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문건’ 보도를 통해 비선실세 정윤회(최순실 전 남편)씨와 십상시 존재를 알린 세계일보가 당시 문건 유출 혐의를 받은 한일(46) 전 서울경찰청 경위와의 인터뷰를 통해 청와대의 개입 정황을 폭로했다.

12일자 세계일보 보도를 보면, 한 전 경위는 “검찰에 체포되기 전 청와대가 민정비서관실 직속 특별감찰반(특감반) 행정관을 보내 나를 회유한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는 ‘자진출두해 자백하면 불기소 편의를 봐줄 수 있다’고 자신에게 약속했던 사람은 특감반 책임자인 우병우 당시 민정비서관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한 전 경위는 2014년 12월 검찰에 압수당한 자신의 휴대전화에 ‘최순실이 대통령의 개인사를 관장하면서 대한승마협회 등에 갑질을 하고 있다’는 정보가 담겨 있었다고도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밝혔다.

▲ 세계일보 12일자 보도
이 때문에 검찰과 민정비서관실에서 최씨 비리 관련 내용을 사전에 알고도 묵인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아울러 정윤회 문건 수사를 주도하며 ‘비선의 국정농단’이 아닌 ‘문건 유출’ 쪽으로 판을 짠 인사로 알려진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직무유기 혐의가 짙어지는 이유다.

문건 유출의 시발점으로 지목된 한 전 경위는 지난해 10월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돼 5개월가량 복역했다. 경찰에서도 파면됐다.

‘국정농단’ 지워버린 우병우

2014년 11월 세계일보 정윤회 보도가 가리키는 건 ‘비선의 국정농단’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실장이자 최태민 목사의 사위인 정윤회씨가 ‘문고리 권력 3인방’을 포함한 청와대 안팎 인사 10명을 통해 각종 인사개입과 국정농단을 하고 있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이를 ‘문건 유출’로 규정하고 수사 가이드라인을 검찰에 내려보냈다. 이후 검찰은 문건 유출 경로를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박관천 전 경정(전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한일 전 경위-최경락 전 경위’로 결론지었다.

▲ 세계일보 2014년 11월28일자 보도.
박관천 전 경정이 청와대에서 근무할 때 만든 문건을 가지고 나와 서울경찰청 정보분실에 둔 것을 한 전 경위가 복사해 최 전 경위에게 넘겼고 이를 최 경위가 언론에 유포했다는 것이다.

예기치 못한 사고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 터졌다. 한 전 경위와 함께 문건 유출 혐의를 받던 최 전 경위가 2014년 12월13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그는 유서에서 한 전 경위에게 “민정비서관실에서 너에게 그런 제의가 들어오면 당연히 흔들리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했다. 그로부터 2년 후 한 전 경위가 언론에 진실을 털어놓은 것이다.

세계일보는 청와대의 회유 이유에 대해 “검찰의 수사가 ‘문건의 진위’, ‘문건 유출 경로’라는 두 갈래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한 전 경위가 문건 유출 사실을 자백할 경우 문건 유출 수사가 급물살을 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세계일보는 “특히 당시 박관천 경정과 최 경위 측은 완강하게 유출을 거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청와대와 검찰의 유일한 출구는 한 전 경위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며 “이에 따라 우병우 당시 민정비서관이 주도하는 청와대와 검찰은 한 전 경위와 안면이 있는 민정비서관실 직속의 특별감찰반(특감반) 박모 행정관을 투입, 한 전 경위의 회유를 시도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당시 검찰 수사는 지독하리만치 무모했다. ‘비선 국정농단’은 지워졌고 ‘문건 유출’에 초점을 맞춘 수사는 피의자들을 ‘먼지털이식’으로 가혹하게 몰아세웠다.

주범으로 몰린 경찰들
목숨 끊거나 정신병원 입원도

이는 세계일보 ‘문건팀’이었던 박현준 기자가 지난해 관훈저널 봄호에서 밝힌 내용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정윤회 문건’에 연루된 인사들이 어떤 고초를 겪었는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무엇보다 고귀한 생명의 희생이 있었다. 어린 자녀 둘을 둔 평범한 가장이자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핵심부서에 근무하던 한 경찰관이 검찰수사 도중 목숨을 끊었다. 그 동료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것으로 알려진 이후 종적이 끊겼다. 엘리트 경찰 코스를 밟던 한 전직 청와대 행정관은 구치소에 갇힌 채 먼지털이식 수사를 받고 있다. 정권 성공을 위해 권력 주변부 부나방을 쫓아내던 전직 청와대 비서관은 창졸간에 음습한 권력다툼의 주역으로 규정돼 재판을 기다린다. 세계일보 기자들을 만난 대가는 이처럼 참혹했다.”

▲ 박관천 전 경정. (사진=민중의소리)
검찰 수사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검찰은 이른바 ‘문건 유출’ 용의선상에 있는 인물들을 강하게 압박했다. 박관천 전 행정관을 구속수사 중인 검찰은 결국 이번 건과 관련 없는 혐의로 추가 기소했고, 어느 날 자정 무렵엔 조사를 받던 세계일보 기자 앞에 수갑을 찬 박 전 행정관을 앞세워 문건 전달자를 밝히도록 종용하기도 했다.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에 대해서는 ‘불장난의 수괴’로 규정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박 기자는 고(故) 최 전 경위에 대해서는 “검찰은 최 경위를 상대로 ‘세계일보에 문건을 전달하지 않았느냐’며 강하게 추궁했다고 한다”며 “최 경위의 유족들은 ‘최 경위가 제때 식사조차 하지 못하고 계속 검찰 조사를 받았다. 구치소에서도 몸을 떨며 힘들어해 옆에 있던 수감자가 셔츠를 벗어줬고, 교도관 한 분이 자비로 내복을 사서 입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통곡했다. 최 경위와 함께 검찰 조사를 받던 한모 경위는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실제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 경위는 “공무원 신분에서 파면되고 다시 바닥부터 시작하자 해서 개인회생신청을 하기도 했다”며 “현재 보증금 6000만원에 월세 50만원짜리 다세대주택에서 산다. 지금은 지인들에게 일거리를 소개받아서 근근이 생활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솔직히 이런 말을 하면서도 우 전 민정수석한테 박살날까봐 두렵다”며 “당시에도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병원에 입원까지 했다. 고인(최 전 경위)의 명예도 지켜드리고 싶고 이제는 말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다. 당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제 국민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술회했다. 

▲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 연합뉴스
정권 치부를 들춘 언론사에 대해서도 탄압이 이어졌다.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 등 소위 ‘문고리 3인방’은 2014년 11월 세계일보 대표와 편집국장, 기자 등 6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검찰은 이 사건에 대해 ‘공소권 없음’ 처분으로 종결했다고 지난 7월 밝혔다.

세계일보 기자들은 반복해서 검찰 소환을 받아야 했고 “취재원을 불라”고 강요당했다. 후속 보도가 이어지기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문건 보도 직후 세계일보 사장과 회장이 교체됐고 모체인 통일교 재단은 세무조사 압박을 받았다. ‘문건팀 3인방’ 기자 가운데 한 명은 올해 초 다른 언론사로 이직했다.

당시 세계일보 사장이었던 조한규 전 사장은 최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참담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조 전 사장은 정윤회 문건 때 검찰이 ‘비선의 국정농단’에 초점을 맞춰 제대로 수사했다면 정권이 지금처럼 추락하진 않았을 거라는 안타까움도 드러냈다. 세계일보의 한 기자는 “우리 보도는 정권이 잘못된 것은 하루바삐 바로잡아야 한다는 경보등이었으나 정권은 이를 위협으로만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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