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과 편집자는 원래 다 사귀고 그러는 거 아니야?”(저자 A씨)
“작가님, 우리 애들(편집자들) 얼굴도 몸매도 너무 예쁘지 않아요?”(사업주 B씨)
“작가님 덕분에 니들 월급이 나오는데 니 허벅지 만진게 그렇게 문제냐”(사업주C씨)

출판계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 중 80%가 업무와 관련해 성폭력을 직접 겪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서울경기지부 출판지부가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5일까지 전·현직 출판계 노동자 25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다. 

조사 결과를 보면 “업무와 관련해 성폭력을 직접 경험한 적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244(남녀 전체)명 가운데 68.4%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남성의 40%가 직접적 성폭력 경험이 있다고 답했고 여성의 경우 80% 가까이가 직접적 성폭력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유형을 보면 ‘언어적인 성폭력’이 53.7%로 주를 이뤘다. 한 저자는 여성 편집자에게 “회사에서 잡아준 호텔이 좋던데 혼자 자기 싫다. 나랑 자자”라고 말했다는 증언이 접수됐다고 출판지부는 밝혔다. 성폭력 피해를 공론화하고 S출판사를 퇴사한 탁수정 조합원은 “이런 일은 주로 작가 접대에서 이뤄진다”고 말했다. 

‘신체적인 성폭력’은 32%에 달했다. 한 여성 편집자는 작가와 사업주와 함께 하는 회식 자리에서 작가에게 두 차례 강제로 키스를 당했으나 문제제기를 할 수 없었다. 또 다른 편집자는 회식 이후 자는 도중 상사가 신체 일부를 만졌으나 항의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 2014년 S출판사 성폭력 문제로 항의하고 있는 언론노조 조합원들. 사진=언론노조 이기범 기자
착석, 술 따르기, 노래 부르기, 안마 강요, 강압적 데이트 신청 등과 같은 ‘성적 서비스 강요 성폭력’이 27.5%로 뒤를 이었고 ‘기타’ 응답에는 ‘성관계 요구’도 있었다고 출판지부는 밝혔다. 탁 조합원은 “여성 출판 노동자에게 성적 서비스 강요는 아무렇지 않게 일어난다”고 말했다.

특히 이는 비정규직일 경우 더욱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규직의 63% 가량이 직접적 성폭력을 경험한 반면 비정규직의 경우 82% 가량이 직접적 성폭력을 겪었다고 답했다. 고용형태가 불안할수록 성폭력의 위험에 더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성폭력 가해자(복수 응답 가능)는 직장 상사가 56.6%, 저자 및 역자 44.6%, 사업주 40.4%, 직장 동료 12.7% 순으로 나타났다. 성별에 따른 분석을 보면 여성은 74.6%가 가해자를 밝힌 반면 남성 피해자는 51명 가운데 15명(29.4%)만이 가해자를 밝혔다. 

하지만 높은 성폭력 직접 경험에도 불구하고 문제제기를 했다는 응답자는 22%에 불과했다. 문제제기를 한 비율은 여성과 남성 모두 비슷했고 고용형태로 봤을 때는 역시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의 문제제기 확률이 낮았다고 출판지부는 밝혔다. 

출판계의 성폭력 비율이 이처럼 높은 이유를 묻는 문항(복수 응답 가능)에는 ‘저자, 거래처, 상사 등 가해자와의 불평등 관계’ 소위 ‘갑을관계’ 때문이라는 응답이 88.4% 에 달했고 ‘문단 및 출판계 인적 네트워크의 폐쇄성’ 때문이라는 응답이 61.2%에 달했다. 소위 “이 바닥 좁다”는 것. 

이어 ‘비정규직 확대나 해고 일상화 등 고용 안정성이 낮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43.2%, ‘성희롱 예방교육이나 대응 매뉴얼이 부재하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44.4%로 뒤를 이었다. 성희롱 예방교육을 받았다는 응답자는 55%에 불과했고 그 중 38.3%는 실효성은 없었다고 답했다. 

탁 조합원은 “출판계가 좁다는 이유 등으로 출판계 내에서 성폭력을 겪고도 끝까지 싸우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며 “숨어야 하는 건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고 ‘이 바닥 좁다’는 말이 피해자보다는 가해자를 향하는 문화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출판노조는 출판계 양대 사용자 단체(한국출판인회의·대한출판문화협회)가 협력해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할 필요가 있으며 △각 회사는 물론이고 출판업계 자체의 성폭력 관련 지침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성폭력이 벌어진 사업장은 △각종 지원사업에서 배제돼야 한다는 지적 역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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