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는 지난달 10일부터 19일까지 10일간 총파업을 단행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지난 8월30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화물운송시장 발전방안'에 대한 반발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적정임금 보장과 종속계약 지입제 폐지를 중심으로 한 화물노동자의 권리주장이다. 미디어오늘은 파업 이후 이어져야 할 화물노동시장 문제를 되돌아보았다.(편집자주)
(1)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에 내몰리는 화물노동자
(2) 시기영 분회장 인터뷰 "무늬만 사장, 노동기본권 박탈"
(3) '화물시장 구조개악' 비판받는 정부의 '화물운송시장 발전방안'
(4) 왜 저임금 구조는 바뀌지 않는가

국토교통부는 지난 8월 수립된 ‘화물운송시장 발전방안’이 "이해관계자간 양보와 협조 속에서 대승적 차원의 합의를 거치는 선례를 남겼다"고 평가했다. 국교부의 주도 아래 화물운송시장에 있는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1년 넘게 논의를 진행했고 그 결과 정부 발전방안을 승인하는 공동합의문이 도출됐기 때문이다. 한국통합물류협회, 전국화물·개별·용달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 전국화물자동차운송주선사업연합회 등 운송사업자들과 전국화물자동차운송차주협회, 화물연대 등 화물차주 측이 함께 논의에 참여했다.

이 중 화물연대만이 합의문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지난 10월, 화물연대는 국교부의 발전방안 추진 강행에 대한 저항으로 총파업을 단행했다. 정부의 방침이 화물운송업계 측의 '수요-공급 탄력성'만을 우선시하고 화물노동자의 열악한 근로조건 개선은 외면한다는 문제의식에서였다.

▲ ⓒ연합뉴스

이마트, CJ 대한통운 등 택배·유통사 차량 증차 길 열려

국교부 발전방안의 핵심은 ‘1.5톤 미만 트럭’에 대한 수급조절제 완화다. 택배 및 유통업 물류, 일반 용달 등을 담당하는 소형화물차에 대한 허가제를 대폭 완화한 것이다.

현재는 정부의 허가를 받은 차량만 화물운송을 할 수 있다. 화물차 수급은 ‘화물자동차운수사업 공급기준심의위원회’가 한 해 물동량 변화 추이와 경제상황을 감안해 결정한다. 2003년 물류대란을 겪으며 정해진 정부 방침이다. 1994년 약 15만대였던 화물차는 2003년에 35만대 수준으로 급격하게 늘었다. 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실업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던 이들이 ‘트럭만 있으면 진입할 수 있는’ 화물운송시장으로 대거 유입된 탓이다. 당시엔 화물운송차량이 ‘등록제’로 관리되고 있었다. 화물노동자들은 2003년 과당경쟁과 최저생계비에 미달하는 운임비 를 해결하라며 파업에 나섰고 2004년 ‘수급조절 규제책’이 담긴 개정법안이 통과됐다.

이번 안이 통과되면 화물차 수요-공급 균형을 맞추기 위해 마련된 규제가 1.5톤 미만 화물차에 한해 폐지된다. 개인사업자의 경우 ‘택배용 화물차’에 한해서, 법인(일반) 업종의 경우는 구분없이 수급조절이 폐지되고 자유로운 증차 및 신규 허가가 허용된다. 법인의 경우 20대 이상을 ‘직영(차량을 회사가 소유)’으로 운영해야 증차가 가능하고 차량의 증톤과 양도를 금지하는 조건이 달린다. ‘무분별한 차량 급증’을 막기 위한 조치다.

업종 전면 개편도 동시에 이루어진다. 현재 1톤이하, 1톤 초과에서 5톤 미만, 5톤 이상으로 세가지로 구분된 톤수 구분을 1.5톤을 기준으로 양분하는 것이다. 1.5톤 미만은 소형, 이상은 중대형으로 구분된다. 2대 이상을 소유하면 허가를 내주는 일반 업종 화물운송사업 허가제도 20대 이상으로 기준이 상향된다. 시장상황과 맞지 않아 업종 단순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개정의 이유다.

영세차주 및 지입차주에 대한 지원책도 마련됐으나 방점은 규제 완화에 찍혀 있다. 정부안엔 ▲참고원가제 도입 ▲용달업계를 위한 택배업계의 상생기금 마련 ▲지입차주 재산권 침해 방지 조항 등이 포함됐다. 참고원가제는 화주들에 대한 ‘운임비 가이드라인’으로, 운임비 산정 능력이 없는 영세 차주들의 수입하락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됐다.

정부안이 반영된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이헌승 새누리당 의원 대표 발의로 지난 4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발의됐다. 법안은 오는 21일 소위원회에 상정돼 23일 논의가 시작될 예정이다.

▲ 부산-서울 40ft 장거리 컨테이너 화물노동자의 월 수입. 이들은 상대적으로 순수입이 높은 편이다. 1~5톤 용달 화물과 택배화물 노동자는 더 열악한 처우에 시달리고 있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순전히 기업 용달차 조달만 편하게… 실질적 보호대책 얘기 왜 빼는가”

정부안은 택배 및 유통업계의 사정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발전방안이 본격적으로 논의된 ‘화물운송시장 발전포럼’은 전자상거래의 발전과 택배시장의 급성장을 강조했다. 포럼에 따르면 전자상거래 시장은 2004년 이후 연평균 16% 성장률로 꾸준히 성장했다. 연평균 15% 성장률을 보이는 택배시장의 2014년 매출액은 3조9800억원에 달한다. 이지선 한국교통연구원 물류연구본부 부연구위원은 포럼에서 “서비스 수요에 부응하지 못하는 차량공급” 문제와 “최종 소비자에게 상품배달이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는 유통체계 성장 필요성”을 지적했다.

화물연대도 이 사정을 외면하지 않는다. 문제는 “순전히 기업이 편하게 용찰차를 조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수급정책을 짰다”는 것이다. 화물운송시장 구조와 관련해 여러 차례 연구보고서를 쓴 바 있는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은 지난 7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택배 쪽에 차량이 부족한 건 사실이고 공급이 좀 더 돼야 하는 건 맞다”면서도 “산업논리로 수요가 있으니 공급을 늘려줘야 한다는 것인데, 종사자들에게 적정한 생계비를 보장해주기 위한 수입보장정책을 얘기하지 않으면서 전체적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것”이라 비판했다.

종사자 보호대책 없이 공급을 풀어버리는 순간 이들이 더 열악한 근로조건에 놓일 것이란 지적이 있다. 공공운수노조 사회공공연구원이 작성한 ‘버스·화물업종의 노동조건에 대한 사회적 규제 도입방향’ 연구를 보면 용달화물(1톤 화물차) 운전자의 경우 일 평균 11.6시간, 월 22.2일을 일해 96만원에 월 순수입을 올린다. 2010년보다 20만원이 감소했다.

택배노동자의 상황은 더 열악하다. 이들은 하루 평균 300개 택배물량을 소화하는데 오전 7시에 출근해 보통 12시간 이상씩 일한다. 택배 배송 작업이 끝나도 물량 수거 작업이 이어지는 데다 이렇게 일하지 않을 시 월 200~300만원 수준의 순수입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공공연구원은 이들의 배송수수료가 건 당 800원이고 배송수수료가 수년 째 하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5톤 이하 차량 수급조절 폐지’로는 이 문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화물연대 측 입장이다. 이들은 과당 경쟁과 이로 인한 운송료 덤핑을 우려한다. 택배노동자 노동조건이 열악한 이유는 택배차 부족 때문이 아니라 비인간적인 배송시스템과 택배업계의 과당경쟁으로 인한 낮은 단가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가 전면 파업에 들어간 지난 10월10일 경기 의왕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 화물차 등이 정차해 있다. ⓒ연합뉴스

한 연구실장 또한 “서로 갉아먹기식 경쟁을 하고 있는 시장이다. 그런데다 운전만 할 수 있으면 진입할 수 있어 경기가 안좋은 지금도 1998년때 처럼 누구나 들어가려고 하는 시장”이라면서 “여기다 규제까지 다 풀면 더 회사가 많아지고 과잉 경쟁이 일어날 텐데 노동자 처우가 더 좋아질 수 있을까. 택배쪽은 지금도 (노동조건이) 최악”이라고 말했다.

‘영업용 번호판’이 그리 부족하지 않다는 주장과 증차, 톤급 상향 등이 무분별하게 이뤄질 것이란 우려도 있다. 공심위는 화물차 톤급 및 차량종류에 따라서 허가 대수를 규제하고 있고 차량 교체시 증톤(높은 톤수로 차량 교체)에 제약을 두고 있다. 화물연대는 톤급 구별이 사라지면 차량 교체가 자유롭게 이뤄져 차량별 공급 기준이 무의미하게 돼 시장이 더 혼란해질 것이라 지적한다.

한 연구실장은 “정부의 행정의지가 일관적이면 상관이 없지만 1.5톤 미만으로 한정시킨 방침이 바뀐다면, 이미 톤수 구별이 없어진 상태에서 (수급조절이) 확 풀려버리는 수가 있다”고 우려했다.

이들이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수입보장정책’은 ‘지입제 폐지’와 ‘표준운임제 도입’이다. 노조 설립 후 13년 간 반복되고 있는 주장이다. 차량 소유와 번호판 소유가 이원화되는 ‘지입제’나 화주의 일방적 운임비 산정 체계 하에서 화물노동자의 장시간 노동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는 것이 이유다. 이들은 ‘밑바닥 운임’의 요인은 지난 20여 년간 오르지 않은 운임비, 월 20~30만원의 지입 수수료, 다단계운송거래에 따른 ‘중간 착취’ 등이므로 구조적인 접근을 통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 사진=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제공

“실제 정책 목표 못 이룰 것” 우려도 일어

이번 발전방안을 노동계 일부 시각에서만 봐선 곤란하다는 견해도 있다. 이태형 물류연구본부 연구위원은 8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수십차례 협의를 통해 다른 이해 주체들 간의 합의를 도출해냈다. 문제가 있겠지만 모두를 만족시킬 방안을 만들기가 어렵다”면서 “전자상거래나 소품종 다량의 화물 수요가 늘어났지만 (1.5톤 이하) 배송차량이 많이 부족해 (회사들이) 자가용을 화물차로 쓸 정도였다. 택배 운송용에 한해서 공급을 풀기로 한 것”이라 지적했다.

무분별한 규제완화로 볼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이 연구위원은 “1.5톤 미만 차량 규제를 다 풀었다고 오해할 수 있지만 ‘직영’ 조건을 다는 등 까다로운 진입 규제를 달아놓았다”다고 강조했다. ‘참고원가제’ 도입으로 영세차주 보호대책도 마련했다는 입장이다. 그는 “2008년 TF팀을 만들어 표준운임제를 논의했었지만 운임고정화는 수요, 공급이 탄력적인 화물시장에서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났었다”면서 “시간당 비용, km당 비용 등을 조사·산정해 원가 기준을 확립하고 이를 화주나 운송주선업체에 제시하면 충분히 가이드라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 대책이 현실적합성이 현저히 떨어져 그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 보고 있다. 정부가 10~20만대 규모로 알려진 불법증차 현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수급 조절을 완화했을 때 “사회적 말썽”이 더 양산될 것이란 평가다. 정부는 ‘20대 직영 조건’을 통해 향후 신규로 증차될 차들의 ‘지입’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 보고 있으나 현 화물시장의 이윤구조에서는 결국 지입제도를 벗어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김수현 물류산업연구원 부원장은 “행정시스템이 제대로 안돼있는 상황에서 번호판 천국을 만들 수도 있다. 시장조사가 완벽히 되고 나서 제도개선이 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이라면서 “차 한 대 주인이 두 명, 등기부등본이 두 가지 존재하는 지입제도가 있는데 이런 행정상태에서 제도를 고쳐봤자 (직영으로 진입한 차량도) 3~4년 안에 다시 지입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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