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유시영 구속’과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현대자동차 본사에서 청와대에 이르는 ‘30km 오체투지길’에 나섰다.

기온이 섭씨 0도까지 내려간 9일 오전 10시, 서울 강남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대법원에서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자택이 있는 용산구 한남동까지 6.8km의 오체투지 행진을 시작했다.

유성기업 노동자를 비롯해 ‘노조파괴 시나리오’의 피해자인 갑을오토텍 노조(전국금속노동조합 충남지부 갑을오토텍지회) 조합원, 금속노조 충남지부 관계자, 시민단체 활동가, 예수회 신부 등 22명이 이날 오체투지에 참여했다. 이들은 다섯 걸음을 걸은 후 무릎을 땅에 꿇고 두 팔과 이마를 차례로 땅에 댔다.

▲ 유성기업 범대위 및 오체투지 행진단이 9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법원을 출발해 한남동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자택을 향하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유성기업 범대위는 ‘법원에게 정의를 묻기 위해’ 대법원에서 행진을 시작했고 ‘정몽구 회장에게 유성기업 노조파괴 책임을 묻기 위해’ 정 회장 자택을 향했다.

오전 9시30분 “법원에게 정의를 묻는다”라는 제목으로 기자회견을 연 이들은 유시영 유성기업 대표이사에 대한 ‘솜방망이 구형’을 규탄하고 법원에 강력한 처벌을 촉구했다. 검찰은 지난 4일 근로기준법 및 노조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으로 기소된 유시영 대표이사에 1년을 구형했다. 2011년 노조파괴 시나리오의 일환이었던 직장폐쇄가 단행된 지 6년, 2013년 기소된 지 3년 만에 나온 구형이다.

이들이 ‘징역 1년’ 구형에 분노하는 이유는 지난 6년 간 지속됐던 유성기업의 노조탄압 수준이 그보다 심했다는 문제의식에서다. 유시영 대표이사를 비롯한 기업 관계자 7인과 유성기업은 불법적 직장폐쇄, 부당해고, 단체협약 거부, 복수노조 설립지원 및 금속노조 산하 노조 탈퇴 종용, 기존 노조 임금 차별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이 과정에서 지난 3월17일 유성기업 영동지회의 한광호 조합원이 노조탄압 및 표적 징계 등에 비관해 목숨을 끊는 사건도 벌어졌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법률대리인을 맡고 있는 김상은 변호사는 기자회견 발언에 나서 “법원은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김성태 당시 아산지회 지회장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어제는 관리부 사무실에 16절 크기 선전물을 붙였다는 이유로 24명이 1년 구형을 받았다”면서 “검찰, 법원이 얼마나 유성기업 노동자를 적대적으로 봐 왔는지를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 '노조파괴 범죄자 유성기업·현대차자본 처벌! 한광호 열사 투쟁 승리! 범시민대책위원회(유성범대위)'는 9일 오전 서울 대법원 정문에서 '법원에서 정의를 묻는다' 기자회견을 열고 유시영 회장에 대한 검찰의 '1년 구형' 규탄 및 엄중한 처벌을 요구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유성기업은 백화점식, 총집합 노조탄압을 일삼았다”고 지적한 김 변호사는 “대전지방법원은 법정 최고형인 징역 3년, 4년에 상응하는 선고를 내리기를 요구한다. 그러지 않을 지 판결 내렸던 판사들 이름을 노동자 탄압에 앞장섰던 유시영, 정몽구와 함께 영원히 역사에 남길 것임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말했다.

김성민 영동지회(금속노조 충남지부 유성기업 영동지회) 지회장은 “한광호 열사가 죽은 주된 요인은 내가 틀리지 않았는데 내가 틀렸다고 말한 검찰, 경찰, 노동부, 법원”이라며 “탄압은 있었는데 탄압은 처벌하지 않고, 탄압에 저항했다고 처벌하는 경찰과 검찰에 의해서 한광호는 죽은 것이다. 분명한 사실”이라고 발언했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 주장도 제기됐다. 이날 오체투지 행진에 참여한 정원영 금속노조 충남지부장은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를 볼 때, 박근혜 대통령은 퇴진해야 하고 재벌을 위한 노동시장 구조개악은 완전 폐기돼야 한다”면서 “사실상 ‘이명박근혜’라는 정권의 비호 아래 재벌의 사주로 유성기업을 비롯한 전국의 노조파괴 문제가 발생했다. 반드시 이번 기회를 통해 국정을 바로잡고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오체투지 행진은 오는 11일까지 5일 동안 계속된다.

‘한광호 열사 추모의 길’ 이름을 붙인 지난 7일 행진은 현대자동차그룹 본사에서 시작해 유성기업 서울사무소에 이르는 6.5km의 길이었다. 지난 8일 ‘유시영 구속처벌의 길’은 유성기업 서울사무소에서 대법원까지, 오는 10일 ‘노조파괴/성과퇴출제 분쇄의 길’은 정몽구 회장의 자택에서 갑을오토텍 본사가 위치한 갑을빌딩을 지나 서울역에 이르는 길이다.

12일 민중총궐기를 하루 앞둔 오는 11일엔 서울역에서 시청광장, 광화문을 거쳐 청와대까지 ‘박근혜 퇴진의 길’을 행진한다.

유성기업 지회의 싸움은 2011년 5월부터 시작됐다. 당시 노조는 ‘주간 연속 2교대’ 제도 도입을 요구했고 사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파업을 결의했다. 노조는 야간조가 밤샘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주·야 맞교대’를 폐지하고 노동시간 조절을 통해 오전조와 오후조가 교대로 근무하여 자정 전에 노동을 마치는 제도를 요구한 것이다. 주간 연속 2교대는 이미 2009년에 노사가 잠정 합의했던 사안이었다.

그러나 사측은 노조가 파업을 결의한 당일 용역업체 직원 30여 명을 동원해 정문을 봉쇄하면서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결국 조합원들은 두 달여 후 ‘불법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모두 공장에 복귀했으나 사측은 조합원 27명을 해고했다. 2013년 부당해고라고 최종 판결을 받았으나, 사측은 이들 가운데 11명을 다시 해고했다. 이후 유성기업 지회와 유성기업 간의 법적 싸움이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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