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김형민 SBS CNBC PD였다. 그가 10월7일 SNS에 글을 올린 뒤 아무 맥락 없이 ‘#그런데최순실은요?’ 해시태그를 붙이자고 제안했다. 김형민 PD는 “김제동이 거짓말을 했네 안했네가 이슈가 되면서 교문위에서 최순실·차은택을 증인으로 부르자는 걸 여당이 결사거부 한 사실이 묻히고 있다”고 적었다. “김제동이든 백남기 농민 사인 공방이든 이정현 단식이든 지금 정부 여당의 모든 관심은 최순실 가리기가 아닐까”란 문제의식이 출발점이었다.

▲ 김형민 SBS CNBC PD 페이스북.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던 그의 제안은 순식간에 번져나갔다. 해시태그는 일종의 놀이로서, 진실을 밝혀달라는 일종의 ‘주술’처럼 번져나갔다. 이후 #나와라최순실 #하야하라박근혜처럼 변형된 해시태그도 등장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사용자들은 이 해시태그를 게시 글 말미에 아무맥락 없이 달며 불의를 향한 ‘연대’를 느슨하게 갖기 시작했다. 최순실을 꼭꼭 숨기기 위해 새누리당이 꺼내든 송민순 회고록 ‘북풍몰이’와 박 대통령이 꺼내든 회심의 ‘개헌’  카드에도 언론이 최순실 국정농단 보도를 이어갈 수 있었던 힘은 이 같은 해시태그 운동이었다.

해시태그는 언론인들에게 최순실 취재를 적극적으로 하라는 응원과 압박으로 전달됐다. 시민들이 모든 글에 해시태그를 붙이며 끈질기게 이슈를 부각시켰고, 언론은 이에 힘입어 지속적인 보도에 나설 수 있었다. 서울시내 곳곳에선 ‘#나와라 최순실’ 현수막이 달렸고, 어느덧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였다. 한국일보는 “온라인은 행동에 나서기를 주저하던 시민들을 거리로 이끈 매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뉴스수용자인 시민들은 온라인 공간에서 하나의 광장을 형성하며 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그리고 자신이 보고 싶었던 기사를 적극적으로 읽고 공유했다. 신문사의 웹 방문자수와 페이지뷰는 최순실 국정농단 국면 이후 크게 뛰어올랐다. 랭키닷컴이 9월24일~9월28일 집계한 경향 국민 동아 서울 세계 조선 중앙 한겨레 한국 등 9개 종합일간지의 페이지뷰(PV)는 9월17일~9월21일에 비해 평균 1.7배 높게 나타났다. 최순실 관련 보도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각각 2.5배, 2.4배로 높았다.

▲ 헬조선 계급도.
시민들은 언론  보도에 공유와 패러디로 화답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무당에 대한 설명을 듣는 장면을 담은 이미지는 수십만 번 공유됐고, 최순실 국정농단을 풍자한 ‘헬조선 신계급도’ 역시 큰 인기를 모았다. 한국의 권력서열이 무당(최순실)→무당의 가족(정유라)→무당의 측근(차은택)→왕족(박근혜)→귀족(이건희)→정치인·관료→법조인→공무원→개·돼지(시민) 순이라는 내용이었다.

최순실 게임도 등장했다. ‘순실아 빨리 와’란 게임은 최씨가 말을 타고 도망가며 덫을 피하는 스토리였다. 대통령 연설문을 어떻게 빨리 작성하는가를 가지고 점수를 매기는 ‘최순실 게임’도 나왔다. ‘프린세스메이커’란 게임을 패러디해 최순실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옷을 고르는 장면도 회자됐다.

▲ 국정농단을 풍자한 프린세스 메이커2 게임화면. 손혜원 민주당 의원은 "재밌었겠다. 국민의 혈세로"라고 촌평했다.
▲ 고대생이 쓴 박공주 헌정시.
대학생들의 저항방식도 기발했다. 10월31일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은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시굿선언’을 기획해 눈길을 끌었다. 민중가요 대신 재기발랄한 선언문과 굿을 하는 풍자적 장면으로 눈길을 끌었다. 한국외국어대학교는 시국선언문을 9개 언어로 발표하는 재치를 보였고, 정유라씨의 특혜 논란으로 시끄러웠던 이화여대 학생들은 ‘달그닥 훅’과 같은 재치 있는 피켓으로 권력을 비판했다. 온라인에선 오늘의 국정농단을 고전소설에 빗대 쓴 연세대학생의 ‘공주전’과 고려대학생의 ‘박공주 헌정시’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 같은 장면은 영화에서나 볼 법한 초현실적인 국정농단 앞에서 시민들이 택한 저항 방식이다.

언론이 외면 받지 않을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은, ‘#그런데최순실은요?’에 응답하는 것뿐이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언론위원회는 ‘10월의 시선’으로 ‘#그런데 최순실은?’을 선정했다. 언론위원회는 “주류미디어가 의도적이거나 비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정치이슈에 대해 적극적 참여와 공유, 연결을 통해서 이슈를 생성하고 유포하여 강화시키는 정치적 저항의 의미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언론위원회는 이어 이 같은 운동이 “권력에 장악된 공영방송 등 보수언론의 일그러진 모습을 국민이 널리 인지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