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에게 가장 큰 위기는 ‘존재감’이 없을 때다. 지금 KBS와 MBC가 그렇다. 존재감이 없다.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다. 야당 지지자라면 JTBC를 보면 되고, 여당 지지자라면 TV조선을 보면 된다. 지상파 직접수신률이 3%대인 상황에서 지상파3사나 종합편성채널이나 그저 리모컨 하나 차이다. KBS1TV 메인뉴스 ‘뉴스9’는 직전 편성된 일일연속극이 없으면 곧 JTBC ‘뉴스룸’에 추월당할 처지다. 이미 MBC ‘뉴스데스크’는 JTBC의 반 토막 시청률로 추락했다.

궁금한 내용이 안 나온다? 채널을 돌리면 그만이다. 지금 KBS와 MBC가 그렇다. 공영방송이라고 하는데 정작 공적으로 가치 있는 뉴스, 시청자들이 알고 싶은 내용은 보도하지 않는다. 이슈를 아예 피해버린다. 설령 보도하더라도 뭐가 문제인지 잘 드러내지 않는다. 쉽게 말해 국회방송 같다. 시청자들 입장에선 차라리 적극적으로 사람들의 관심 사안을 다루며 관점을 확실히 드러내는 TV조선이 더 매력적일 수 있다. 편파적이고 뻔뻔하지만, 적어도 비겁하진 않다.

▲ 2016년 4월27일자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의 한 장면. 이날 손석희 앵커는 "매우 중요한 이슈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눈을 감고 있는 언론"을 '슬리핑독(Sleeping dog)'이라고 말했다.
‘최순실 게이트’ 국면은 KBS와 MBC에게 마지막 기회다. 2012년 대선을 기점으로 지상파3사의 방송뉴스 독점시대는 끝났다. 플랫폼은 모바일로 넘어갔다. 당신들은 이제 ‘One of Them’이다. 아침마다 받아드는 시청률은 허깨비다. 신뢰도·영향력 모든 부분에서 침몰하고 있다. 지금 국면에서 존재감 있는 보도가 나오지 않는다면 JTBC에 이어 TV조선에도 머지않아 밀린다. 한 자리 보전하려고 입을 닫아버린 선배 간부들이 회사를 망쳤다.

KBS·MBC를 보면 허망한 마음도 든다. 그래도 4년 전 시민들이 촛불 들고 지켜주려 했던 방송사다. 시청자에게 염치가 있어야 한다. 중간광고로 몇 년이나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나. 결국 방송사의 핵심은 ‘시청자 신뢰’다. 뉴스가 공정해야 드라마도 보고 예능도 본다. 옳은 말 하다 쫓겨난 능력 있는 기자들을 당장 보도국으로 불러들이고 기자들의 역량을 한데로 모아 취재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지금은 오직 취재력을 끌어올리는 길밖에 없다.

JTBC와 TV조선이 국가의 명운을 걸고 단독경쟁을 벌이고 있다. 누가 진짜 공영 같은가. 청춘을 바쳤던 회사에 대해 일말의 애정이 남아있다면 이명박·박근혜에 부역했던 간부들은 당장 보직을 사퇴하고 후배들이 살고 회사가 살 길을 열어줘야 한다. KBS와 MBC가 없어도 그만인 세상에서 여전히 공영방송에 미련이 남은 시청자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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