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사태는 탈정치적인 문제이며 국민 전체의 문제이다. 이번 사태로 야당이 반사적인 이익을 얻겠고 문제를 알면서도 쉬쉬해온 새누리당은 불리해졌지만 그것은 부수효과일 뿐이며 국민 전체 vs. 박근혜 대통령의 대결이 현재 문제의 본질이다. 보수 진보할것없이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대통령을 잘못 뽑았다. 대통령은 우리를 대표하고 지배할 권력을 가질 능력이 없다"는 것이며 바로 이 대표의 실패(representation failure)가 본질이다.
민주당이 하야 요구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1) 하야요구가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것과 (2) 하야 이후의 불확정성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당장은 총리임명철회와 검찰수사에의 협조만을 요구하고 있고 이 두 가지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에만 퇴진을 요구한다고 하고 있다.
새로운 총리가 임명되는 것으로 국민들이 느끼는 자괴감이 치유될 수 있을까? 또 사건의 성격을 볼 때 검찰수사로 지금까지 밝혀진 것들이 더 명쾌하게 밝혀질까?
우선 새로운 총리가 누가 되었든 그가 권한이양을 얼마나 받든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모시고 있어야 하고 그 총리는 국회의원들이 뽑는 총리 즉 내각제 하의 총리와 유사한 정치적 위상을 갖게 된다. 내각제 개헌을 위한 좋은 연습이 될 수는 있겠지만 대통령을 잘못 뽑은 패착을 보정받고 싶어하는 국민에게는 부족하다.
또 언젠가부터 법치주의가 자리잡히면서 우리에게는 검찰은 커다란 "타자"였다. 무언가 불의가 발생하면 검찰수사에 이은 형사처벌이 있어야만 정의가 바로 잡혀졌다고 생각하는 관습에 길들여져 왔다. 돈을 빌려주고 못받아도, 욕설을 들어도, 최소한 검찰이 상대를 괴롭히게 하거나 검찰의 입에서 "기소"라는 말이 나와서 재판을 받게 해야 정의가 세워진다는 편견을 갖게 되었다. 물론 검찰의 강제수사능력을 빌려야 진상이 밝혀지는 사안들에서는 그럴 수 밖에 없다.
결국 민주당이 내건 두 가지 요구 다 본질과는 비껴 나가 있다. 국민이 하고 싶은 것은 "너무 창피하다. 너는 내 대통령이 아니다. 나는 너라는 대통령을 모른다"라고 말하는 것 즉 부인(denial)을 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단순히 지지율이 문제가 아니다. 김영삼 때도 국민은 대통령을 부인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주최측 추산 전국 100만이 모였었다는 광우병 시위도 있었지만 지금처럼 모두가 한 입으로 퇴진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물론 법적으로는, 선거가 적법하게 치러진 이상 대통령의 범죄가 법정(예를 들어 탄핵절차에서의 헌법재판소 또는 최소한 검찰수사)에서 밝혀지지 않는 이상 대통령은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법에 따라서 자신의 입장을 정립해야 한다는 것이야말로 법치과잉적인 입장이다. 대통령을 잘못 뽑았다는 이유만으로 국민은 주권자로서 바로 지금 대통령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의 범죄가 형사소송법의 증거절차에 따라 정교하게 입증되지 않더라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박근혜가 형사처벌을 받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