있다 함” 등의 내용이 있었다. 최태민을 옛 애인으로 최순실을 비선 실세로 인정하는 대목이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 참석해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최씨가 “문건을 작성한 박관천 행정관 등 민정수석실 파견 경찰 13명을 교체하라”고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에게 지시했고, 안봉근 비서관은 교체 대상 경찰 11명의 명단을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 내에서 “일괄 교체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결국 박관천 행정관 등 일부만 경찰로 복귀시켰다는 것이다.
TV조선이 공개한 당시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지난 8월 사망) 비망록에는 김 전 비서실장이 정윤회 문건 수사가 한창이던 2014년 12월13일 “조기 종결토록 지도”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나타나 있다.
비망록에는 정윤회 문건 보도 다음날(2014년 11월29일) ‘휴대폰, 이메일, 통신 내역 범위 기간’, ‘압수수색’, ‘청와대 3비서관 소환 등 협의’라는 메모를 작성한 것으로 나온다.
‘청와대 3비서관’은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 등 ‘문고리 3인방’을 의미하는 것으로 검찰 수사를 앞두고 문고리 3인방과 협의한 정황으로 풀이되고 있다. 김 전 실장 주도로 청와대가 검찰의 ‘정윤회 문건’ 수사 무마를 지시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그는 또 “조 비서관이 ‘할배(김기춘)가 시켰다’고 말했다”며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지목했다. 해당 보고서는 2014년 1월6일 김 전 실장에게 보고됐다. 문건의 핵심 내용은 정윤회씨가 문고리 3인 등과 서울 강남의 한 음식점에서 매달 정기적으로 만났고, 이 자리에서 김 전 실장 교체 등을 논의했다는 것이다.
2014년 11월 세계일보의 문건 보도 직후에도 김 전 실장이 자신에 대한 교체설을 파악해보라고 지시해서 생성된 보고서(정윤회 문건)와 관련해 문건 작성자 박 전 경장을 “자르라”고 지시했다는 진술이 보도를 통해 나왔고, 이를 두고 당시 언론들은 “김기춘 실장에게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됐다.
김 전 실장이 애초의 지시와 다르게 청와대 실세들과 맞부닥치자 태도를 바꾼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문건 유출자로 지목된 한일 전 서울경찰청 경위는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자진출두해 자백하면 불기소 편의를 봐줄 수 있다’고 자신에게 약속했던 사람은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직속 특별감찰반 책임자인 우병우 당시 민정비서관으로 알고 있다고 폭로한 바 있다.
한 전 경위는 검찰이 압수한 이동식 저장장치(USB)에는 최순실씨와 승마협회와 관련해 수집한 첩보도 있었다고 했는데, 정윤회 문건 논란 당시에도 검찰이 최씨 관련 비리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증언으로 의미가 있다.
당장 비선 실세 최씨의 존재를 알고도 무시한 검찰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다. 세계일보는 14일 당시의 수사를 ‘범죄적 수사’로 규정한 뒤 “검찰은 최씨를 비롯한 비선의 국정개입 또는 국정농단 가능성을 알 수 있는 핵심 수사 대상자들의 발언과 첩보에도 최씨를 비롯한 비선실세에 대한 수사나 국정농단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정작 검찰은 지난해 서울중앙지법 심리로 열린 조응천 전 비서관과 박 전 행정관 결심 공판에서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문건 내용 전부를 허위로 볼 수 없다”며 “(정윤회 문건은 정씨 등의) 범죄첩보를 담은 공무상 비밀문건”이라고 ‘찌라시 문건 유출’과 모순되는 주장을 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