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콘크리트’ 지지층이었다. 언제나 마지노선은 30%였다. 그랬던 지지층이 흔들렸다. 한국갤럽이 4일 발표한 박 대통령 지지도는 5%였다. 50대 지지율은 3%, 60대 이상 지지율도 13%에 그쳤다. 국가부도사태에 준하는 IMF때 김영삼 대통령 지지율도 6%였다. 지지자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콘크리트 지지층이 한겨레나 JTBC 보도를 보고 국정농단의 실체를 목도한 뒤 생각이 바뀌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들 삶에서 박근혜 지지를 철회하게 할 만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 한국일보 11월5일자 5면.

①TV조선

▲ TV조선 보도화면 갈무리.

박근혜 지지층 대부분이 TV조선을 보는 건 아니다. 그러나 50·60세대 여론을 조성하는 ‘스피커’들은 TV조선을 즐겨본다. TV조선은 장년층에게 맞춤형 정세분석을 제공하고 있다. ‘피아’ 구분이 명확하고, 단순하며 자극적이다. 이들은 종편 출범 이후 무미건조한 KBS대신 TV조선을 선호하며 ‘종북’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문재인을 ‘문제인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믿고 보던 TV조선이 박근혜의 국정농단을 비판하기 시작하고 대통령이 최태민에게 정신과 육체를 빼앗겼다는 등의 이야기를 내놓기 시작했다. ‘종북좌파’의 근거 없는 음해라고 생각해왔던 것들이 TV조선 뉴스에 등장하니 스피커들 입장에선 놀랄 수밖에 없다. 여기에 KBS까지 가세해 박정희 시대 구국여성봉사단 영상을 틀며 최태민과의 부적절했던 관계의혹을 증폭시키니 지지층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②사이비 종교

▲ 1995년 방영된 MBC 드라마 ‘제4공화국’의 한 장면.

박근혜 지지층의 상당수는 종교인이다. 한국갤럽 2014년 자료에 따르면 종교인은 남성(44%)보다 여성(57%)이 더 많으며, 연령별로는 20대 종교인이 31%인데 반해 50대 종교인은 60%, 60세 이상 종교인은 68%를 기록해 고연령일수록 종교인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한국인의 종교분포는 불교 22%, 개신교 21%, 천주교 7% 순이다. 교회나 절로 대표되는 종교공간은 장년층 사교모임의 핵심이자, 소득을 불문하고 한국사회에서 삶의 기본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장년층 커뮤니티를 종교시설이 장악하고 있다.

종교인 입장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사이비 종교를 믿는다는 소문은 지지철회를 넘어 분노를 자아내는 폭발적 이슈다. 기독교 목사들이 이사진인 국민문화재단 소유 국민일보는 최근 박 대통령 비판 기사를 쏟아내는데, 대부분이 최태민씨와 관련한 것들로 “최태민은 목사가 아닌 사이비 교주였다”는 식이다. 목사들 사이에선 최태민을 목사라 부르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그간 언행에 비춰볼 때 최태민을 사이비교주로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영애(박근혜)가 사이비에 빠져 제정신이 아니’라면, ‘빨갱이’처럼 북으로 내칠게 아니라 치료의 대상이 된다.

③이화여대

▲ 이화여대 로고.

장년층의 관심사는 자식들의 성공, 혹은 손주들의 성공이다. 한국사회에서 성공의 좌표는 어느 대학에 들어가느냐 부터 시작된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책 ‘입시전쟁잔혹사’에서 “한국에서 가장 치열한 계급투쟁은 노동운동이 아니라 대학입시전쟁”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은 성적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초·중·고교생이 뉴스에 자주 오르내리는 ‘입시지옥사회’다.

박근혜 대통령이 사사로운 관계로 옆에서 ‘수발’을 들어주던 최순실이란 자연인에게 제집처럼 청와대를 드나들게 하고 각종 이권을 줬다는 건 ‘뭐 그럴 수도 있지’, ‘다른 놈들은 안 그랬나’ 영역에서 용인 가능하다. 문제는 딸 정유라다. “내 자식은, 내 손주는 그렇게 고생해서 대학 들어가 공부해도 취업이 힘든데 쟤는 엄마 하나 믿고 학칙까지 바꿔 이대 들어가 출석도 안하고 ‘달그닥 훅’하니 학점을 받아? 그럼 내 딸 내 손녀는 뭐가 되는데?” 이런 심리다.

학벌을 취득하는데 있어 최대한 공정해야 한다는 심리는 한국사회 학부모 대다수의 정서다. 박근혜 친딸이면 ‘예외’가 될지 몰라도, 박근혜와 친한 일반인의 딸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저 아이 때문에 밀리고 밀려 내 아이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감정이 더해지면 박 대통령에 대한 반감은 극대화된다. 다른 건 몰라도 입학특혜는 정서상 안 된다. 이와 유사한 정서로는 ‘군 입대’가 있다. 정씨가 올렸다고 보도된 페이스북 글에는 “돈도 실력이야.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고 적혀있었다.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④최순실

▲ 최순실씨가 등장한 JTBC 뉴스화면 갈무리.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후광은 박정희와 육영수다. 본인이 쌓아올린 게 아니다. 그는 가업을 물려받아 대통령이 됐다. 지지층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고 밀어줬다.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제성장과 독재로 요약되는 아버지의 양가성이 어머니가 풍겨온 자애로운 이미지 속에 중화되어 포악한 독재 없는 경제성장의 가능성이라는 환상”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투영됐다고 지적했다. 결혼도 안하고 자식도 없어서, 지긋지긋한 친인척 비리가 없을 거라는 믿음도 강했다.

그런데 모두 깨졌다. 경제성장은 없었고 정부는 무능했다. 세월호 참사 앞에선 어머니가 보여줬던 공감능력도 찾을 수 없었다. 비리만은 없을 거라 생각했던 마지막 환상도 깨졌다. 대통령은 속된말로 재벌의 돈을 뜯어 가족 같은 동생에게 줬다. 가족 같은 동생 딸의 대학 입시도 봐줬다. 사심이었다. 환상은 사라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프라다 신발을 신고 곰탕을 비워내는 ‘최순실’급으로 추락했다.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박 대통령을 향해 “아버지에게 상처를 줬다”고 비판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박정희 ‘탄신’ 100주년을 준비하는 일부 ‘신도’를 제외하곤 모두 ‘영애’의 곁을 떠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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