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붕’에 빠졌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된다는 건 언론이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결과다. 반성과 동시에 질문이 나온다. 언론은 왜 틀렸고, 무엇을 놓쳤나. 이번 사건이 한국 언론에 시사하는 건 무엇일까. 스타트업 미디어를 지원하는 메디아티에서 10일 토론회를 열고 분석했다.

강정수 메디아티 대표는 “미디어가 실패했던 가장 큰 이유는 트럼프의 워딩과의 전쟁을 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선거운동 기간 내내 거짓말을 쏟아냈다. 주한미군이 공짜로 한국을 지켜준다거나 기후변화는 과학적 근거가 없고 중국이 미국의 제조업을 약화시키기 위해 날조한 사기극이라고 말한 게 대표적이다.

언론은 트럼프의 말이 얼마나 근거가 없는 것인지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진실을 알리면 사람들이 변화한다는 전제 하에 전형적인 저널리즘의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 박상현 메디아티 콘텐츠랩장. 사진=금준경 기자.
그러나 트럼프는 끌려다니지 않았다. 강정수 대표는 “토론회에서 보면 트럼프는 거짓말을 하다 궁지에 몰리면 다른 주제로 넘어간다. 그게 또 거짓말이다. 다시 논쟁이 시작되면 또 다른 주제로 넘어 간다. 언론은 그의 워딩을 쫓아가기에 바빴다”고 말했다. 

박상현 메디아티 콘텐츠랩장은 “트럼프는 미디어를 이해했고. 미디어는 트럼프를 이해하는 데 실패했다. 주류미디어는 트럼프의 지지율이 올라가는 게 문제가 있는 상황이고, 국민들이 오해를 하고 있고 진실을 알려주면 지지율 상승은 멈춘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러나 지지층에게 트럼프가 옳은지 아닌지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여러 언론이 같은 소리를 내니 일종의 확증편향이 생겼다. 박상현 랩장은 “자신이 말한 소리가 울려서 자신에게 돌아오는 상황이 이어졌다. 언론들이 같은 목소리를 내니 당연히 클린턴이 당선된다고 본 것이다. FiveThirtyEight(미국선거분석 사이트)은 어제 10시만 해도 클린턴이 300석의 선거인단을 확보한다는 식으로 보도했고, 개표 도중 상황이 예상과 달라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선거인단을 302석까지 내다봤다”고 말했다.

언론이 ‘워딩’의 함정에 빠져 보지 못한 건 ‘보터(유권자)’였다. 강정수 대표는 “트럼프가 뜨면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분석해야 했으나 워딩에만 집중한 게 미디어가 성찰해야 할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분석이 나왔듯 트럼프 당선에 기여한 건 예상치 못한 투표층이었다. 외곽지역에 거주하는 저소득층은 기성정치권 자체를 불신해 트럼프를 택했고, 몰락한 제조업 도시에 거주하며 박탈감을 느끼는 이들은 더 이상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았다.

▲ 도널드 트럼프. 사진=Wikimedia Commons
강정수 대표는 “펜실베니아, 위스콘신, 오하이오, 미시간은 구 산업지역으로 우리나라의 창원, 울산 같은 곳이다. 민주당 지지가 강했는데 이번에는 트럼프를 지지했다”면서 “브렉시트를 주도한 층들도 이들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들은 상실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미디어는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강정수 대표는 주목할만한 보도도 소개했다. WNYC(뉴욕 공영 라디오 방송)는 트럼프 지지층을 만났다. 문제의식은 “자신의 지위를 잃어버린 상실감, 두려움의 실체가 무엇인가. 사람들은 왜 두려워하나”다. 매주 1개 에피소드씩 7편을 제작했다.

강정수 대표에 따르면 에피소드5에 한 부부가 등장해 백인의 상실감을 언급했다. 트럼프 지지층을 비난하거나 잘못된 생각을 갖는다는 식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그들의 삶을 그대로 드러내고 때론 감동적으로 다루며 그들이 트럼프를 선택하는 이유를 조명했다. 그는 “‘무식한 백인마초가 세상 망치고 있다’는 게 페북 정서인데 여기에는 실체적인 접근이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사회도 예외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상현 랩장은 “전세계가 비슷하게 가고 있다.  박근혜 정권 탄생 배경도 트럼프와 같았을 수 있다”면서 “한국의 트럼프 지지층이 누군지 알아야 미국 미디어의 실패를 우리나라가 똑같이 반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대변되지 못하는 목소리들이 어디있는지 찾아내서 그 사람들의 얘기를 듣는 게 중요하다”면서 스타트업 미디어가 사각지대를 공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기존 언론이 소외된 이들을 다루지 않는 건 아니지만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는다는 게 강정수 대표의 견해다. “거제에 20대가 있다. 전문대 나오고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그들은 월급도 적은데 정규직보다 먼저 잘리고 있다. 언론에서는 이 같은 20대들의 목소리를 느낄 수가 없다”면서 “한겨레와 시사인에서 노동문제를 다루긴 하지만 노조와 비정규직 문제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지 개별 유권자들이 처한 환경과 경험을 들여다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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