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은 권력관계에서 발생한다. 부서를 막론하고 기자들이 주로 상대하는 대상은 4050대 남성이다. 이들이 오피니언 리더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기자에게 잘 보여야 하는 ‘을’인 동시에 정보를 가진 ‘갑’이다. 2030대 여성 기자들의 수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때문에 기자들은 성폭력을 당하고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 ‘정보’를 가지고 기자를 농락하는 취재원도 있다. 형님-아우 하는 남성 중심의 언론계 관행은 문제해결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나아가 오히려 사내에서 2차 가해가 일어나기도 한다. 피해자들은 갈 곳이 없다. 

미디어오늘이 성폭력 피해 기자 네 명을 만나 각자의 경험과 대처, 그리고 향후 언론계에 필요한 방안 등을 들었다. 2차 가해를 피하기 위해 소속과 나이는 공개하지 않고 이름은 가명으로 하되 연차만 공개한다. 좌담은 20일 오후 2시간30분가량 진행됐다. 기사는 상·하편으로 나눠 게재한다. <편집자주>


사회 : 성폭력 이후에 어떻게 대처했나? 보통은 회사에도 알리지 못하고 혼자 전전긍긍하는 사례가 많다. 

최연희(5년차 기자)=성폭력을 해결하는 방식이 피해자가 참거나 사적 응징을 하거나 공적으로 대응하거나 당사자끼리 사건 정리를 하는 식이다. 이걸 결정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마음 같아선 응징하고 싶은데 응징의 수위가 올라갈수록 2차 가해 가능성도 커지니까.  

처음에는 당사자끼리 사건을 정리하는 방식을 택했다. 회사에 알린 다음 가해자를 만나기로 했다. 만나기 전에 사건 경위서를 썼고 서명란을 만들었다. 대리인을 해 줄 선배와 같이 가해자를 만나서 사과문을 써오라고 했지. 공개적인 대응은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포기했다.

사과문을 받았고 몇 가지를 합의했다. 나와 서면이나 대면 접촉을 피할 것. 같은 공간에서 나와 마주치면 꺼지라는 거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당신이 또 가해자로 있는 사건이 밝혀질 경우에는 사과문을 공개하겠다는 것이었다. 또 다른 성폭력을 방지할 수 있는 내 나름의 방식이고 협박이었다. 

▲ 리포트 준비 중인 방송기자.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사진=이치열 기자
이진하(4년차 기자)=회사에 알리기까지 2~3주가 걸렸다. 기사를 쓰다가 눈물이 났고 그게 계기가 돼 노조위원장에게 사실을 털어놨다. 노조위원장과 편집국장에게만 보고가 됐다. 노조 위원장이 격분을 하며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줘서 고마웠다. 그리고 바로 가해자가 있는 사건 취재에서 빠지라고 했다. 

회사에서는 대응 수위를 정하자고 했다. 개인적으로 사과를 받거나 아니면 공개 대응을 해도 된다고 했다. 원하는 대로 하자고. 일단 경위서부터 썼다. 언제 어디서 나에게 키스를 하고 뽀뽀를 했고, 이후에도 카카오톡 등을 통해 연락이 왔다는 내용들. 이 정리 과정이 심적으로 힘들었다. 

하선교(8년차 기자)=직속선배의 고백을 수차례 거절한 이후, 선배가 전화로 쌍욕을 했다. 그걸 증거로 회사에 가서 말했다. 회사에서는 팀을 바꿔줬다. 그런데 그걸로는 해결이 안 되지. 어떻게든 마주치는 순간들이 생기는데 회사에서는 가해자를 징계하거나 해고할 생각이 없었다. 가해자가 능력이 있다는 이유였다. 

오히려 내가 왕따처럼 됐다. 술자리가 있어도 나만 빼고 갔다. 어느 날 한 선배가 부르더니 “너 그때 아무개 부탁 들어줬다면서? 걔도 오해했다고 하더라. 솔직히 니 잘못도 40%”라고 말했다. 벙쪄서 ‘아 이렇게 되는구나’ 심지어 여자선배마저도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결국 회사를 그만뒀다. 

김희태(7년차 기자)=기자 집단이라고 해서 다를 거 하나도 없다. 오히려 더 말을 잘 만들어낸다. 난 수차례 자잘한 일들을 겪으면서 좀 무뎌진 것 같다. 날 만져도 ‘아 얘도 이런 애구나. 이 사람은 그냥 패스’ 이런 식이다. 좋은 사람 만나서 좋은 기사 쓰면 되지, 이런 마인드다. 

주변에 봐도 공개적으로 해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기자들이 회사보다는 기자단에 묶여있는데 이 경우 다른 언론사에서 기사로 안 쓰면 다행이다 싶지. 기자이기 때문에 이런 것도 신경을 써야한다. 아니면 회사가 가해자 집단에 적극적으로 항의를 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회사가 복불복이라는 거지. 

▲ 일러스트=빛련 작가
사회자 : 결국 네 명 모두 공개적으로 대응은 하지 못한 셈인가? 이유가 궁금하다. 

이진하=무엇보다도 내가 사건의 중심이 되는 게 싫었다. 어느 회사 기자가 어떤 조직의 구성원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기사가 나온다 생각하니 끔찍했다. 그래서 사건 공론화는 포기했지. 당사자를 만나서 사과를 받는다? 그건 무서웠다. 

사건 당시에 확실하게 거부 의사를 표현하지 못한 게 계속 걸렸다. ‘왜 이러세요? 저 집에 갈래요’ 라고 말한 게 고작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 반응이 당연하다. 당황스러우니까. 이 기사를 보는 선후배들이 있다면 거부 의사를 확실히 표현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하선교=취재원이 가해자인 경우 출입처를 바꾸면 되는데 사내 성폭력은 한 명이 사라져야 해결된다. 그런데 가해자를 해고시키는 언론사는 드물다. 그렇다고 내가 밖에 나가서 알릴 수도 없고. 이런 경우 사적인 응징밖에 못한다. 주변에는 남자친구가 가해자를 때려서 응징한 사례도 있다. 

최연희=가해자는 수차례 합의를 파기했다. 취재현장에서 마주치면 사라지기로 했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사건을 공개하지 못했다. 공개를 꺼렸던 이유 중 하나가 사건이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건 보수진보 문제가 아닌 성폭력인데 진영을 공격하는데 내 사례가 쓰이기 싫은거지. 

그러다 다른 피해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합의 내용 중 하나가 또 다른 피해자가 나타나면 사과문을 공개하겠다는 거였다. 그때는 마음가짐이 달랐다. 전에 내가 이 사람을 쫓아냈다면 새로운 피해자는 안 생겼을텐데. 새로운 일이 시작되는구나. 

‘이젠 정말로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지 않는 것’에 집중했다. 주변에선 소송을 제안하기도 했지만 그건 더 사건 해결을 어렵게 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관련 판례를 찾아보니 그 처벌 수위라는 게 고작해야 정직이나 벌금 얼마 정도였다. 결국 가해자 조직에 제소하기로 결정했고 첫 번째 스텝으로 신고서 쓰기를 했다. 글쓰는 직업인데도 나와 또 다른 피해자 사건을 육하원칙으로 정리하는데 이틀이나 걸렸다. 증거를 하나하나 확인하고 그 스트레스가 심했다.
 
진상조사위가 꾸려졌고 결론적으로는 가해자가 해임됐다. 진상조사위 구성도 상당히 중요하다. 감수성이 없는 사람이 들어와서 “애초에 택시를 같이 왜 탔대?” 이러면 개판되는거니까. 내 경우는 운이 좋았다. 진상조사위원들이 면담 조사 전 반성폭력 교육을 함께 이수했다고 들었다. 사건 해결을 담당하는 조직의 이런 적극적인 태도만으로도 피해자는 치유를 받는다.

▲ 사진=ⓒgettyimagesbank
사회 : 미디어오늘도 제보를 받고도 쓰지 못한 성폭력 기사들이 많다. 그러다보니 대안은 논의조차 못 된다. 대체 대안이 뭐라고 생각하나.


김희태=공론화되지 않으면서 내가 당한 걸 해결해주는 곳이 필요하다. 기자라서 잘 해결되기도 하지만 해결이 더 어렵기도 한 것. 그러다보니 애매한 사건들은 너무 잦아서 이미 무뎌지는 순간이 오고 진짜 큰 일이 아닌 상황은 넘어가게 된다. 기사를 쓸 때와 내가 당할 때가 너무 다른 거지. 

이진하=매뉴얼이 없는 게 제일 힘들었다. 기자협회나 회사나, 노동조합에 매뉴얼이 있어야 한다. 하다못해 미디어오늘이나 기자협회보에 참고할만한 기사라도 있어야한다. 그래서 이미 성폭력을 겪은 선배와 동료 기자에게 조언을 받았다. 그 상황 자체가 참담했다. 하다못해 신고센터라도 있었으면.

최연희·김희태·하선교=신고센터가 있어도 신고 못할 것 같다. 소문날 것 같아. 

하선교=언론사 조직부터 매뉴얼이 있어야 한다. 특히 인턴이나 수습기자 같은 경우는 공론화하기 더 어렵다. 인턴이나 수습기자 술자리 합석은 아예 금지시켜야 한다. 업무 시간 외에는 불러내거나 연락도 못하게 해야 한다. 좁은 취업문을 이용해서 상습적으로 성희롱·성추행을 일삼는 사람들도 있다.

김희태=최근에 한 경제지는 사내 성폭력 사건이 잦아서 남자 선배 기자와 여자 후배 기자 둘이서 만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매뉴얼과 더불어 기자들 교육도 필요하다. 당장 데스크들만 봐도 단란주점가고 이런 마당에. 내가 속한 조직이 이 모양인데 어디 가서 혁신 이런 말 하기 민망하다. 

최연희=가해자 조직의 매뉴얼도 반드시 필요하다. 기자가 많이 들어가는 공공기관, 정당, 기업, 각종 부처, 시민단체 등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 가해자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 경찰이나 재판으로 가져갔을 때는 해결이 쉽지 않다.

작정하고 ‘정풍운동’을 할 필요가 있다. 가령 살가운 사람을 대변인을 시킨답시고 성폭력범을 꽂는 경우가 잦다. 감정노동 잘하고 그런 사람들이 친근함의 표현으로 성폭력을 행사하곤 한다. 인식 자체가 부족한 거다. 오죽하면 기자들끼리 가해자 ‘블랙리스트’라도 만들어서 공유하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김희태=만약 피해자를 만나면 “니가 아니라 가해자의 잘못이고,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기사화하자”고 설득할 것이다. 하지만 내 문제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오는 괴리감, 스스로 비겁하다는 생각이 성추행을 당한 사실보다 기자로서 더 힘들기도 하다. 이론적으로 무엇이 옳은지는 알지만 공론화했을 경우 뒷일들을 생각하면 망설여지게 된다. 이건 기자뿐 아니라 모든 피해자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 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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