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언론계는 인사 개입에 주목한다. “언론계에서 누가 최순실 인사냐”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국정에 깊게 관여한 정황이 확인되고 있는 가운데, 최씨 입김이 방송계까지 미친 게 아닌지 의심을 하게 되는 것이다.

먼저 조선일보가 의혹을 제기했다. 이 신문은 지난달 31일 20년간 최씨 자매(최순실·최순득)와 매주 모임을 가졌다는 친구 A씨 인터뷰를 보도했다.

A씨는 “어느 날 식사하는데 순득씨가 전화를 받더니 ‘OO방송국 국장을 갈아치워야 한다’, ‘PD는 OO로 넣어야 된다’고 하자, 순실씨가 밖으로 나가 (어딘가로 통화를 한 뒤) 한참 뒤에 돌아오기도 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의 비선들이 방송사 인사에 개입한 정황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최씨 일가가 언론사 인사 등에 개입했다면 청와대를 거쳤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KBS 사장을 비롯해 공영방송 인사 임명권자다. 이 때문에 ‘청와대 낙점설’은 끊이지 않았고 배후에 ‘문고리 3인방’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만 난무했다.

▲ 안봉근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 (사진=JTBC화면캡처)
이러한 상황에서 주목할 만한 폭로가 나왔다. 양문석 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은 지난 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안봉근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이 잘렸다”며 “KBS‧MBC‧YTN‧연합뉴스 등에 숱하게 전화해서 보도 방향과 기사 항의, 인사개입, 심지어 ‘패널 첨삭’ 등의 흔적을 덕지덕지 남긴, 언론사 간부 입장에서 보면 홍보수석 시절의 이정현보다 더 무서웠던 인사”라고 폭로했다.

양 전 위원은 “안종범, 우병우에 가려 있었지만 훨씬 심각한 범죄 행각, 즉 헌법적 가치인 국민의 알권리를 축소 왜곡하고 공영, 민영 언론할 것 없이 언론을 통제한 주범”이라며 “안봉근과 눈 맞은 공영언론의 보도국 간부들도 색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씨가 안 전 비서관의 차량을 타고 청와대를 수시 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황에서 ‘언론 통제 의혹’까지 불거진 것이다. 이정현 전 홍보수석이 KBS 세월호 보도에 개입해 파장을 일으킨 적은 있지만 ‘문고리 3인방’과 언론과의 관계는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었다.

한 청와대 인사는 “과거 의원 보좌관 시절의 친분 때문에 개인적으로 친한 언론인은 있겠지만 (문고리 3인방은) 언론 업무와 관련이 없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구심이 드는 까닭은 안 전 비서관이 국정홍보비서관으로 활동하던 지난해 각종 ‘낙하산 논란’으로 언론계가 몸살을 앓았다는 데 있다. 

안봉근 전 비서관이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에서 홍보수석실 산하 국정홍보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긴 때는 지난해 1월.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은 YTN 기자 출신 윤두현 홍보수석이었지만, 그는 안 전 비서관이 홍보수석실로 온 지 딱 한 달 만에 교체됐다. 8개월 만의 교체라 ‘경질’로 바라보는 관측이 많았다. 

물론, 홍보수석 교체 사유가 ‘연말정산 세금폭탄 파문’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였다. 윤 전 수석의 후임은 지난달까지 홍보수석을 지낸 SBS 출신 김성우 전 수석이었다.

공교롭게도 2015년은 언론계에 일자리가 쏟아졌던 시기였다. 3월에는 연합뉴스와 YTN 사장이 교체됐고 8월은 KBS 이사회와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 20명이 뽑히던 시기였다. 11월에는 KBS 사장, 12월에는 EBS 사장이 선임됐다.

▲ 최순실씨가 10월31일 오후 3시 미르·K스포츠 재단 강제 모금 의혹과 대통령 연설문 등 청와대 자료 사전 열람 의혹 조사를 위한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당시에도 ‘청와대 낙점’ 논란이 있었다. YTN 사장의 경우 ‘전통 금융맨’ 조준희 전 IBK기업은행장이 깜짝 내정됐다. 비 언론인 출신의 보도 전문 채널 입성에 YTN 안팎에서는 ‘밀실 인사’ ‘낙하산’ 논란이 일었다. 

공영방송 이사회에도 청와대 낙하산 논란이 일었다. 한 친박계 의원이 공영방송 이사회 여당 추천 몫을 사전에 짜놨는데 퇴짜를 맞았다는 것. 청와대에서 모든 인사를 다 가져가 여당 의원들의 불만이 크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고 나서 극우 성향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없는 인사들이 대거 공영방송 이사회에 입성하고 사상 초유의 ‘3연임’ 이사가 나오는 등 논란이 컸다. 최악의 인선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고대영 KBS 사장의 경우 사장 선임 과정에서 김성우 홍보수석이 이인호 KBS 이사장 등에게 전화를 걸어 고대영 사장 후보자를 청와대 지명 후보로 검토해달라고 말했다는 폭로가 나와 논란에 휩싸였다.

고 사장은 지난해 11월 인사청문회에서 청와대 낙점설을 부인하며 김 수석과 통화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지만 이 이사장의 경우 “KBS 사장 임명 제청과 관련해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과 전임 KBS 이사장인 손병두의 조언도 들었다”며 김 수석과의 통화 사실을 인정한 바 있다. 

한 방송계 인사는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청와대가 방송을 좌지우지하는 현실에서는 최씨가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은 상식적”이라고 말했다. “실세 무당이 좌지우지하는 대통령이 공영방송 사장을 임명하는 구조”(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장)가 바뀌지 않는 한 이러한 논란은 계속될 것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