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 : 7월26일~9월19일
에피소드 Ⅰ. TV조선이 시작한 최순실과의 전쟁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국면의 시작은 7월26일 TV조선 리포트였다.

TV조선은 “미르재단이 설립 두 달 만에 대기업에서 500억 원 가까운 돈을 모았는데, 안종범 대통령 정책조정수석비서관이 설립 모금과정에 깊숙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삼성·현대·SK·LG·롯데 등 자산총액 5조원 이상 16개 그룹 30개 기업이 미르 재단에 돈을 냈는데, 설립 두 달 만에 486억 원을 모았다는 내용이었다. TV조선은 7월27일 “안 수석 말고도 미르 재단에 영향력을 행사한 막후 실력자가 있었다”며 CF감독 차은택을 거론했다. “공직사회에선 차씨가 하는 행사마다 대통령이 나타나 장관보다 센 비상근 공직자로 불렸다. 대통령에게 심야 독대보고를 한다고 자랑했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TV조선 7월26일자 보도화면 갈무리.
TV조선은 8월2일 K스포츠재단을 등장시켰다. “전경련이 중간에 나서 기업 돈을 모아 준 곳은 미르뿐만이 아니었다. K스포츠라는 체육재단법인에도 380억 원 넘게 거둬준 것으로 확인됐다.” TV조선은 “미르와 K스포츠의 창립총회 회의록을 단독 입수해 비교해봤더니, 이사진 이름과 모금액을 빼곤 토씨하나까지 거의 똑같았다. 수상한 두 재단의 배후가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보도했다. 포위망은 ‘최순실’로 좁혀지고 있었다. 그러나 청와대가 송희영 조선일보 주필을 ‘부패기득권세력’으로 겨냥하며 TV조선 보도는 중단됐다. 다른 언론사에서도 관련 기사는 찾기 어려웠다.

2기 : 9월20일~10월14일
에피소드 Ⅱ. 적진에 홀로 선 조자룡처럼, 최순실을 흔든 한겨레

한겨레는 9월20일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인 최순실씨가 K스포츠재단 설립과 운영에 깊숙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며 “K스포츠재단 이사장 자리에 자신이 단골로 드나들던 스포츠마사지센터 원장(정동춘)을 앉혔다”고 단독 보도했다. 최순실이 박근혜정부 비선실세 의혹의 전면에 등장한 순간이었다.

정동춘씨와 함께 운동기능회복센터를 운영한 적 있는 이아무개씨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저도 최순실님으로부터 (K스포츠재단 참여) 제의를 받았다. 정 박사님(정동춘 이사장)은 인품도 훌륭하고 스펙도 준비가 된 분이니 최순실님이 제안을 하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겨레는 청와대 관계자 말을 인용해 “권력의 핵심 실세는 정윤회가 아니라 최순실이다. 정윤회는 그저 데릴사위 같은 역할을 했을 뿐이다”, “문고리 3인방은 생살이고, 최순실은 오장육부다. 생살은 피가 나도 도려낼 수 있지만 오장육부에는 목숨이 달려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의 파장은 컸다.

한겨레 9월27일자 1면.
9월22일 한겨레는 “이석수 청와대 특별감찰관이 지난 7월 주목했던 인물이 안종범 정책조조정수석”이라고 전하며 이석수 감찰관이 밀려난 배경을 두고 “특별감찰관이 건드려서는 안 될 것을 내사한 데 대한 (박 대통령의) 극도의 당혹감과 불쾌감이 반영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9월27일 한겨레는 ‘딸 지도교수까지 바꾼 최순실의 힘’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담당교수가 제적 경고를 하자 최순실씨 모녀가 찾아와 그날로 교수가 교체됐다”고 보도했다. 최씨의 딸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특혜의혹이 전면에 등장한 순간이었다.

의혹은 봇물 터지듯 등장했다. 한 대기업 계열사 임원은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9월28일 그룹 차원에서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이나 재단 설립과 관련한 자료는 모두 없애라는 요청이 왔다”고 주장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박병원 회장이 지난해 11월 전경련 주도의 미르재단 모금 과정에 문제를 제기했던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다. 박병원 회장은 “대기업들 발목을 비틀어 450억~460억 원을 내는 것으로 굴러가는 것 같다”고 말했는데, 이 발언이 담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회의록은 박 회장의 발언이 통째로 빠진 채 국감자료로 제출돼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최순실 관련 증인출석을 원천 봉쇄한 새누리당의 ‘방탄 국감’으로 국정감사는 의혹 규명에 있어 큰 소득을 거두지 못하고 끝났다.

이런 가운데 10월12일 한겨레는 “3년 전 최순실씨 딸의 승마 문제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이 ‘나쁜 사람’이라고 지칭해 좌천됐던 문화체육관광부 국장과 과장이 최근 강제로 공직에서 물러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이들의 사퇴에는 박 대통령이 ‘이 사람들이 아직도 있어요?’라며 공직에 남아 있는 걸 문제 삼은 게 결정적인 작용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최씨를 끔찍이 배려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한겨레는 10월 들어 이화여대 정유라 특혜의혹 또한 집중 취재했다. 한겨레는 “이대는 애초 체육특기생 종목이 11개였으나 그해 종목을 12개 추가했고, 그 12개 중 승마에서만 유일하게 체육특기생을 선발했는데 그게 바로 정씨였다. 입시요강엔 ‘원서 마감일 기준 3년 이내의 수상 내용을 평가’하게 돼 있었으나 마감 이후 치러진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정씨가 합격했다”고 보도했다. 10월17일 한겨레는 최순실씨가 머물던 독일 현지에서 정유라씨가 훈련해온 곳으로 알려진 예거호프와 호프구트 승마장 부근을 찾아냈다. 한겨레 보도 이후 수많은 취재진이 독일로 건너가 최순실을 쫓기 시작했다.

3기 : 10월15일~10월23일
에피소드 Ⅲ. 새누리당 ‘송민순 회고록’ 북풍몰이도 안 먹혔다

북풍몰이의 도구로 쓰였던 송민순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 ⓒ연합뉴스
2007년 11월 유엔의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 당시 참여정부가 북한에 의견을 물었다는 내용의 송민순 회고록이 10월15일 주요언론에 등장했다. 새누리당은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를 향해 ‘종북’공세를 펼쳤다. 실제로 10월17일 언론보도는 송민순 회고록의 진위여부에 집중하며 최순실 비선실세 의혹보도의 수위가 낮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북풍몰이는 실패했다. 언론은 “최순실이 청와대를 등에 업고 기업으로부터 돈을 뜯어내 설립한 공익법인을 자신의 딸을 위한 사적 목적에 이용했다”(한겨레)는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고 있었다.

10월18일 경향신문은 “K스포츠재단이 한 재벌기업에 80억원의 추가 지원을 요구하며 명목으로 제시한 프로젝트 주관사가 ‘비선 실세’ 최순실씨와 그의 딸 정유라씨가 소유한 독일 회사 ‘비덱(WIDEC)’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K스포츠재단이 재벌들로부터 수백억 원으로 추정되는 자금을 지원받아 ‘비선 실세’인 최씨 일가 회사에 운영을 맡기려 한 것이었다. 이 회사 주주 명부에는 최순실씨의 개명 후 이름인 최서원씨와 최씨 딸 정유라씨 두 명만 올라 있었다. 경향신문은 “K스포츠재단 등의 자금 일부가 이미 비덱으로 흘러들어가 운영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JTBC는 “최순실 씨가 K스포츠재단 설립 하루 전 ‘더블루K’라는 스포츠 마케팅 회사를 세웠고 이 회사는 K스포츠재단을 배경으로 돈벌이를 해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K스포츠재단 직원이 최 씨 회사인 ‘더블루K’에 매일같이 출근하며 사실상 최 씨를 수행했다는 정황도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TV조선은 “최순실씨가 미르재단 해체직전인 8월19일 재단의 전 사무총장을 만나 ‘조용히 있어달라’고 회유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10월19일 SBS도 “비덱이 K스포츠재단을 등에 업고, 국내 대기업들에 거액의 투자를 요구한 걸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10월19일은 지상파3사 가운데 SBS가 처음으로 최순실 관련 리포트를 주요 꼭지에 배치한 날이었다.

TV조선은 이날 정유라씨에게 제적 경고를 했다가 지도교수에서 교체된 이화여대 함 아무개 교수와 인터뷰를 내보냈다. 함 교수는 “최씨가 전화를 걸어와 교수 같지도 않은 이런 뭐 같은 게 다 있냐고 말했다”고 밝혔다. 당시 학장은 함 교수에게 “정윤회씨 부인이니 잘하라”고 말했다고 전해졌다. 함 교수는 “저는 정씨가 자퇴했으면 좋겠다. 그게 가장 옳은 답”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10월19일 최경희 이대 총장이 논란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그리고 이날, JTBC는 “최순실 씨의 핵심 측근 고영태씨의 증언 중에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최순실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을 손보는 일까지 했다는 것이었다”고 보도했다. 고영태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부터 들고 다닌 핸드백 가방을 만든 사람이다. 고 씨는 “회장이 제일 좋아하는 건 연설문 고치는 일”, “연설문을 고쳐놓고 문제가 생기면 애먼 사람을 불러다 혼낸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10월21일 조선일보는 “정치권에선 박대통령 연설문에서 이상한 부분이 가끔 나온 것이 그 영향(최순실 연설문 수정)때문 아니냐는 의문이 계속 이어졌다”며 의혹을 증폭시켰다. 조선일보는 ‘간절하게 원하면 전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2015년 어린이날 행사)와 같은 발언을 예로 들며 “대통령 연설문 단어로는 쉽게 생각하기 힘든 말이었다”고 전했다. 물론 청와대는 “봉건시대에나 있을 일”(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이라며 무시했다. 그러며 다음 카드를 준비했다. ‘개헌’이었다.

10월24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개헌을 하겠다고 발표하는 모습. ⓒ채널A 화면 갈무리
4기 : 10월24일~10월25일
에피소드 Ⅳ. JTBC의 ‘일격’에 날아간 박근혜의 조커, ‘개헌’

10월24일자 조간은 ‘개헌’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날 한겨레는 ‘더블루K’ 관계자로부터 입수한 면담(회의) 일지를 확인한 결과, “청와대가 미리 K스포츠재단에서 시범단을 보내기로 결정하고 K스포츠재단은 한 달여 만에 시범단을 급하게 꾸린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그저 민간인 기구에 불과한 K스포츠재단으로서는 엄청난 특혜”라고 설명한 뒤 “대통령의 비선실세로 불리는 최순실씨의 ‘권력’을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대목”이라고 보도했다.

한국일보는 “최순실과 차은택을 연결한 진짜 고리는 최씨의 조카 장시호”라고 보도했다. 장시호씨는 최씨 소유인 독일 페이퍼컴퍼니 ‘비덱 스포츠’의 설립운영 과정에도 일부 관여한 사실이 확인됐다. 한국일보는 “장씨는 승마선수를 그만둔 이후 광고감독인 차은택씨와 친분이 쌓여 이모인 최씨에게도 그를 소개해 줬다”고 보도했다.

이날 오전, 박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 등장해 매우 뜬금없이 개헌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개헌 논의를 통해 최순실 국정농단 프레임을 무력화시키려는 의도였다. 실제로 이날 KBS와 MBC 메인뉴스는 개헌 리포트로 가득했다. 다른 언론사도 사정은 비슷했다.

JTBC 10월24일자 보도화면 갈무리.
그런데 이날 JTBC가 최순실씨가 사용한 태블릿PC에 담긴 국정농단 증거를 꺼내며 흐름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JTBC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철학이 가장 잘 녹아있다고 평가받는 2014년 3월 독일 드레스덴 연설문을 최순실씨가 하루 전에 받아본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비선실세 국정농단의 ‘명백한’ 물증이 나타난 첫 장면이었다. JTBC는 “2012년 12월31일 공개된 박 대통령 당선 첫 신년사도 최 씨는 공식적으로 공개되기 하루 전에 받아본 것으로 드러났다”며 “최 씨에게 건네진 연설문은 최씨를 거친 뒤에 내용이 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보도했다.

다음날인 10월25일, 조선일보는 전날 JTBC 보도를 인용하며 “박 대통령은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기자와 별 내용 아닌 통화를 한 것을 두고 ‘국기 문란’이라고 검찰에 수사를 지시했었다. 최씨 국정 농단이 사실로 확인되면 이것은 그와 비교할 수 없는 국기 문란”이라며 사안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한겨레는 JTBC에 이어 충격적인 기사를 내보냈다.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은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최순실씨가 거의 매일 청와대로부터 30㎝ 두께의 ‘대통령 보고자료’를 건네받아 검토했다”고 폭로했다. 이성한 전 사무총장은 “최씨는 주로 자신의 논현동 사무실에서 각계의 다양한 전문가를 만나 대통령의 향후 스케줄이나 국가적 정책 사안을 논의했다”고 말했으며 “최씨는 이런 모임을 주제별로 여러 개 운영했는데, 일종의 대통령을 위한 자문회의 성격이었다”고 덧붙였다. 이 전 사무총장은 “자료는 주로 청와대 수석들이 대통령한테 보고한 것들로 거의 매일 밤 청와대의 정호성 제1부속실장이 사무실로 들고 왔다”고 밝혔다.

비선 모임의 논의 주제와 관련해서는 “한 10%는 미르·K스포츠 재단과 관련한 일이지만 나머지 90%는 개성공단 폐쇄 등 정부 정책과 관련된 게 대부분으로 최순실씨는 이를 ‘박근혜 대통령의 관심사항’이라고 표현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모임에서는 인사 문제도 논의됐는데 장관을 만들고 안 만들고가 결정됐다”고 밝혔다. 이성한 전 사무총장은 “이런 얘기는 통념을 무너뜨리는 건데, 사실 최씨가 대통령한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시키는 구조다. 대통령이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없다. 최씨한테 다 물어보고 승인이 나야 가능한 거라고 보면 된다. 청와대의 문고리 3인방도 사실 다들 최씨의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JTBC와 한겨레의 보도가 연달아 등장하며 여론이 급격이 나빠진 25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은 1차 대국민사과를 발표했다. 개헌국면은 하루 만에 끝났다.

JTBC는 25일 밤 “최순실씨가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독대하기에 앞서 만든 사전 시나리오도 받아봤다”고 보도했다. 당시 시나리오에는 군이 북한 국방위원회와 3차례 비밀접촉을 했다는 안보 기밀도 적혀있었다. JTBC는 2013년 7월30일 박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경남 거제시 저도에서 찍은 사진 5장을 올렸던 사실을 언급하며 “최순실 태블릿PC파일에는 페이스북에 공개된 사진 외에 미공개 사진 8장이 추가로 발견됐다”고 전했다. JTBC는 “최씨가 이 사진을 받은 건 페이스북 공개 시점보다 이틀 빠른 7월28일”이었다며 “최씨가 대통령 휴가지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TV조선 10월25일자 보도화면 갈무리.
▲ TV조선 10월25일자 보도화면 갈무리.
TV조선은 같은 날 최순실씨와의 인터뷰 장면을 언론사 가운데 최초로 공개하며 특종을 냈다. TV조선은 최순실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의상만을 전담한 것으로 알려진 의상실에 출입해 의상 제작을 직접 지시하는 장면이 포착된 영상도 단독 공개했다. 2014년 11월3일 찍힌 영상에는 최씨가 초록색 재킷과 푸른색 재킷 두 벌을 직접 검수하며 직원들에게 지시를 하는 모습이 담겼다. 해당 재킷은 모두 박대통령이 3일 이후 해외순방에서 입었던 옷이었다.

청와대 행정관들이 민간인 최씨의 지시를 받는 정황도 확인됐다. TV조선이 공개한 2014년 11월3일 의상실 영상에는 이영선 청와대 행정관과 윤전추 행정관이 등장했다. 이 행정관은 최씨에게 온 전화를 대신 전달하거나 음료수를 책상에 정렬하는 등 최씨의 심부름을 맡았다. 이 행정관이 최씨에게 전화를 전달하기 전 휴대전화 화면을 옷으로 닦고 통화가 끝난 후 최씨가 건넨 휴대전화를 두 손으로 받는 모습은 비선실세 최씨의 ‘권세’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5기 : 10월26일~11월3일
에피소드 Ⅴ. 정치적 사망선고 받은 대통령, 언론의 파상공세, 그리고 최순실의 귀국

10월26일,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았다. 조선일보는 “박 대통령은 이 시간 이후로 국내 정치에서 완전히 손을 떼겠다고 선언하고 그 분명한 행동으로 여당을 탈당해야 한다. 내년 대선에 대해서는 관심을 버리고 중립적 관리 역할로 남을 것임을 천명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지금 모습으로 대선에 개입한다는 것 자체가 허망한 일이다”라고 주장했다.

같은 날 한겨레는 “부정비리는 역대 정권에서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사안은 그것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엽기적인 사건이다”라고 지적한 뒤 “지금 대한민국은 21세기 민주사회는커녕 봉건시대만도 못한 부끄러운 나라로 전락하고 말았다”며 현실을 개탄했다. 한겨레는 “이번 사태로 박 대통령은 사실상 정상적인 직무수행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고 못 박았다.

대통령이 국정동력을 잃은 가운데, 언론의 파상공세는 이어졌다. JTBC는 “2013년 1월 일본 특사단 접견 시나리오까지 최순실씨가 9시간 먼저 받아봤다”고 보도했으며, 청와대와 최순실씨의 연결고리로 김한수 청와대 행정관과 청와대 실세로 불리는 문고리 3인방인 정호성 비서관을 지목했다. JTBC는 “정호성 비서관이 최순실씨와 상의를 거쳐 (대통령) 최종원고가 완성 된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TV조선은 “최순실씨가 청와대를 통해 딸 정유라씨와 연관된 입시 정보와 자신이 소유 중이던 땅과 건물 주변의 개발 정보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TV조선에 따르면 최씨는 국토교통부의 미공개 수도권 개발 관련 정보를 청와대를 통해 미리 얻어 부동산 재산 증식에 활용했고, 18억 원의 차익을 남겼다. TV조선은 최씨와 측근들이 박 대통령의 역점 사업인 ‘문화융성’ 관련 예산안을 직접 만들고 검토했던 문건을 입수해 보도했다. 예산안과 사업계획서는 1800억 규모다.

▲ 10월31일 검찰에 출석한 최순실씨를 둘러싼 취재진의 모습. ⓒ이치열 기자
이런 가운데 10월27일 최순실은 세계일보 인터뷰에 응했다. 10월28일 세계일보 지면에서 최씨는 “2012년 대선 전후 (박 대통령의) 마음을 잘 아니까 심경 표현에 대해선 도움을 줬다”고 말했으며 대통령 연설문 사전 입수에 대해선 “국가기밀인지도 몰랐다. (문제가 된다는 걸) 알았다면 손이나 댔겠느냐”고 주장했다. 외교안보 문서까지 봤다는 의혹에는 “전혀 기억이 없다. 뭐가 진실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강남 사무실에서 정호성 청와대 비서관이 들고 온 청와대 보고서를 매일 열람했다는 증언에 대해서는 “말도 안 된다”고 반박했으며 정호성 비서관에 대해선 “청와대에 들어간 뒤에는 만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최씨의 인터뷰는 화제를 모았으나 비선실세라는 의혹에는 변함이 없었다. 중앙일보는 10월28일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인터뷰를 내놓았는데 유 전 장관은 “내가 장관직을 그만둔 뒤로 (최순실 측근) 차은택씨가 문체부에서 전권을 휘두른다는 이야기가 들렸다”며 “직원들 말로는 거의 모든 업무에 관여했다더라. 장·차관이 결재하다 모르면 차씨에게 전화해 물어본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8일 밤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에게 일괄적으로 사표 제출을 지시했다.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 우병우 민정수석, 안종범 정책조정수석, ‘문고리 3인방’ 정호성 부속비서관, 이재만 총무비서관, 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이 모두 교체됐다. 그리고 10월30일 최순실씨가 황급히 귀국했다. 검찰은 31일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한 최순실씨를 상대로 박 대통령 연설문 초안 유출과 인사 개입 등 국정농단,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을 위한 강제모금 등 비리 의혹을 조사하던 중 긴급체포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와의 연결고리는 강해졌다.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은 11월2일자 한겨레 인터뷰에서 “4월4일 안종범 수석이 먼저 전화를 걸어와 ‘대통령께서 그동안 수고 많으셨다는 뜻을 전하라고 하신다’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다시 ‘대통령께서 정말 그렇게 말씀하신 게 맞냐’고 반문했더니 ‘그렇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의 직접적인 재단 개입을 증명하는 증언이었다. 이 전 사무총장은 “이슈가 있을 때마다 안 수석이 전화를 해 ‘대통령의 뜻’이라며 의견을 전달해왔다”고 주장했다.

11월3일 서울신문은 “‘청와대 사람들’은 최순실씨를 누구보다 싫어했다. 대통령 관저와 관저 주변을 담당하는 경호 공무원과 청소 및 식당 담당 기능직 직원들에게 최씨는 ‘청와대 저녁을 즐기러 오는 사람’쯤으로 간주됐다”며 청와대 내부 분위기를 단독 보도했다. 서울신문은 “대통령 관저인데, 이것저것 관여하고 자기 집처럼 굴며 ‘청와대 사람들’을 귀찮게 한 것 같다”는 내부 분위기를 전한 뒤 “청와대에는 사슴도, 청설모도 비표가 있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정직원도 비표 없이는 출입이 까다롭다는 얘기다. 그러나 최씨는 유일한 예외였다”고 보도했다.

11월3일 동아일보는 “최순실씨의 조카 장시호씨가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 중인 스포츠 유망주 교육시설인 K스포츠타운을 장악하기 위해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와 스포츠마케팅회사 더케이엠을 세웠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조선일보는 “삼성이 정유라가 출전하는 종목인 마장마술에 186억원 지원을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한국일보는 대한승마협회 회장과 부회장인 삼성전자 사장과 전무가 최순실씨의 귀국 직전 최씨 모녀가 머물던 독일로 극비리에 출국한 사실을 보도하며 "최순실 게이트 수사가 삼성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고자 현지에 남은 최씨 주변 인사들과 입 맞추기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청와대는 황교안 국무총리를 ‘문자해고’하고 김병준 국무총리를 지명하며 ‘인적쇄신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박근혜 퇴진’을 주장하며 촛불을 들었다. 한국갤럽은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5%라고 발표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또 한 번 대국민 사과를 해야만 했다.

6기 : 11월4일~현재
에피소드 Ⅵ. ‘공범’이 되어버린 대통령, “사이비종교는 아닙니다”

▲ 11월4일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모습. ⓒ연합뉴스
“제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곁을 지켜주었기 때문에 저 스스로 경계의 담장을 낮추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돌이켜보니 개인적 인연을 믿고 제대로 살피지 못한 나머지 주변사람들에게 엄격하지 못한 결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저 스스로를 용서하기 어렵고 서글픈 마음까지 들어 밤잠을 이루기도 힘이 듭니다. …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합니다. … 심지어 제가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거나 청와대에서 굿을 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데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박 대통령이 11월4일 두 번째 대국민 사과에 나섰지만 이날 경향신문은 통단 사설로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다. 경향신문은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국무위원과 청와대 참모를 마다하고, 집권당과의 협력도 포기한 채 1인 통치, 그것도 최씨의 조언과 지침에 충실히 의존한 1인 통치를 했다”며 “주권자인 시민은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통치의 원천이 고갈되었고 대통령은 권력을 행사할 정당성을 완전히 잃었다. 박 대통령은 이 엄연한 현실을 받아들여 즉시 사임을 선언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11월5일 광화문에는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촛불이 등장했고, 대부분의 방송사는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11월5일 한겨레는 “미르·K스포츠 재단은 애초 10대 그룹이 600억 원을 출연하는 것으로 규모가 잡혔으나 박근혜 대통령이 이를 ‘30대 그룹이 1000억 원을 내도록 하라’고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한겨레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지난해 7월24일과 25일 이틀 간 세 차례에 걸쳐 대기업 총수들을 만나 재단 설립의 취지를 설명하고 삼성 이재용, 현대자동차 정몽구, SK 김창근, LG 구본무, 롯데 신동빈 등 대기업 총수 7명을 따로 청와대로 불러 적극적인 지원을 당부했다.

11월6일 TV조선은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이 최씨 측근 차은택씨로부터 “우병우 민정수석이 내 뒤를 봐주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말을 들었다고 보도했다. TV조선에 따르면 이 전 사무총장은 대기업에게 돈을 모금하며 차씨에게 “이런 식으로 재단을 운영하다 나중에 문제 생기면 어쩌냐”고 물었고 차씨가 우 전 수석의 명함을 보여주며 이같이 말했다.

11월7일 동아일보는 “검찰이 최씨가 국무회의를 포함해 정책현안과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 기금 모금 등을 휴대전화로 정호성 전 비서관에게 지시한 단서를 포착했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정 전 비서관이 최씨 지시에 절대적으로 따르며 복종한 내용도 있다”며 “사실상 대통령 행세를 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11월8일 중앙일보는 “두 사람이 주고받은 대화를 보면 최씨가 상사로서 정 전 비서관에게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말투라서 검찰 수사관이 깜짝 놀랐다고 한다”고 전했다.

▲ JTBC 11월8일자 보도화면 갈무리.
11월8일 JTBC는 최씨 모녀가 자주 다니던 강남 성형외과 원장이 박근혜 대통령 해외순방에 세 차례 동행했고 이 병원 제품이 청와대 명절 선물세트로 들어갔다며 특혜 의혹을 단독 보도했다. JTBC는 “조원동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2014년 2월26일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돕는 컨설팅 업체 대표 이아무개씨에게 전화를 걸어 ‘실을 이용해 피부 시술을 하는 뛰어난 병원과 회사가 있는데 해외 진출을 도와주라’는 요청을 했다”며 청와대가 최순실 모녀 성형외과 원장까지 특혜를 주려했다는 내용을 전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9월20일 한겨레가 ‘최순실’을 처음 거론하며 비선실세 의혹을 제기한 뒤 10월8일을 기준으로 정확히 50일이 흘렀다. 50일전만 해도 기세등등했던 최순실·안종범·정호성은 포승줄에 묶였고 우병우·황교안 등 청와대 실세는 모두 추락했다. 대통령 지지율은 5%를 찍었다. 의혹은 끝없이 터져 나오고 있다.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사태는 현재진행형이다. 누구도 앞날을 예측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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