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불통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야당은 물론 여당, 청와대 일각과도 협의하지 않고 개각을 발표했다. 언론은 일제히 ‘일방통행’을 비판했다. 다만,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혼란상황을 우려하며 야권의 ‘하야론’을 경계했다. 오늘도 최순실 관련 단독보도들이 나왔다. 삼성과 승마협회, 최순실과의 연결고리가 조금씩 드러나는 모양새다. 검찰이 최순실씨에게 뇌물죄가 아닌 직권남용죄를 적용했는데, 꼬리자르기 꼼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와중에 불통개각

개각마저도 최악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일 국무총리 등에 대한 전격적인 개각을 단행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일 김병준 국무총리, 임종룡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박승주 국민안전처 장관 후보자를 지명했다. 가장 중요한 총리 후보는 참여정부 정책실장과 교육부총리를 지낸 김병준 교수를 내정했다. "정치권이 요구하는 거국중립내각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라는 게 청와대의 입장이다.

그러나 개각으로 국정혼란을 수습하기는커녕 강력한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제대로 된 소통이 없었다는 점이다. 야3당은 물론 청와대 내부에서도 소통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날 발표는 황교안 국무총리조차도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야3당은 지난 2일 오후 긴급회동을 통해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 등에 대한 임명철회를 요구하면서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부했다. 쟁점이 있을 때마다 신중한 모습을 보이던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마저도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새누리당 내 비박계도 반발하고 있다. 김무성 전 대표는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총리를 지명하는 방식은 사태 수습에 도움이 되지 않고 거국중립내각의 취지에도 어긋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승민 의원 역시 “야당과 사전 협의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회의 중에 발표가 돼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언론의 반응 역시 차갑기만 하다. 개각에 대해서는 보수, 진보 언론을 막론하고 비판 일색이었다. 중앙일보는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는 것"이라며 '오기정치'라고 비판했다. 동아일보 역시 사설에서 "아닌 밤중에 홍두깨씩 개각 발표"라고 꼬집었고, 경향신문은 "방탄 개각"이라고 지적했다.

개각을 다룬 주요뉴스 제목은 "혼란 더 키운 불통개각"(동아일보) "분노 더 키운 불통개각"(중앙일보)"  "야와 협의없이 불쑥 개각...정국 더 꼬였다"(조선일보) "정국 혼란만 키운 박 대통령의 일방적 개각"(한국일보) "민심과 맞서는 10%대통령"(경향신문) "민심 역주행 개각...야권 하야론 분출"(한겨레) 등이다.

김병준은 누구? 국회 문턱 넘을까

박근혜 대통령이 참여정부 정책실장 출신을 총리로 기용한다는 건 파격적이긴 하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야당이 이 분을 부정한다면 그간 노무현 정부를 부정하고 부인하는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김병준 교수는 이미 친노와는 사이가 틀어진 인물이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김 후보자는 교육부총리 내정 당시 새누리당이 논문 표절 의혹을 끈질기게 제기할 때 친노진영이 자신을 지켜주지 않은 점에 상당히 서운해 했다. 또, 당시 친노진영에서 이해찬 의원을 차기 대권주자로 밀고 있는 상황에서 스스로 대권을 준비하면서 친노와 사실상 갈라섰다. 

2012년 대선 때 김 후보자는 문재인 후보가 아닌 김두관 전 경남지사를 지지하기도 했다. 이후 김 후보자의 행적을 살펴보면 새누리당, 국민의당에 강연을 하거나 보수성향 신문 기고를 통해 친노진영을 비판해왔다.

그는 총리가 될 수 있을까? 총리 임명은 국회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국회 문턱을 넘을 가능성이 매우 낮다. 동의안은 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과반 찬성이 필요한데, 야3당 의석은 과반이 넘는 165석에다 무소속 의원 6명 전원도 반발하고 있어 야권의 반대만으로도 동의안은 부결될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비박계의 반발이 크고, 레임덕 상황에서 일부 친박마저도 돌아설  수 있다.

정작 김 후보자 역시 이렇게 일방적으로 개각이 발표될지는 몰랐다는 반응이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김 후보자는 2일 저녁 국민대 강의 후 "국회와 사전협의가 없었다는 점은 굉장히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은 "여론이 계속 악화될 경우 김 지명자가 사퇴할 가능성도 거론된다"고 보도했다.

개각은 비판하되, "하야는 안 된다"

이날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일방적인 개각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도 국가 컨트롤타워 부재에 따른 혼란을 부각하며 야권 주도의 '하야' 요구를 경계했다. 일방적으로 야권에 유리한 판을 조성하기보다는 거국적 중립내각 구성을 통해 여야 줄다리기 상황을 만들려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 사설 제목은 "야권의 대통령 하야 주장 위험하고 섣부르다"다. 조선은 "대통령이 국정에서 완전히 손을 떼겠다고 선언하고 야권이 동의하는 책임 총리가 등장할 수 있다. 진행 중인 수사결과에 따라 탄핵으로 갈 수도 있다"면서 "하야는 이 모든 헌법 수단이 무위가 됐을 때만 고려될 수단"이라고 지적했다.


혼란을 수습해야 한다며 하야를 경계하는 보도도 있다. 중앙일보 기사 "시민들 '경제도 어려운데 혼란 빨리 수습을"이 대표적이다. 이 기사는 경제정책 컨트롤타워가 사라진 상황을 우려하는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담은 뒤 "더 이상 혼란을 막기 위해 하야, 탄핵 논의를 중단하고 박 대통령의 남은 임기를 보장해 리더십을 회복시킬 필요가 있다"는 바른사회시민회의 관계자의 발언으로 이어진다. 조선일보 기사 "'난파선에 선장까지 2명'... 경제 리더십 사실상 공백 사태"도 혼란을 부각했다.

오늘의 최순실 단독보도

오늘도 비선실세 최순실씨와 관련한 언론의 단독보도가 많았다. 특히, TV조선이 보도한 최순실씨의 박근혜 대통령 의상실 영상의 정체가 드러났다. 이 영상은 CCTV라고 하기에는 사람 얼굴이 정면에서 보일 수 있도록 높이가 낮아 누군가 의도적으로 촬영한 것이라는 추측이 많았다. 

동아일보 단독보도에 따르면 이 영상을 촬영한 건 더블루K 이사이자 최순실씨의 최측근인 고영태씨였다. 동아일보는 "고씨가 2014년 11월경 카메라를 미리 설치해뒀거나 최씨와 동석한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촬영한 뒤 바로 다음달 12월 언론에 영상을 넘겼다는 것"이라며 "당시 고씨는 일시적으로 최씨와 사이가 악화된 상태"라고 보도했다. 동아일보 보도가 사실이라면 TV조선은 의상실 영상을 1년 이상 묵혀둔 것이다.

또 새로운 회사가 등장했다. 최순실씨의 조카 장시호씨가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 중인 스포츠 유망주 교육시설인 K스포츠타운을 장악하기 위해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와 스포츠마케팅회사 더케이엠을 세웠다는 의혹이다. 이것 역시 동아일보의 단독보도다. 서울신문은 장시호씨가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서 나온 일감을 모두 자신이 세운 회사에 맡겼다고 보도했다.

삼성과 승마협회, 그리고 최순실씨와의 연결고리도 조금씩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조선일보는 삼성이 정유라가 출전하는 종목인 마장마술에 186억원 지원을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가 입수한 승마협회 중장기 로드맵에 따르면 "회장사인 삼성에 후원요청"이라는 내용이 있다. 승마협회 회장과 부회장이 삼성전자 사장과 전무라는 점도 독특한데, 승마협회 관계자에 따르면 "삼성이 회장을 맡은 건 문체부가 VIP뜻이라고 했기 때문"이라며 김종 전 차관의 개입을 시사했다.

묘한 시기에 출국도 있었다. 한국일보는 대한승마협회 회장과 부회장인 삼성전자 사장과 전무가 최순실씨의 귀국 직전 최씨 모녀가 머물던 독일로 극비리에 출국한 사실을 보도하며 "최순실 게이트 수사가 삼성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고자 현지에 남은 최씨 주변 인사들과 입맞추기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최순실, 뇌물죄 빼고 직권남용만?

비선실세의 국정농단과 관련한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2일 최씨에게 청구한 구속영장에는 '제3자 뇌물죄'보다 형량이 낮은 '직권남용'혐의가 적용됐다. 미르, 케이스포츠재단 기금 모금과정에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함께 직권을 남용했다고만 본 것인데, 봐주기 수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직권남용은 다른사람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할 때 적용되고 제3자 뇌물죄는 직무에 관해 부정한 청탁을 받고 제3자에게 뇌물을 건넸을 때 적용된다. 기업들이 돈을 내도록 한 행위를 직권남용으로 볼 수 있지만, 그 돈 자체는 뇌물로 볼 수 있다.

한겨레는 "직권남용죄의 형량이 뇌물죄에 비해 현저하게 낮을뿐만 아니라 미르재단 등의 설립 자체는 대가성이 없다는 판단이 깔린 것"이라며 사실상 재단설립 자체에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또 "박 대통령이 빠져나갈 수 있는 묘수라며 "직권남용은 상대방의 의사를 완전히 제압하는 수준이 아니면 법원에서 잘 인정되지 않는다"는 검찰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안종범 전 수석이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로 재단 설립 모금을 했다고 밝힌 상황에서 대통령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줬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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