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법과 제도를 개혁해도 지키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 핵심은 제도가 아니라 실천이며 그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받는 것.”

누구의 발언일까. 지난 2010년 4월17일 서강대학교 개교 50주년 행사에서 ‘명예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박근혜 대통령의 말이다. 서강대는 그를 “신뢰와 원칙을 존중하고 바른 가치로 한국정치의 새 희망을 일구어 온 자랑스러운 정치인”이라며 해당 학위를 수여했다.

서강대 학생들이 법과 제도를 부정하고 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위협한 박 대통령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줄 수 없다며 학교 측에 학위 박탈을 요구하고 나섰다.

▲ 서강대학교 총학생회, 사회과학부 학생회 및 정치외교학과 운영위원회, 대학원 총학생회 및 정치외교학과 대학원 학생회 등 서강대 내 학생 대표자들은 9일 오후 서강대학교 ‘진리의 탑’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 명예 정치학박사 학위 취소를 위한 공동행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서강대학교 총학생회, 사회과학부 학생회 및 정치외교학과 운영위원회, 대학원 총학생회 및 정치외교학과 대학원 학생회 등 서강대 내 학생 대표자들은 9일 오후 서강대학교 ‘진리의 탑’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 명예 정치학박사 학위 취소를 위한 공동행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공동행동 선언엔 모든 단과대학 학부 학생회부터 신학대학원 원우회, 동아리연합회, 장애학생연합회 및 학과 내 소모임 단위까지 함께해 높은 참여율을 보였다.

이들은 학교 본부 측에 박 대통령에게 수여한 명예 정치학 박사 학위를 즉시 박탈할 것, 향후 원칙없는 명예학위 수여를 반복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학위를 박탈할 제도적 근거가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서강대학교 대학원 학칙 제42조는 “학위를 받은 후 그 명예를 손상하는 행위를 했을 경우에는 총장은 학위수여를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52조는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한 자에 대해 “학위를 수여한 학교의 장은 학위를 받은 자가 그 명예를 손상한 경우에는 대학원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그 학위수여를 취소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 서강대 내 학생 대표자들은 9일 오후 서강대학교 ‘진리의 탑’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 명예 정치학박사 학위 취소를 위한 공동행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 ‘박근혜 대통령 명예 정치학박사 학위 취소를 위한 공동행동’에 참여한 학생들은 기자회견이 끝난 후 학교본부 측에 학위 박탈 요청 공문을 전달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명예 손상 행위’가 명백하게 드러났다는 것이 학생들이 입장이다. 김종혁 일반대학원 학생회장은 “(박 대통령은) 신뢰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꿈이 있고 이를 위해 국민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것이 신뢰의 첫 걸음이라며 자신 있게 학위를 받는 것이 학교의 명령이라고 말했다”며 “박 대통령은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민간인에게 넘겨 신뢰를 무참히 무너뜨렸다. 신뢰사회를 만들라는, 서강의 이름 빛내달라고 한 명령에 불복종한 것이고 여기엔 책임과 징계만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양수민 정치외교학과 운영위원회 학생대표는 발언에 나서 “헌법을 지키고 수호해야 할 대통령이 헌정질서를 다 흔드는 상황인데 이를 어찌 명예롭다 할 수 있느냐”면서 “자격없는 이들이 자격있다고 말해지는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분노한다”고 비판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학생들의 명예박사 학위 박탈 요구가 일어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카이스트 총학생회, 대학원 총학생회 및 전국대학생 시국회의는 지난 3일 학교 본관 앞에서 '박근혜 KAIST 명예박사 철회촉구대회‘를 열었다. 박 대통령은 2008년 서남표 당시 총장으로부터 명예 이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 2010년 4월17일 박근혜 대통령이 학위 수여를 받을 당시 기념식장 내에 걸렸던 현수막. 사진=서강대 졸업생 제공

박 대통령이 명예박사학위를 받을 당시, 일부 서강대 학생들은 학위 수여에 반대하는 직접 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2010년 4월17일, 인문학부 소속 재학생 3인은 “아부지 뭐하시노? 독재잔데예”가 적힌 현수막을 직접 제작해 박 대통령이 학위 수여를 위해 단상에 오를 시각에 맞춰 기념식장 내에 걸었다. 현수막은 5분도 채 되지 않아 철거당했다. 서강대학교 교직원 및 학교 홍보대사를 맡은 재학생들이 즉시 현수막을 철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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