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를 지휘하다 조선일보 ‘혼외자’ 보도로 낙마했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57)이 3년2개월 만에 등장했다. 그의 등장으로 박근혜정부 정당성을 흔들었던 부정선거 논란이 재점화 될 것으로 보인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2일 밤 한겨레TV ‘김어준의 파파이스’ 녹화에 출연해 ‘눈치도 없이 법대로 하다가 잘렸나?’라는 질문에 “인정”이라고 답했으며 “눈치가 없어서…자기(박 대통령을 뜻하는 걸로 보임)만 빼고 법대로였다”고 말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채 전 총장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 때는) 법대로 수사하라는 게 가이드라인이었다”고도 말했다.

박근혜정부 첫해였던 2013년 채 전 총장이 지휘한 검찰은 원세훈 국정원장을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했고, 이는 ‘대선 정당성 시비’를 확대시키며 박근혜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렸다. 실제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2012년 대선에서 직원들을 동원해 편파적인 댓글을 다는 방식으로 선거에 개입한 사실이 항소심에서 확인돼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해 유죄로 인정한 항소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채 전 총장은 이날 녹화현장에서 ‘검찰이 왜 권력 말을 잘 듣나?’라는 질문에 “인사권이다. 말 잘 들으면 승진시키고, 말 안 들으면 물 먹이고 그렇게 하다가 이번 정권 들어와서는 검찰총장까지 탈탈 털어서 몰아냈다. 그러면서 바짝 또 엎드리게 되고…또 검사들이 평범한 직장인으로 돌아갔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하며 그간 심경을 우회적으로 털어놨다.

채 전 총장은 낙마한 뒤 지방 모처로 잠적해 자화상을 그리며 스스로 ‘유배’ 생활을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경향신문은 지난해 초 “(채 전 총장이) 월세 40만 원 짜리 방을 얻어 혼자 지내면서 한 유명 화가를 소개받아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법조계에서는 ‘미술 치료’를 받듯 미술작품을 통해 분노를 삭이고 마음을 다스리려는 의도 아니었겠냐는 추측이 대부분”이라고 보도했다.

▲ 채동욱 전 검찰총장. ⓒ연합뉴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박근혜 대통령 하야와 조기대선 국면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채동욱 전 총장의 등장은 여러모로 상징적이다. 그가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을 흔들 수 있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해 가장 정확한 정보를 알고 있을뿐더러 정부차원의 수사 은폐 시도 정황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채 전 총장이 헌정유린으로 한 자릿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박근혜정부에 결정타를 날리는 것은 아닌지 관심이 모이는 배경이다.

채 전 총장은 이날 녹화에서 최재경 신임 청와대 민정수석을 두고 “수사능력이 탁월한 검사였다”고 평가하면서도 ‘최재경 민정수석 아래서 검찰이 최순실 수사 제대로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굉장히 어려울 것이다. 주변의 여러 가지 인연들이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했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 검찰수사에 대해선 “그건 잘 될 거다. (우병우 전 수석) 끈이 떨어졌으니까”라고 답했다.

채 전 총장은 “검찰을 하수인으로 만든 권력자들, 자기 욕심만 채우려고 권력에 빌붙은 일부 정치검사들…그러다가 (검찰이) 이 지경까지 된 것 아닌가 싶다. 검찰의 책임이 크다. 이 정권 초기에 정의를 바로 세우지도 못하고 중도에 물러났던 저의 책임 또한 크다.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마지막으로 검찰을 믿어 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채 전 총장과 조선일보의 악연이 ‘재현’될지도 주목된다. 2013년 혼외자 보도 당시 채 총장은 조선일보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취하했다. 당시 소장에서 채 총장 측은 “공직자의 경우에도 사생활 문제가 직무에 영향을 미치는 공적 이슈가 아닌 한 원칙적으로 사생활을 보호해주는 것이 저널리즘의 기본”이라며 조선일보 보도를 비판했다.

채 총장 측은 “조선일보 보도시점은 검찰총장의 지휘아래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 내란음모 사건’, ‘원전 비리 사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폐기 의혹 사건’, ‘국가정보원 관련 의혹 사건’ 등 국가적으로 중차대한 사건들의 수사와 공소유지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었다”며 “원고에게 사실관계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이 사건 보도를 해야 할 만큼 급박한 상황이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무리한 보도와 보도시점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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